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불의(Injustice)와 경제적 불평등

지하련 2022. 9. 27. 03:05

 

모든 아동의 7분의 1은 오늘날 비행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취급받고, 모든 가계의 6분의 1은 사회 기준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5분의 1은 그럭저럭 살아가기도 버겁다. 약 25퍼센트 사람들이 생필품을 감추지 못하거나 어렵게 구한다. 이렇게 풍족한 시대에! 이제 3분의 1은 식구 중 누군가가 정신질환을 앓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그 선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려준다. - 다니엘 돌링, <<불의란 무엇인가>>, 21세기북스, 2012년, 405쪽 

 

2011년 영국에서 나온 책을 2022년 한국 서울에서 읽는다. 불평등에 대한 책이다. 좀 뒤늦게 읽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도리어 그 불평등함은 더 심해졌다. 어쩌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과 함께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애초 쉬운 논의도 아니었고 너도나도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 지났다는 상투적인 표현 속에는 신자유주의로의 경제 시스템 변화와 함께 하고 있음은 다들 알지 못한다. 실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 간의 이동이 어려워지고 경제적 불평등, 상대적 박탈감, 이로 인한 정신 질환의 증가 등은 영국이나 미국 등 다른 서방 국가들도 동일하게 겪는 문제다. 국가별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의 중도파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나마 현실적인 발언을 하는 편이다. 대신 그들이 제시하는 처방은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그러나 한국에서 좌파라고 하는 이들의 주장은 너무 이상주의적이여서 아직도 사회주의 이야기를 하거나 마르크스를 인용하는 모습을 보거나, 혹은 너무 소수 커뮤니티에서 포커스하여 전체를 이야기할 때는 이상주의라고 포장할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공감을 이루기 어려웠다.

 

최근에 이 책을 알게 되어 도서관에서 구해 읽었으나, 결국 헌 책으로 구입하였다. 지리학과 교수가 경제적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아마 그의 연구는 왜 경제적 차이가 지리적 차이로 이어지는가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경제적 처지가 비슷한 이들끼리 모여사는 현상이 심해지는 건 선진국 국가에서는 이미 고착화된 현상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불과 수십년전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으니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주류 경제학을 까는 부분이었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제대로 된 답을 알고 있었다면 경제 위기 따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며, 그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시장의 자정활동) 이야기를 해대고 있는 지적 빈곤, 무능력함을 비난했다. 하긴 그런 경제학자들 밑에서 배운 이들이 월가나 금융 기관에 종사하며 전 세계 경제를 망가뜨리며 경제적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안타깝게도 한국의 경제 관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한국 정치 리더들의 얼굴까지.

 

이 책의 장점은 '엘리트주의'부터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은 상당히 비판적이지만, 모두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반론의 여지도 상당히 적다. 케이트 피킷과 리처드 윌킨스의 <<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는 임상병리학적 역학에 포커스하고 있지만(그래서 더 충격적이지만), 이 책은 조금 더 추상적이면서 그 추상적인 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지적한다. 그러면셔 다니엘 돌링은 우리의 편향적인 생각이 언제, 왜 생겼으며 그것이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마치 19세기 도금시대를 보는 듯하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돈으로만 이해되고 평가되어 모든 이들이 돈을 벌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있다고. 그러니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말하기 위해서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하고 있다며 개탄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자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책들 대부분 절판이다. 나는 왜 이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을 때 알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이 책들 대부분은 거의 읽히지 않는 것일까.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별 관심 없다. 왜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자살율이 높아져 가는가에 대해서 진지한 물음을 던지지 못한다. 최근 대부분 연구는 이 현상의 원인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그에겐 그만의 인과적 배경이 있었을 것이며, 그 배경에는 알렉산드르 두긴의 유라시아주의가 있다고 여겨진다. 실은 우리는 모두 그렇다. 어떤 행동에는 그 행동을 지지하는 철학이나 신념, 또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불의란 무엇인가>>는 그런 잘못된 생각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생각들이 왜 잘못 되었는지 지적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나 언론(기자들)은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만든다. 사이코패스 지수가 높다고 그 개인이 사회에서 못 살아가는 건 아니다. 단지 그만킁의 적절한 교육이 필요할 뿐. 굶지 않는다고 경제적 불평등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며, 그 이유는 우리들은 하우스푸어가 되거나 카푸어가 된다. 왜냐고? 우리는 소중하니까. 우리가 소중하다고 광고에서 떠들어대고 광고를 통해 우리는 빚을 내어 소비를 한다. 셀럽들은 우리에게 소비하는 일상을 보여주고 우리의 탐욕과 소비를 부추긴다. 그것만이 우리 존재의 소중함을 드러내는 길이니. 

 

다니엘 돌링은 이 모든 것을 불의Injustice라고 말한다. 최근 몇 십년 동안 이 세계는 어딘가 심각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였다. 다니엘 돌링은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약 2주간 이 책을 읽었는데, 쉽지 않은 독서였다. 다시 읽고 복기할 생각이다. 다니엘 돌링의 다른 책들도 구해 읽어볼 생각이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책들을 정리해보고 목록을 마련해보자. 뜻있는 출판사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총서 시리즈 같은 걸 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읽혀져야 하는데, 실제론 그때 그때 뿐인 듯 싶다. 작년에 자주 언급되었던 능력주의도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맥락에 있는데, 이를 개별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지금 세계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메모로 적은 글인데, 쓸데없이 길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고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다니엘 돌링Daniel(Danny) Dor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