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 이수정

지하련 2023. 4. 19. 09:50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

이수정(지음), 메디치

 

이런 책들이 늘어나야 된다. 어제처럼 외부로, 세계로, 선진국으로 시선을 돌려 남의 것들을 수입하고 배우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 내부로 눈을 돌려 관찰하고 보듬으며, 보다 행복한 미래를 모색해야 되는 시절이 왔다. 그래서 이 책은 참 소중하다. 스스로 발품을 팔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슬람사원, 모스크를 찾아 그 곳 사람들을 만나 기록하며,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 바로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이다. 

 

솔직히 기시 마사히코같은 사회학자가 써야 할 책이다. 기시 마사히코를 적기 전에 한국의 사회학자들을 더듬어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없었다. 저자인 이수정은 아랍어 전공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아랍, 혹은 이슬람에 대한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모스크를 돌아다니며 이 책을 쓴 것이지만, 이런 연구나 조사는 사회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다. 저자는 조심스럽게 '에세이'라고 적었지만, 실은 일본 사회학자인 기시 마사히코가 일본 사회를 몸소 체험해 가며 사회학적 통찰을 구하듯이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긴 누가 하는 게 뭐 중요할까. 누군가가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작은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는 것일 테니.

 

책은 저자가 모스크를 찾아다니며 마주한 현실, 차별, 공존,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깊이 있는 내용이 있다기 보다는 우리가 한 두 번쯤 들었거나 접했을 이야기를 저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같이 고민을 모색하길 원하는 글들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을 통해 간단하게는 아랍, 중동,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우리가 가지는 오해에 대해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 하고 해결해야 될 여러 지점들까지 예측하게 해준다.

 

모스크라는 공간을 살펴보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그곳에는 물리적 장소인 공간만 존재하지 않았다. 공간을 보기만 해도 충분한 연구 자료가 되겠다고 생각한 곳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아니라 타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이방인이었다. (11쪽)

 

아마 저자는 한국에 사는 무슬림과 그들의 종교 생활에 대한 사소한 호기심이 몇 년간 이어지며 무수히 많은 소재와 주제로 이어져 많은 이야기를 만들게 될 것임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슬람, 중동, 아랍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지 않았으니.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이란어), 터키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개념이 있다. 이슬람과 중동, 아랍(혹은 페르시아나 터키와 같은 다른 문화권)을 구분하는 법이다. 학부 학생들이 배우는 대로 소개해보면 이슬람은 종교, 중동은 지역, 아랍은 언어와 민족으로 구분한다. 다시 말해 이슬람은 사람이 믿는 종교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계시 종교로서 전 세계 23퍼센트인 약 18억 명이 믿으며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와 메디나를 중심으로 7세기경 시작되었다. 비슷한 지역에서 발흥한 유대교 및 기독교와 유일신 사상으로써 그 맥을 같이한다. 무슬림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이다. 
무슬림이 이용하는 종교 시설은 흔히 모스크Mosque라고 부른다. 모스크는 영어식 표현이고 아랍어로는 마스지드Masjid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성원이라고 표현한다. (17쪽-18쪽)

 

지금 한국이 역사상 가장 세계화되어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아래 인용문을 보고 이것도 어쩌면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고려 시대가 가장 세계화되었던 시절이 아닐까. 아래 인용된 세종 때의 회회교도 이야기도 고려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일테니. 더구나 세계에선 아직도 우리는 고려Korea로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회회교도는 의관이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보고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더불어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인 바에는 마땅히 우리나라 의관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또 대조회大朝會 때 회회도의 기도하는 의식도 폐지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 <<세종실록>>36권, 세종9년 4월 4일 임술 4번째 기사 
회회교도回回敎徒는 무슬림, 즉 이슬람을 믿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료를 보면 당대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세종대왕이 이 땅을 통치했을 시기 서울에는 무슬림이 살았다. 게다가 당시 무슬림은 자신들만의 복식을 착용하고 있었다. (27쪽 ~28쪽)

 

세종 시기까지만 해도 이슬람을 믿는 이들이 서울에 살고 있었음을 처음 알았다. 더구나 전통 복장 그대로 입고 다녔으며 종교 예식도 지켜가며.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한국 고유의 것이라기 보다는 이것도 서구의 시선으로 각색되고 곡해되어 들어온 것이 아닐까. 

 

들으니, 회회국 사람은 남이 잡은 고기는 먹지 않고 반드시 손수 잡아먹으며, 또 마음을 착하게 하고 경을 읽는 등의 일을 한다는데, 대궐 안에 맞아들여 스승으로 섬긴다 합니다. - <<중종실록>> 5권, 중종 3년 2월 3일 신미 3번째 기사(29쪽)

 

