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칼날 위의 역사, 이덕일

지하련 2023. 5. 7. 13:33

 

 

칼날 위의 역사

이덕일(지음), 인문서원

 

 

 

요즘 역사책을 자주 읽는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 패권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나라들을 보니, 역사적으로 패권 국가였던 적이 있거나 그러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19세기 전까지 일본은 패권국가가 된 적이 없었지만, 그 이후로 일본은 패권국가로 나아갔다. 그러나 조선은 황당할 정도로 무력한 상태였으며 패배주의에 휩싸였다. 리더십이 무너진 지는 오래되었으며 선비 정신이라는 것도 변화하는 세계 앞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솔직히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국사는 나에게 무엇을 던져 주었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더 큰 일은 제대로 된 역사 수업을 받지 못했으므로, 제대로 된 역사를 보는 눈도 없고 그저 TV드라마에서 보는 역사가 전부가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고종은 그런 인물이었다. 나라를 삼키려는 거대한 해일이 밀려드는데 시대착오적인 왕권 강화에만 신경 썼다. 권력이 나라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도, 극심한 사회 갈등을 치유하지도 못하니 나라는 방향을 잃고 관(官)과 백성들이, 백성들과 백성들이 충돌했다. 개혁파는 모두 제거되고 수구파만 득실댔다. 그렇게 고종은 조선을 망국으로 끌고 갔다. (5쪽)

 

고종과 메이지는 1852년생 동갑인데, 고종은 1864년에 즉위했고 메이지는 3년 늦은 1867년에 즉위했다. 1912년 세상을 떠난 메이지는 45년간 왕위에 있었는데, 재위 기간에 전국 시대의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못 이룬 꿈을 달성해 조선을 점령했다. (13쪽)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한 가문이 500년 가까이 왕조를 유지한, 세계사적으로 유래 없는 나라를 좋아했다.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망국으로 이끄는 군주를 모실 수 있을 만큼 양반들은  자신들의 이득과 명분에만 눈이 멀었으며,  백성들은 너무 아둔하고 무지해서 양반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한 때 일부 사학자들이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실은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그 정치적 의미가 궁금하다. 명성황후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말자. 조선 말기 정치권에 있던 대부분의 인물들은 속된 말로 함량미달이었다. 그런 이들을 대중문화에서 포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걸 보고 조선 시대 백성들 처럼 곧이곧대로 믿는 무지한 대중들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선조 일행은 4월 30일 새벽 한양을 떠나 5월 1일 개성에 도착했다. 선조의 최종 목적지는 요동, 즉 만주였다. 조선을 버리고 요동으로 건너가 명나라의 제후 대접을 받으며 살겠다는 것이다. (21쪽)

 

이 얼마나 황당한 군주인가. 이 때 류성룡과 이순신이 없었다면 조선은 망했을 것이고 지금 우리는 일본말을 국어로 배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선조는 왜 저런 결정을 했을까.

 

조선 백성들이 우르르 일본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선조가 듣기에는 일본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의 병역 제도와 조세 제도 때문이었다.(22쪽)

 

다 양반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병역과 조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조선 숙종 16년(1690), 대구부의 신분 구성에서 양반은 9.2%, 양인(良人, 평민) 53.7%, 노비 37%였다. (…) 선조 39년(1606)에 단성(丹城, 경남 산청) 지역에서는 64%가 노비였고, 광해군 1년(1609) 울산 지역에선 47%가 노비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9쪽)

 

제임스 팔레(James B. Palais)는 아예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규정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여기에 반발했지만, 그 반발은 궁색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것은 양반들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기득권 세력이었다.

