책들의 우주/문학

밤엔 더 용감하지, 앤 섹스턴

지하련 2022. 5. 28. 11:40

 

 

 

밤엔 더 용감하지 Braver at night 

앤 섹스턴Anne Sexton(지음), 정은귀(옮김), 민음사 

 

 

 

 

앤 섹스턴 시집을 읽었다. 상당히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공격적이지 않았으며 스스로 버티면서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이었다. 미워하지만 사랑했고 죽고 싶었지만 동시에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러한 자기 내부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었다.  1960년대 미국 여류 시인이 무엇과 싸웠는지 알 수 있다고 할까.

 


더블 이미지 Double Image

(...) 


너를 기쁨이라 부를 수 있도록
우리가 너를 조이스라 이름 지은 걸 나는 기억해
강보에 푹 싸인 채 축축하고 이상하게, 너는
내 무거운 가슴에 어색한 손님처럼 왔어.
나는 네가 필요했어. 나는 남자애를 원하지 않았어.
여자아이만을, 이미 사랑받고 있는, 그녀 자신의
집 안에서 벌써 시끄러운, 여자아이의
자그마한 우윳빛 입을 바랐어. 우리는 
너를 기쁨이라 이름 지었어.
소녀가 되는 것에 한 번도 확신 못 한 
나인데, 그런 내게 또 한 생명이 필요했던 
거야. 나를 연상시키는 다른 이미지가
이게 내 가장 큰 죄: 너는 그것을 고칠 수도 달랠 수도 
없었다는 것, 나는 나를 찾기 위해 너를 만든 거야.

원문: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53110/the-double-image

 

번역된 시의 마지막 연이다. 상당히 긴 시라 일부만 옮긴다. 옮긴 일부만으로도 앤 섹스턴의 어조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녀는 1967년 퓰리처 상을 받는 등 미국 문단에서 유명한 여류 시인으로 자리잡았으나, 그녀는 평생 반복되는 우울증을 앓았으며,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녀의 시 속에서는 그녀가 아파했던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기다리는 머리 The Waiting Head 


만약 내가 정말로 걷고 있다면, 늘 하던 습관대로 
같은 거리의 같은 요양원을 지나고 있다면,
위쪽 창문에서 또 다른 기다리는 머리가
언제나 그랬듯 나무 의자에 앉아
누군가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 걸 내가 보게 된다면,
그렇다면 무엇이든 진실일 수 있다. 내가 아는 건 다만

그녀가 매일 밤 가죽 공책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썼다는 것. 분명 나는 그녀가 손가락을 둥글게 뻗어 

내 손을 감쌌다는 걸 기억하는데, 지금도 나는 
내가 이 거리를 피해 다닌 시절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표백된 무화과처럼 그녀가 쭉 살고 있던 거리,
또 그러다가 우릴 잊었던 이 거리,
그녀의 물컹한 키스를 방문하고, 매번의 호의를 
반복하려 구부리고, 더부룩한 가발을 빗겨주려 애쓰며
사랑을 억지로 이어 간 시간들, 이제 그녀는 늘 죽어 있고
그 가죽 공책들은 내 거다. 오늘 나는 본다. 그 머리가

저 높은 창문에서 점처럼 작은 천사처럼 움직이는 걸.
그  기다리는 머리는 무얼 하고 있는지? 똑같아 보인다.
내가 돌아서 가 버리면 고개를 앞으로 숙일까?
그 머리가 내게 하는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아.
근데 아무도 오지 않았어. 아무도 오지 않았어. 


 

결국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 나를 아프게 하고 흔들리게 하며 공감하게 만드는 건 내 이야기거나 나에게도 일어났던 어떤 것이다. 앤 섹스턴의 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남성인 나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어조인 걸 보면, 여성 독자가 이 시집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잠시 상상해 보았다.  번역이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영어 원문으로도 읽기를 권한다. 실제 언어로 읽는다면 그 감동은 배가 될테니. 




그런 모험 The Risk 



딸이 자살을 시도하면
굴뚝은 술 취한 사람처럼 무너지고
개는 자기 꼬리를 씹어 삼키고
부엌은 반짝이는 주전자를 폭파시키고
진공 청소기는 먼지 주머니를 삼키고
변기는 눈물로 목욕을 하고 
화장실 체중계는 할머니
귀신의 무게를 재고, 창문들,
거기 조각난 하늘들은 보트처럼 미끄러지고 
풀이 집 앞 진입로를 말아내리고
그 엄마는 자신의 혼인 침상에 누워
계란 둘 해치우듯 자기 심장을 파먹는다. 
When a daughter tries suicide
and the chimney falls down like a drunk
and the dog chews her tail off
and the kitchen blows up its shiny kettle
and the vacuum cleaner swallows its bag
and the toilet washes itself in tears
and the bathroom scales weigh in the ghost
of the grandmother and the windows,
those sky pieces, ride out like boats
and the grass rolls down the driveway
and the mother lies down on her marriage bed
and eats up her heart like two eg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