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재편되는 세계, 그리고 한국 속의 나.

지하련 2022. 10. 1. 05:14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독일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그 전략적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포스팅을 읽게 되었다. 하긴 독일이 최근 러시아와 가까이 지낸 건 사실이다. 동시에 미국 또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세계 질서에 발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 것 또한 사실이다. 중국, 인도, 터키, 이란,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미국과의 적절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 패권 국가로서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 나라들은 한 때 제국이었던 국가들이었다. 러시아는 20세기 이후의 패권국가였다고 봐야겠지만.

 

최근 피터 자이한의 책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을 읽으면서 세계는 현재 미국이 설계해 놓은 질서 위에서 돌아가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실은 이를 부정하기에는 너무 설득력 있었고 상당히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이 질서에 대한 반성이 미국 내에서 이루어지고 동시에 미국 밖에선 여기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만 문제다. 

 

역사적으로 대만은 중국의 영역이 아니다. 마치 오키나와가 일본의 영역이 아니듯이. 대만은 최근 몇 백년 전까지만 미지의 섬나라였다. 아직도 토착 원주민들의 문화가 보존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의 중국을 지향하는 시진핑의 중국은 대만도 합병해야 되는 대상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시진핑의 꿈은 역사적으로 너무 위험하다. 현대 중국만큼 한족이 그 지배력을 가졌던 적이 드물었고 중국 변방은 언제나 각자의 문화와 정치로 독자적으로 살아온 지역이었으니, 언제 독립해도 무방한 지역이다. 공산주의 이념 아래에서 끼니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민주당의 미국은 세계 질서에 관심이 많은 듯하지만 공화당의 미국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 내부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된다는 입장이며 세계 경찰 국가로의 미국은 이제 그만해야 된다고.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것이 피터 자이한의 진단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더이상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할 생각이 없다. 그러기엔 미국이 얻는 것이 너무 적다. 

 

또한 중국의 성장은 미국으로 하여금 위기감을 갖게 만들었다. 중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의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였고 미국의 소비자들이 중국 제품을 수입해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체제 안으로 중국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재고하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언제나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으니,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젊은 중국인들이 시진핑이 그리고 있는 중국을 지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상당히 걱정스럽다. 왜냐면 그건 중국 한족 젊은이들의 생각일 뿐일테니.  

 

그레이엄 엘리슨의, 출간된 지 좀 지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2018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하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그 충돌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정체될 것이고 내부적인 문제와 지역 간 갈등이 불거질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상당히 의도된 것이며 이로 인한 세계 경제 위기는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입장에선 나쁠 것이 없다.이번 기회로 다시 한 번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다시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니까.

 

지금 세계는 계속 미국의 기존 설계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갈림길에 서 있으며, 각 나라마다 나름의 생각으로 다양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없는 세계로의 진입은 불가피해보인다. 과거의 미국은 세계가 필요했지만, 지금의 미국은 세계가 필요없을 수 있고 필요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한 각 지역의 패권 국가로의 발돋움을 하고자 하는 중국, 러시아, 인도, 터키, 이란 등은 상당히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적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기 위한 각국의 분투가 본격화되고 있는데, 한국은, 아, 한심하다. 나는 박근혜를 뽑았던 그 국민들이 이번에도 그랬다고 믿는다. 또한 지난 정부의 여당, 지금 정부의 야당인 민주당의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각 정당은 다음 정치지도자를 누구로 옹립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부, 혹은 외부에서 성장시켜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나라는 잘 굴러갔다고 믿는 이를 만나면 나는 그 어리석음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그 때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전혀 다르다. 지금의 한국은 BTS, 블랙핑크의 한국이면서 봉준호와 오징어나라의 한국이다. 지금은 유럽의 어느 나라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국방력을 갖춘 나라다. 실은 현대 한국은 지역 패권 국가까진 아니더라도 지역의 균형자로서 그 잠재력을 갖춘 국가다. 북한과 극적으로 합친다면 지역 패권 국가도 가능할 것이다. 한 때 몇 백년 동안 중국과 대등하게 경쟁했던 국가였으며 중국인들이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던 지식인들의 국가였다. 

 

이런 나라의 정치 리더를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난 대선 때를 떠올리면 참 끔찍하기만 하다. 나는 일반 대중의 정치적 식견이나 판단의 수준 낮음을 보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편견이 가진 위험함을 깨닫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나 또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이젠 개인적 삶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면 캄캄해진다. 어쩌면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짧은 글을 블로그에 옮기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덧붙였다. 이 어려운 시대, 다들 잘 견뎌내기를.

 

 

캠핑을 가면 늘 노터봄의 저 책을 가지고 간다. 가을 바람 속에서 몇 페이지 읽은 순간의 기분 좋음이란. 그 비현실성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