 

노비제도는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은 가장 큰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77쪽)

 

하지만 반대하는 양반들 때문에 어떻게 하지 못했다. 심지어 종부법(아비의 신분을 따라 자녀의 신분이 결정되는 법)이 세종 때 종모법(어미의 신분을 따라 자녀의 신분이 결정되는 법)으로 바뀌자 노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이덕일의 <<칼날 위의 역사>>는 조선 시대의 잘못한 점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의 한국 사회와 비교하고 있다. 솔직히 조선 시대가 500년 가까이 지탱된 것이 기적에 가까워 보였다. 선조라는 임금이 저토록 못난 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는 그의 두 아들들이 전쟁 중에도 나쁜 짓을 일삼는 것을 그대로 놔둘 정도였다. 이순신을 질투하여 이순신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을 정도이니, 선조가 그 자리를 유지한 것은 양반들의 공모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서해 류성룡 같은 이가 없었다면 진즉 패전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계속 이어진다. 류성룡이 물러나자 그가 했던 정책들은 폐기되었으며, 이순신이 살아남았다면 유배를 갔을 것이다. 이미 그는 그가 승전을 하더라도 죽을 것임을 알고 전투에 임했다. 500여 년 내내 못난 왕과 사리사욕에 집착한 양반들은 백성들의 등골을 파먹었다. 심지어 명나라 군대가 지원을 온 것은 조선의 군대(이순신의 군대)이 승리했다는 명분을 가지게 되면 안 된다는 밑그림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밑그림은 광해군의 실각으로 이어지고 병자호란으로 이어진다.

 

조선의 사색(四色) 당파는 노론(老論), 소론(小論), 남인(南人), 북인(北人)을 뜻한다. 그런데 이들의 원뿌리는 모두 사림이었다. 사림은 조선 건국에 가담하지 않고 향촌으로 내려갔던 고려 사대부 세력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향촌에서 학문을 닦는 동안 한양에서는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이라는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그 동지들로 구성된 훈구세력이 정권을 장악했다.(229쪽)

 

그러나 조선은 벼슬아치들은 모두 유학자였기 때문에 승지들이 임금에게 마냥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았다.(225쪽)

 

예나 지금이나 추상 같은 권력은 가난과 동의어이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모두 가난한 기관이었다. <연려신기술> ‘관직전고’는 사헌부에 대해 “심히 맑아서 물력(物力)이 없다”고 말하고 있고, 사간원에 대해서는 “제일 청한(淸寒, 맑고 가난함)하다”고 표현하고 있다.(218쪽)

 

하지만 일부의 지식인만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했으며 백성들을 걱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자주 그런 인물들은 유배를 당하고 사약을 받는다. 책을 보면 조세 제도나 병역 제도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데, 이러한 법이 백성들에게 고루 혜택이 가도록 유지된 적은 길지 않다. 국사 시간에 그렇게 배웠던 대동법 같은 것 말이다. 반대로 국사 시간에 언급되지 않았던 많은 기간 동안 백성들은 핍박 받았으며 노비로 전락했다. 그것이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세상은 변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했으며 언제나 원하는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섰지만, 아직도 조선을 지배했던 어떤 사악한 틀이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끼리 싸우고 있는 형국이랄까. 우습고 슬프다. 얼마 전에 읽었던 조경달의 <<근대 조선과 일본>>에서는 19세기 조선 민란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는데, 그런 민란 속에서도 조선의 정치 시스템이 유지되었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민란은 그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살풀이 같았다. 민란이 일어나더라도 조선을 변하지 않았다. 한일합방은 그 결과물일 뿐이다.

 

조선 시대나 현대 한국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여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이라는 직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치임으로 술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술을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술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나도 술 좋아하지만, … 글쎄다.

 

한 국가의 리더는 그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반영할 뿐이다. 결국 리더의 잘못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잘못이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도, 그 나라를 버리고 만주로 가서 제후군주로 살려고 했던 임금을 다시 한양으로 올린 것도, 그토록 많은 민란이 일으키고도 나라의 잘못된 정책 하나 바꾸지 못한 것도 다 그 나라 사람들의 한계인 셈이다. 나는 리더에게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리더를 뽑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절망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덕일 소장은 대중 역사서를 많이 집필하였으며 일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나 해석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이 점을 고려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이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