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말의 정의, 오에 겐자부로

지하련 2023. 4. 2. 04:41

 

 

말의 정의

오에 겐자부로(지음), 송태욱(옮김), 뮤진트리

 

어쩌다 보니 언제나 옆에 두고 읽는 작가들은 정해져 있었다. 오에 겐자부로도 그렇다. 십수년 전 고려원에서 오에 겐자부로 전집이 나왔을 때부터 읽기 시작해, 지금도 오에의 소설이나 수필집을 읽는다. 일본의 사소설적 경향을 바탕으로 하되, 일본의 민담이나 전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면서 나아가 세계적인 소재나 주제까지도 이야기하며 소설을 쓰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일본 내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상당히 정치적이다. 실은 오에 겐자부로가 왜 정치적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반-정부 인사처럼 보일 듯 싶다. 

 

가끔 일본 지식인 사회가 일본 정치나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그건 지식인 사회의 탓이라기 보다는 일본 사회의 저변이 그렇게 형성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읽으면 일본 내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깨닫기도 하지만, 그 활동은 일본 내에서도 작고 한국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지지 않는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좀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 또는 나은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없어져 가고 있다고 할까. 그게 지식인의 탓이라는 생각을 예전엔 했는데, 지금은 그냥 애초에 그랬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은 지식인이라는 게 없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한국에서 신문사 기자나 대학교수들이 스스로 지식인의 지위를 걷어찬 지는 상당히 오래 되었다. 모든 이들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 책은 아사히 신문에 오래 연재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 각기 다른 주제와 소재로, 오에 겐자부로의 일상이 묻어나기도 하고 일본 사회의 현안을 언급하기도 하다. 평화헌법이라든가 핵 문제나 오키나와 같은.

 

난바라 시게루 도쿄대학 총장은 패전 이듬해의 기원절(紀元節, 지금은 건국기념일)에, 전장에서 돌아온 학생들을 포함한 젊은 사람들에게 야스다 강당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

"특히 나라를 대표한 천황에게는 당연히 도덕적, 정신적 책임이 있습니다. (…) 이는 현재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수백만 명의 병사가 천황의 이름으로 죽었습니다. 이 역시 하나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또 하나, 전후의 일본에는 정치적 책임 관념이 굉장히 희미해졌습니다. 이 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도의의 근원이라는 문제가 오늘날 여전히 남아 있지 않습니까?" (29쪽)

 

전후 책임 지는 사람들이 없었던 일본. 그와 비슷했던 한국. 종종 이것이 미국의 모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 책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던 건 아님을 난바라 시게루, 그 당시 도쿄대학 총장의 강연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도카시키지마에서 섬 주민의 강요된 집단 자결이 일어난 후 군이 항복할 때까지 일어난 일을, 수비대장의 부관이었던 지넨 조보쿠 전소위(이 이름에서 오키나와 출신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가 쓴 수기입니다.

미군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쳐 돌아온 두 소년이 보초선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본부로 끌려와 있었습니다. 아카마쓰 대장이 소년들을 엄하게 꾸중했습니다. 
“황민으로서 포로가 된 너희들은 어떻게 그 오명을 씻을 테냐!”
“죽겠습니다!”
소년들은 이렇게 대답하고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저는 한밤의 나무 그늘, 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121쪽)

 

오키나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일본의 땅이 아니었던 곳. 지금 중국이 대만을 가지려고 하는데, 애초에 대만은 중국 땅이 아니었다. 한국도 저랬을까. 나는 사람들이 한국전쟁(6.25 전쟁)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않는가에 대해 깊은 의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일본을 두고 역사를 모른다고 비난하기 전에 한국도 그래야 된다고 믿는다. 제주 4.3사태를 날조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나 광주 민주화 운동을 두고 북파 간첩이 주도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 사회의 누군가들은 그런 의견이 남아있고 계속 전파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과 모의한 듯 보이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절반이 가진 무지함, 무관심함, 무책임함에 절망하고 있는 요즘이기도 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고 현대 일본이나 현대 한국이나 참 힘들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현대 중국도. 루쉰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루쉰의 메시지가 현대 중국에는 그다지 호소력이 없음을,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읽으며 짐작했다. 헤겔의 말처럼, 진지하고 신중한 목소리는 늘 일이 끝난 후에야 들리는 것일까. 그런 걸까.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긴 글을 적어봐야 겠다.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작가다.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누군가는 오에 겐자부로의 목소리를 이어받아야 한다. 

 

오에 겐자부로(1935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