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하련 2023. 3. 8. 23:32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Disunited Nations

피터 자이한 Peter Zeihan (지음), 홍지수(옮김), 김앤김북스

 

 

돌이켜보건대, 젊은 시절 나는 확실히 세상살이를 좀 안일하게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 비관적으로 해석하여 포기의 마음이 한 켠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후자에 가까워 보이긴 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사정이 딱히 달라진 건 아니라서 지금도 가끔 모든 걸 내려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피터 자이한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너무 한 쪽 분야의 책들만 읽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름 서양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고 철학이나 예술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자이한이 가지는 동시대에 대한 정보는 남다른 데가 있다. 때로 과격한 주장이나 단언이 읽는 데 거슬리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니까 흘려 읽을 수도 없다. 이번 독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출퇴근 때나 잠시 비는 시간에 띄엄띄엄 읽었던 터라 메모를 많이 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메모한 일부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는 부분들, 그리고 내 의견을 정리해 올린다.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하여

 

단적으로 말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도시 문명은 난생 처음 겪는 형태다. 고작 몇 백년 전 일상과 비교해 보면 안다. 그만큼 시끄럽고 복잡하고 바쁘며 스트레스로 가득 찬 공간이다. 심지어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긴장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인류가 살아왔던 대부분의 시대, 우리는 태어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만나며 살았다. 가끔 대도시(제국 시절의 로마나 당나라의 장안 정도)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으나, 그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는 보기 드문 경우였다. 그러니 이런 공간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이라고 할까. 19세기말 유럽의 모더니스트들은 이것을 노래했다. 그것이 공포였을지 찬사였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나누어지겠지만. 

 

피터 자이한은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도시에 대해선 자세히 말한다. 그것이 바로 지정학적인 위치다. 이 점에서 한국은 상당히 불리한 입지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피터 자이한의 의견이다(한국어판을 위한 정치적 찬사일지도). 이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역사 이래도 그 곳에서 자리를 잡아온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나라들 대부분은 한 때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거나 지금도 행사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한 때에 제국이었던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이 지역의 거의 모든 곳과는 달리 이란에서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에는 실제로 비가 내린다. 그리고 그 덕에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자연강우 덕분에 관개시설이 없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따라서 농사에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면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생긴다. 학교를 다니든가, 무역업을 하든가, 시를 짓든가, 전쟁을 할 수 있다. 이곳 문화는 그 뿌리가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58쪽)

 

페르시아는 사해동포적인 부와 안보가 보장되는 땅에서 시선을 내부로 돌리는 빈곤한 경찰국가로 변질되었다. 1600년에 페르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문화로 손꼽혔지만, 발견의 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바깥 세상이 그동안의 제약에서 해방되던 시기에 페르시아는 정체되었다. (263쪽) 

 

일반인들에게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으로만 기억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란은 우리가 역사책에서 자주 읽고 듣는 페르시아 제국이었던 나라다. 그리스-로마와 끊임없이 전쟁을 해오며, 실크로드의 그 끝에서 풍요와 영화를 누렸던 땅이었다. 기본적으로 체질이 다른 나라인 셈이다.

 

낯선 사우디아라비아, 혹은 현대 중동을 이해할 수 있는 상징적인 국가 

 

