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새벽 빗줄기

지하련 2022. 7. 2. 14:00

 

새벽 빗소리가 열린 창으로 들어와 방 안 가득한 열기를 밀어낸다.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그 기세를 누그러뜨면서 차가운 습기로 채워진다. 이 습기만 견딜 수 있다면, 제법 청량한 잠을 잘 수 있을 게다, 가족들은.

 

가끔 이 세계가 존재하고 내가 생각할 수 있고 사랑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낄 때, 신비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그건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그 호르몬 모두를 지금 알지 못할 뿐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 신비 앞에서 파스칼은 끝없는 두려움을 느꼈고 20세기 초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우리 존재의 목적이나 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다며 절망했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백 년 전 그 절망을 현대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이어받는다.

 

책을 읽을수록, 내 지식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현대 철학은 형이상학과 이론물리학, 혹은 양자역학의 시대이며, 수학적 정합성에 기반한 이 우주의 불투명성, 그리고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현상(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물질)을 받아들이는 과학,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형이상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개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처럼, 수학적으로는 맞으나 일상 생활에선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 그것들이 모여 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건, 놀랍기만 하다.

 

한쪽에서는 회의론자들이 종교적 믿음을 무시하지만, 반대로 종교적 구원만이 삶의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 우주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 앞에서. 가끔 불어닥치는 끝없는 소멸에의 유혹 앞에서 말이다.

 

우리의 기억이 물질에 기반하고 있다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은 7~8년 정도의 주기로 다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니 기억도 리셋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우리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우주의 끝에는 다다를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하나이며 질량에 의해 왜곡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어제, 오늘, 내일은 다른 차원의 존재에게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시공간이라 한다. 현대의 이론물리학에서 바라보는 내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중세 철학자들이 신은 시간을 평면으로 본다는 인식이 맞았다. 이미 우리가 사는 이 우주의 시작과 끝은 신의 뜻대로 구축되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명세 감독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떠오른다.  

 

올해 들어 아들과 함께 매주 미사를 빠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