지금 중동과 이스라엘 문제나,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들 모두 실은 서구 열강들이 만든 문제인데, 일반 대중들은 이런 것에 별 관심도 없을 테니.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써가며 서구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그 문제는 극동아시아의 한국 사람들마저 가지게 되었다니. 더구나 중종 때는 이슬람 나라 사람들을 칭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늘 그랬듯이 교재를 펴놓고 아랍어를 외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벼락 같은 큰 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런 쓰레기 같은 언어를 왜 공부해! 이런 나쁜 XX들이 쓰는 말을 왜 해!”
멍해졌다. 너무나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당혹감과 창피함, 분노 등 온갖 감정이 몰려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할아버지가 아랍어를 공부하는 나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우리 국민을 죽인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왜 공부하느냐는 내용이었다. (34쪽 - 35쪽)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 용감으로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 대부분 노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 나는 수명이 늘어난다는 건 준비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여긴다. 즉 70대나 80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경험이 쌓여 있지 않고 개인적, 사회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인이 되었다. 문명은 딱 평균 수명만큼의 사유를 가진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니 평균 수명이 늘어난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위 노인의 사례를 보니, 한 편으로 딱하고 한 편으론 사회의 사려 깊음이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졌으며, 저런 노인들이 몰려다니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들고 있는 모습에서 절망을 느끼고 있다. 그들에게 가서 미국 정부가 전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나쁜 짓들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그걸 듣고 있을까. 창원에 계신 칠순을 넘기신 어머니께서 현 정부가 일을 못한다고 했더니, 바로 '저기 빨갱이네'라는 말을 바로 들었다고 하셨다. 그걸 듣곤 다시 그 곳에 가지 않으며, 노인네들이 나라를 망쳐먹고 있다고 화를 내셨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걱정해야 될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아니라 절에 불을 지르고 교회를 지키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기독교 극단주의를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종교 포교 활동이 금지된 땅에서, 목숨을 걸고 전도활동을 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을 염려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신천지와 같은 이단 기독교를 염려해야 하는 건 아닐까. 왜 교회 십자가가 늘어날 수록 세상은 더 어려워지고 각박해지는 것일까. 우리는 아무 문제없는 모스크를 걱정해야 시기가 아닌 것같기도 하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격정적이었고 엄청난 문화 충돌에서 기인했다기 보다는 생활밀착형 문제에 가까웠다. 학부모 상담 기간이 되면 무슬림 여성들이 자녀 교육 상담을 위하 이슬람 복식인 아바야Abaya를 입고 온다 했다. 외적 모습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 실제로 언어가 서로 잘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 가장 큰 문제는 급식이었다. 급식 문제의 경우 비단 대구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문젯거리가 되어 기사화된 사례가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들의 급식은 무상으로 제공된다. 다만 종교로 인해 무슬림 아이들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무슬림 자녀를 둔 부모들은 무상 제공되는 급식인 만큼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의 위한 대체식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50쪽 -151쪽)

 

하지만 서유럽 국가들처럼 현실의 문제로, 일상의 문제로 올 것이다. 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익산에 할랄식품단지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시선을 가졌다. 아랍권에서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기도 하거니와 긍정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지역 여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우리들의 오해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왜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오해하고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이제 조만간 닥칠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는 것인가. 

 

독일의 경우 그동안 차별적 배제 모델을 표방해왔다. 이는 실용적 목적과 일시적 범위에서만 이주민을 수용하는 정책이다. 쉽게 말해 노동력으로 기능하는 이주민은 수용하되 이들의 정착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즉, 노동력 확충을 위해 일시적으로 국내로 유입되었다가 귀환해야 하는 대상으로 이주민을 간주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 이주는 장려하고 가족 단위 이주는 지양한다. (…) 합법적인 지위를 허락한 기간이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가리라고 판단했던 이주 무슬림은 불법적인 지위를 갖게 되더라도 자신이 아닌 다음 세대의 삶을 위해 독일에 남기 시작했다. 또 이들은 자신들만의 거주 지역을 만들어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 시작했고 해당 지역에서 고유문화라고 판단되는 독자적인 삶의 모습을 강하게 유지했다. (…) 따라서 최근 독일은 독일식 이슬람을 습득한 종교지도자만 활동할 수 있도록 허가하거나 이주민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독일어부터 문화와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일 사회의 요소를 습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202쪽-203쪽)

 

프랑스는 동화주의 모델을 표방한다. 이는 이주민의 영구 정착을 수용하되 해당 국가의 언어와 사회, 문화적 관습에 완전히 동화되게끔 유도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동화가 전제되어야만 국가 내에서 내국인과 같은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독일의 차별적 배제 모델보다 이주민 친화적 성격이 강해 보인다. 하지만 이주민이 이주 대상국의 문화를 수용하지 않거나 자신들만의 고유 문화를 버리지 않으면 사회 갈등이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사회 갈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국가가 바로 프랑스다. (….) 프랑스식 세속주의, 특히 정교분리 사상을 의미하는 라이시떼laicite에 입각해 무슬림 이주민을 프랑스 사회로 동화시키려는 움직임은 많은 사회적 반발을 가져왔다. (204쪽-205쪽)

 

영국은 다문화주의를 표방한다. 영국의 경우 인도-파키스탄 지역을 식민 지배했던 역사적 배경으로 말미암아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모스크 건립 갈등과 유사한 갈등을 경험하기도 했고 이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경우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개인 능력과 역량, 사회 적응에 따라 영국 사회에서 살아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5쪽)

 

나는 프랑스의 정책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영국 모델이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 책을 통해. 도리어 프랑스의 자문화 중심주의는 일견 19세기 제국주의와 닮아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아직도 그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우리 나라를 선택하는 이유는 분명 존재할 것이었다. 단순히 경제적 목적이라면 일본이나 유럽, 북미 국가처럼 다른 선택지가 있는 상황이다. 무슬림들의 답은 놀라웠다.
“안전해서요.”
길을 걸어갈 때 사람들이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볼지언정 와서 때리거나 심한 경우 아무 이유없이 죽이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223쪽)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읽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 책이다.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많은 것을 알게 하고 많은 고민을 던지는 책이었다. 다들 읽기를 권한다. 저자인 이수정 교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수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