이 점에서 보자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낯설고 기괴한 나라다. 이 나라야말로 정말 시대착오적인 국가인데, 석유로 인해 어쩌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할까. 또한 미국과 대립하는 페르시아의 후손들(이란)이나 나머지 아랍국가들로 인해 적당한 관계를 형성해야 하고 있으나, 뉴욕 한 복판에서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인한 것임을, 피터 자이한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에 맞서 중동을 파괴하다>라는 장은 정말 흥미롭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생각하는 사회정책이란 불만 가득한 청년들을 급진적인 이슬람 교리로 잔뜩 동요시켜, 그들에게 무기와 폭탄을 쥐어준 다음, 전쟁 지역에 파견해 사우디의 이익을 위해 싸우게 하는 일이다. (45쪽)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는 무엇보다도 우선 중세 시대 군주제 국가다 - 폭군인 왕이 여러 명의 왕비를 거느리고, 왕족 내부에 살인이 횡행하고, 농부들을 억압하고, 빈익빈부익부가 만연하고, 자칫하면 머리가 댕강 날아가는 군주제다. 권력은 오로지 통치하는 왕가에 집중된다. 정치적 반체제 인사는 고문 끝에 처형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는 말 그대로 (북미 원주민) 코만치족 약탈의 역사에 준하는 사우드 부족의 역사와 제7안식일 재림파 겸 아미시가 지닌 기술에 관한 세계관에 준하는 와하브 종파의 세계관을 결합한 다음, 세속에서의 죄는 마피아 식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두 부족(사우드 부족과 와하브가 속한 부족)의 견해를 곁들인 나라다. 정치적으로는 그처럼 경직되어 있고 경제적 불평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유지하는 체제에, 가장 억압적이고 성차별적이고 가학적인 종교적 해석을 곁들인, 개인의 인권 억압이나 국가 정체성의 초석인 나라다. 그런 잔혹성이 사우디 국가를 떠받치는 가장 일차적인 기둥이다. (278쪽)

 

석유만 아니었다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을 나라였겠지만, 석유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뀐 나라다. 최초에는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조직되었던 일군의 무리가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되었다.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는 1932년 오스만 제국의 잔해에서 비롯되었고, 그로부터 6년 후 새로 탄생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던 미국인들은 석유를 발견했다. (277쪽)

 

사우디의 용병-수출 전략은 아프가니스탄, 체첸공화국,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같은 지역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데 긴요한 역할을 했다. 즉 사우디 왕가는 의도적으로 군사자산을 파견해 러시아, NATO 동맹의 주요 국가들뿐만 아니라 중동 국가들과도 모조리 싸우게 했다. 사실상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하는 미국도 그 대상이었다. 
사우디가 엉뚱한 곳에 파견한 용병들은 탈레반, 알카에다, 아이시스(ISIS)같은 조직들을 결성했고 .... (283쪽) 

 

상당히 황당스러울 정도이지만,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북아프리카와 중동은 참으로 심란스러운 결과로 귀결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들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선긋기로 인해 현재까지도 정치적 불안정과 피바람이 부는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이란(페르시아 제국)과 터키(오스만투르크 제국)는 이 지역의 맹주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국가들인 셈이다. 

 

제국으로서의 중국?

 

이 점에서 중국이 제국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자이한은 중국의 지정학적 한계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는다. 현재의 중국은 미국이 만들어놓은 글로벌 시스템 위에서 성장한 것이지, 중국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님을 말한다. 


중국의 그러한 정서는 틀렸을 뿐만 아니라 배꼽 빠지고 옆구리가 결릴 정도로 우습기까지 하다. 세계 지배는 입문자 수준이 터득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은 잘못하고 있다. (55쪽) 

 

문제는 미국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글로벌 체제에 대해 이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없는 무질서한 세계 앞에서 각 나라는 각자도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이 모두는 대체로 하나의 결말로 귀결된다. 제 4 시대의 시작, 세계를 순찰하는 미국이 없는 무질서한 세계 말이다. 바로 이 무질서가 앞으로 이 책에서 다룰 주제다. (52쪽) 

 

피터 자이한은 이런저런 잡다한 정보, 그러나 신뢰도 높고 정확하며 통찰력 있는 정보들을 모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로 만든다. 

 

나는 세계 곳곳에서 흘러들어온 서로 무관한 정보를 엮어서 여러 체제에 걸쳐 있는 연관성을 보여주는 직조물을 짜내는 일을 한다. 나는 사고의 모델을 구축한다. 해석하는 일을 한다. 표면적으로는 전혀 무관한 주제들을 한데 엮는다. 나는 정보를 종합하고 비교하고 물론 전망도 한다. 내가 얻는 정보는 출처를 밝히기가 쉽지도 않고 심지어 적절하지 않기도 하다. (479쪽)

 

그의 몇몇 주장은 읽기 거북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쉽게 무시할 수도 없다. 반대로 피터 자이한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내용을 제시하기 때문에, 도리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반문하는 것이 좀더 타당한 접근이다. 그래도 그가 일본이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아시아 맹주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좀 ... 하지만 최근 2백년 동안 일본은 아시아 최고의 국가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반대로 최근 높아진 한국의 위상으로 인해 우리가 잘못된 국뽕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어두운 미래

 

 

책 서두에 언급된 한국에 대한 진단은 아래와 같다. 

