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 그리고 소나기

지하련 2022. 7. 8. 08:38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라흐마니노프 3번이 저랬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연주자들을 통해 여러 차례 들었으나,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바로 저거지 했다. 조성진이 연주한 것도 듣고, 손열음이 연주한 것도 들었다. 

 

조성진이 대단한 걸 알지만, 나에겐 너무 말랑말랑하다. 난 좀 냉정하고 차가운 소리가 좋다. 그러나 조성진의 피아노는 너무 부드럽고 우아하며 성숙한 느낌이다. 그래서 편안해지며 풀린다고 할까. 

 

조금은 날이 서있는 느낌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아르투어 미켈란젤리다. 그의 연주는 날이 확실히 서 있다. 손열음의 연주도 좋아한다. 그녀의 연주도 정말 좋다. 그런데 이번 임윤찬의 연주는 오, 압권이다. 사람들이 왜 찬사를 쏟아내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내가 이렇게 피아노 연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음악이라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나기가 내린다. 우산을 늘 가지고 다닌다. 소나기처럼 사랑을 기다리기도 했다. 레이몽 라디게는 그렇게 사랑을 노래했다. 우산 겉면이 젖으며 빗방울이 굴러 떨어질 때, 내 마음 안쪽 면도 동시에 젖는다. 그리고 젖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 고요한 수면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무수한 어제들이 끄집어 올린다. 그렇게 과거는 추억이 되고, 추억은 다시 오늘의 상처가 되어 눈 앞에 흐릿한 잔상으로 아른거린다. 소나기의 신기루. 

 

오늘, 소나기의 신기루를 피하면서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