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예정된 전쟁, 그레이엄 앨리슨

지하련 2022. 6. 19. 16:14

 

 

 

예정된 전쟁 Destined for War -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지음), 정혜윤(옮김), 세종, 2018년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 - 투키디데스 

 

 

 

인간사를 다루는 철학자, 법학자, 사회과학자들을 내내 괴롭혀온 주범은 바로 그 원인의 복잡성이다. (15쪽) 

 

이 복잡성으로 인해 우리는 문제를 최대한 단순화시켜서 이를 분석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동시에 그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알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성, 우연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 인류는 예측 가능성, 확실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문명을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가능성 높은 사건들 중 우리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엔 그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은 그 질문이 왜 나왔는가에 집중하며 우리 시대가 마주한 문제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우선, 지금 궤도에서 수십 년 안에 미국과 중국 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그냥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이다. (20쪽) 

 

그간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대해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갈등 사이에서 한국의 위치는 상당히 애매하고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설마 전쟁까지 할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레이엄 앨리슨은 전쟁을 하거나 그것에 준하는 갈등이 연출될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역사적인 사례를 볼 때 반드시 발생한다고 여기고 있는 듯하며,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아테네인들은 혁신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개념이나 실행에서부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날램이 특징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을 그대로 보존한 채 아무 것도 새로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절대로 충분히 멀리까지 도약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 투키디데스 

 

갈망하는 것을 대책 없는 희망에 내맡기고, 최고의 이성을 원하지 않는 말에 귀를 닫는 데 사용하는 게 인간의 습성이다. ... 전쟁은 폭력적인 교사다. - 투키디데스

 

아테네의 부상은 스파르타로선 두고 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특히 두 도시 국가의 문화는 상당히 달랐다. 결국 두 도시 국가 진영은 충돌하였으며, 이것으로 인해 지중해를 호령하던 그리스는 그 이후 천 년 이상, 아니 지금까지도 변방에 머물러 있다.

 

과장된 자기중심주의는 오만함hubris이 되고, 비이성적인 두려움은 피해망상paranoia이 된다. (86쪽)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충돌로 인한 그리스 문명의 쇠락.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리스 문화권에만 국한된 전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충돌하다면, 전 세계가 휘말려들어갈 것이다. 지금 세계의 식량창고인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침공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과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더 가속화되어 전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데,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그 상황은 예상하기 쉽지 않다. 잘못될 경우 전 지구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2차 세계대전의 일본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틀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이 태평양까지 확대된 것은 일본의 진주만 침공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 생각이었던 것일까? 

 

서양 열강들이 계속해서 식민지를 개척하고 일본의 이웃나라들에 영향력을 행사해나가자 일본은 역사학자 이리에 아키라가 "더 공격적인 서양에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생각과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힘을 더 키워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이 결합된, 스스로 더 역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라고 부른 감정에 사로 잡혔다. (91쪽) 

 

위 부분을 읽고 다소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동시에 동아시아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가진 국가로 성장한 일본이 충분히 저런 감정에 휩쓸렸을 것임에 분명하다. 어쩌면 현재 중국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 아닐까. 

 

하늘은 위에, 땅은 아래에 있고,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곳을 중국이라고 부른다. 다른 나라들은 변방에 위치해 있다. 다른 나라들은 바깥쪽에 있고 중국은 안쪽에 속해 있다.  - 스제世界, "중화에 관하여" 1040년  (175쪽)  

 

"저는 교도소와 인간관계의 변덕스러움에 주목합니다. 정치를 더 깊은 차워에서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 시진핑 (177쪽) 

 

다음 네 가지 전선에서 엄청나게 야심찬 실천의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당이 활력을 되찾고 부패를 척결하고 오직 사명에만 충실하며, 중국 인민들에게서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도록 만든다.- 중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중국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부활시킨다. - 3차 경제 혁명을 꾀한다. 역사적으로 가능했던 적이 없는 성장률을 유지하자면 고통스러운 정치 구조 개혁이 뒤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시진핑은 알고 있다.- 중국의 군대가 시진핑의 말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군대를 다시 조직하여 재건한다. (188쪽)

 

"결국, 아시아의 일을 다루고, 아시아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시아의 안보를 지키는 일을 맡아야 할 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입니다." - 시진핑, 2014년 유라시아 지도자 모임(203쪽)

 

"중국에 민주주의 혁명 같은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믿는다면 잘못 생각하고 잇는 것이다. 텐안먼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얼토당토 않는 짓을 했다. 중국인민들은 중국이 되살아나기를 원했다." - 리콴유(197쪽) 

 

어쩌면 아직도 중국, 중국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코로나 봉쇄로 천만 도시가 폐쇄되었으나, 평온하기만 하다. 한국이나 서구의 나라였다면, 그런 조치를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런 조치를 했다면 바로 시위가 일어났을 것이다. 서구와 중국은 확실히 다른 정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텬안먼 사태가 다시 일어날 것같지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가장 연관성이 있는 미-중 간의 거리는 세계 질서에 대한 개념 차이에서 나온다. 중국은 국내에서건 국제관계에서건 위계 서열을 통한 조화를 믿는다. (...) 미국의 민주적 이상은 외교정책으로까지만 이어진다. 일단, 미국인들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의 국내법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국제법의 지배를 염원한다. (230쪽) 

 

최근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더 엉망이 되고 있다.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던 시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요즘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삼프로TV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개척자들의 삶은 온통 인디언들과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루어졌다." - 루스벨트 (151쪽) 

 

"평화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방법은 바로 전쟁 준비" (154쪽) 

 

미국이나 중국의 리더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연 그들은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래는 그레이엄 앨리슨이 말한 평화를 위해 필요한 아이디어들이다. 그러나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그 동안 내가 중국 사람들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긴 최근 세계 정치, 경제 상황은 해석하기 참 어렵다. 불확실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 정치 관련 책에 손이 많이 간다.

 

평화의 문을 열어줄 열 두 개의 열쇠 

1. 더 높은 권위를 지닌 제 3자가, 전쟁을 치르지 않고 경쟁 관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2.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정상적인' 행동을 제약하는 더 큰 경제, 정치, 안보 제도에 단단히 묶일 수 있다. 

3. 능수능란한 정치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면 최대한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낸다.

4. 타이밍이 중요하다.

5. 문화적 공통성이 갈등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6.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핵무기만은 예외다.

7. 상호확증파괴 MAD 탓에 전면전은 정말로 미친 짓이 되었다.

8. 따라서 핵 강국들 사이의 전면전은 더 이상 타당한 선택지가 아니다.

9., 그럼에도 핵 강국의 지도자들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10. 경제적 상호 의존의 심화는 전쟁 비용을 높이기 때문에 전쟁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11. 동맹국이 치명적인 자력이 될 수 있다.

12. 국내 상황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시사적이기도 했으며, 중국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이해하게 된 계기되었다.  이런 휴의 책들을 당분간 읽어야겠다. 정치도 위기, 경제도 위기이니, 이 때일수록 내공을 쌓는 것이 중요하니 말이다. 

 

* 그레이엄 앨리슨의 지도교수가 크레인 브린튼이었다. 오래만에 듣는 이름에 반가웠다(*수십년 전에 번역되었다가 지금은 구할 수 없으니. 나는 그의 지성사를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이리에 아키라도 한국에 몇 권의 책이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일본인 역사학자가 바라보는 현대사는 상당히 흥미로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