 

세계화는 제자리걸음도 아니고 붕괴되고 있다. 규모와 성향이 천차만별인 나라들은 세계 체제에 대한 장악력을 잃어가고 있고, 내부적으로 나라를 다잡을 국론을 마련하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독일, 한국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거센 바람이 낯설고 새로운 세계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11쪽)

 

훨씬 심각한 문제는 필연적으로 한국의 수출주도 경제모델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제조업 상품을 넓은 세상으로 수출하려면 다국적 공급사슬에 참여해야 하고, 수입상품을 소비할 세계 인구에 접근해야 하며, 저렴하고 안전한 해상운송을 가능케하는 국제안보 환경에 참여해야 하며, 저렴하고 안전한 해상운송을 가능케 하는 국제안보 환경에 참여해야 한다. 이 “모두”가 사라지게 되는데, 그것도 2020년대에 사라진다. (12쪽)

 

여기서 한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난관이 등장한다. 인구 구조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고령화에 대처할 모델을 제공해주는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 구조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고, 해외 시장에 한국이 계속 접근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상종하기도 싫어하는 “유일한” 나라다. 그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일본의 경제는 20년 전 수출주도 성장 구조에서 탈피했고 막강한 해상력을 보유한 일본은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 동안 공해상에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만사(萬事)를 중재하게 된다. (13쪽)

 

한 마디로 "일본과 붙어라 그것이 살 길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피터 자이한만의 생각이 아니다. 미국 보수 우파 뿐만 아니라 민주당 정치인들도 동일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서 손을 내미는 행동(정상적인 한국인이 보기에는 상당히 굴욕적인)을 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 미국이 얼마나 한국 정부, 또는 정권에게 압박을 가했을 것인가. 미국은 한국 정부가 우파였을 때 좀 더 다루기 쉽다고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하긴 한국 우파의 근원을 따져들어가면 보수 공화당으로 이어지고 식민지 시대에는 창씨개명을 한 친일파들이며, 그 전에는 개화파였으며,  그 전에는 19세기 초반 세도정치 시절에도 먹고 살만한 양반 가문들과 이렇게저렇게 연결되었던 이들일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을 하나의 세트로 파악하면 상당히 쉽다. 먼저 주한 미군의 수를 줄일 수 있으며 제멋대로 팽창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중국을 대응하기도 쉬워진다. 피터 자이한은 이런 배경에서 접근한다. 아마 한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에 대해 언급한 것에 대해 다소 동의하기 어렵다고 여기듯이, 이 책에서 언급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낄 지도 모르겠다. 가령 유럽 국가들에 대한 언급은 아마 유럽인들의 자존심을 팍팍 뭉개버리는 수준에 가까우니. 피터 자이한은  유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같은 땅이라고 말한다. 

 

유럽, 분열된 대륙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고 바닷길과 접한 북유럽은 모두가 모두에게 방해가 되고, 서로 치고 받으며 바람 잘 날이 없는 땅이다. (204쪽)

 

유럽은 군사적 난관에 직면한 올망졸망한 국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지역이다. 인구 구조의 붕괴를 목전에 두고 이민은 소화하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지역이다. 자기 국경을 통제할 역량이 없고 외부인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수두룩한 지역이다. 친환경 발전을 할 역량이 없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수두룩한 지역이다. 가장 가까이 위치한 비중 있는 이웃나라들, 즉 터키와 러시아와의 관계를 이제 이 지역을 떠나려 하는 외부 세력인 미국에게 맡겨놓은 지역이다. 경제적, 재정적, 군사적으로 가장 탄탄한 나라인 영국으로부터 이별 통지를 받은 지역이다. (207쪽)

 

일본에 대해선 평가가 높듯이 영국에 대해 경제적, 재정적, 군사적으로 가장 탄탄하다는 평가를 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지금 영국은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프랑스의 긴 역사를 통틀어 프랑스는 동맹이 될 뻔한 국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버리거나, 배반하거나, 버리고 배반할 구실을 댄 전력이 있다. 그런 행동은 프랑스의 힘에서 파생되었다. (237쪽)

 

현재의 세계질서가 무너진 후 프랑스는 가장 고통을 덜 받고, 가장 제대로 회복할 나라다. (240쪽)

 

프랑스에 대해선 다소 높은 평가를 내리는데, 이것도 프랑스가 가진 지정학적인 위치에 근거한다. 자급자족이 가능한가, 에너지원을 쉽게 구할 수 있는가 등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는가의 측면에서 유럽 어느 나라들도 프랑스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미국가들도 다루고 있지만, 크게 관심이 가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룰라 대통령이 다시 복귀한 브라질이 낫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아르헨티나가 여러 모로 더 나은 지정학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낙후된 국가 시스템은 ...  

 

미국이 사라지는 세계

 

이 책에서 언급된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의 핵심은 세계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없을 때 각 나라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포커스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된다면, 한국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페르시아만이 혼란스러워지면, 석유를 가지고 오지 못할 것이다. 많은 농수산물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내수 시장 규모가 나라의 경제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는 더욱 커진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동안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높은 기술력과 함께 강력한 내수 시장 때문이다.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겠지만, 분단 한국을 벗어나 빨리 하나의 한국이 되는 것이 시급한 일일 지도 모른다.

 

피터 자이한의 책은 미국의 전형적인 보수 우파의 관점에서 작성되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미국 41대 대통령, 속칭 아버지 부시 대통령) 이후 미국 대통령은 모두 함량미달이라는 평가도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그 이후로 백악관에 입성한 미국지도자들은 한 마디로 함량미달이었다. 빌 클린턴은 외교정책을 따분하게 생각했고, 가능하면 피하려고 애썼다. 조지 W.부시는 중동 문제에만 휘말렸다. 버락 오바마는 불통이 심해 그 누구와도 - 심지어 자기가 속한 민주당 내의 자기 동맹세력과도 - 만나려 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세계 체제와 절연을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40쪽)

 

미국에서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는 한 가지가 있다면 해외 문제에 미국이 개입하는 정도를 줄여야 한다는 정서다. 미국의 고립주의(isolationism)는 트럼프에서 시작된 게 아니며 트럼프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47쪽)

 

 

여러 모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피터 자이한은 추천하는 저자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바는 아니다. 또한 동의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버린 지금, 우리는 다양한 의견과 해석, 전망들을 모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의 낙후된 디지털 환경에 새삼 주목받은 바 있다. 반대로 지금 일본이 본격적으로 디지털을 추구한다면 곧바로 한국을 앞지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하다.

 

소셜미디어와 선거

 

유튜브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가짜 뉴스 뿐만 아니라 국뽕 콘텐츠로 손쉽게 수입을 거두려는 채널도 상당히 많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기 어려운 시기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포퓰리스트들은 애초에 소수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발전한 인터넷은 소수였던 이들을 하나로 모았다. 한국도 비슷해서 비상식적인 견해를 가진 이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으나, 온라인에선 너무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포퓰리스트는 공화당 연합체에서 늘 정신 나간 사람 같은 존재였고, 나머지 파벌들이 포퓰리스트 집단을 참고 내버려둔 이유는 오로지 그 집단이 전혀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고 공화당이 내세우는 의제 설정에 영향을 미칠 역량은 없지만 집토끼 표밭이기 때문이었다. 누가 집계한 데이터이고 어느 총선을 토대로 한 데이터인지에 따라 그 수치가 다르지만, 그러한 포퓰리스트는 전국 유권자 기반의 5에서 15퍼센트를 차지했다. 최저치인 5퍼센트라고 해도 동성애자 집단보다 크고 최고치인 15퍼센트의 경우 흑인이나 히스패닉집단보다 크다. 

세월은 변한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는 조직화되고 기금을 조성하고 개인의 견해를 널리 알리는 행위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사라졌다. 하워드 딘, 버락 오바마, 버니 샌더스를 등장시킨 바로 그 진보-그들로 하여금 민주당 체제를 우회해 잠재적인 지지자들에게 직접 호소하게 해준 기술-가 티파티(Tea Party)와 대안 우익(alt-Right)도 탄생시켰다. (4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