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Thinking/Technology

소셜 미디어의 종말?

지하련 2023. 8. 13. 14:39

 

몇 주 전에 작년 11월 The Atlantic에 실린 Ian Bogost의 <<The Age of Social Media Is Ending>>를 읽었다. 시간을 내어 꼼꼼히 읽고 난 다음, 글 대부분이 글쓴이의 주관적인 의견이라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나 또한 그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던 터라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최근 나온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소셜미디어가 정치적 의견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뉴스를 보고, 어쩌면 소셜 미디어의 ‘에코 챔버’효과에 대해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였나 하는 생각을 하며, Ian Bogost의 글을 블로그에 메모해 본다.

 

영어로 된 글을 읽으면, 이걸 기억하는 게 쉽지 않다. 영어를 영어로 기억하기 쉽지 않고 이를 한글로 옮겨 기억해야 하는데, 이건 번역해야 되는 되는 일이다 보니,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아래는 Ian Bogost의 글을 읽으면서 메모해둔 것이다. 번역은 대강 했다. Ian Bogost는 페이스북, 트위터가 이제 그 명성과 위력을 잃어간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인스타그램은 이야기하나, 틱톡, 유튜브의 숏츠 같은 것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지 않으나, 소셜 미디어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과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소셜 네트워킹은 단어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글을 게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기 위한 것이다. 신뢰할 만한 연락처로부터 다른 이의 연락처로 연결되어 신뢰할 수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다. (As the original name suggested, social networking involved connecting, not publishing. By connecting your personal network of trusted contacts (or “strong ties,” as sociologists call them) to others’ such networks (via “weak ties”), you could surface a larger network of trusted contacts.)

 

소셜 네트워크와 소셜미디어를 혼용해서 사용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비활성화된 시스템이지만(마치 전화부처럼), 소셜 미디어는 활성화된 매체라고. (The terms social network and social media are used interchangeably now, but they shouldn’t be. A social network is an idle, inactive system ? a Rolodex of contacts, a notebook of sales targets, a yearbook of possible soul mates. But social media is active - hyperactive, really -  spewing material across those networks instead of leaving them alone until needed.)

 

소셜 네트워킹 시대에 콘텐츠의 생성과 소비는 필수적이며, 소셜 미디어 시대에 콘텐츠는 얇고 잘 스며들 수 있는 형태를 지향하게 된다. (In the social-networking era, the connections were essential, driving both content creation and consumption. But the social-media era seeks the thinnest, most soluble connections possible, just enough to allow the content to flow.)

 

위 언급은 매우 시사적이다.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에 잘 유통될 수 있는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를 말한다. 전통적인 매체는 소셜 미디어에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짧은 동영상이나 문구는 상당히 유용하다. 나는 그것이 사람들을 더욱 성급하게 만들고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며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고 믿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에 별 관심없어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가 소셜미디어로 진화한 것은 기회와 재앙을 동시에 가져왔다. (Social networks’ evolution into social media brought both opportunity and calamity.)

 

하지만 Ian Bogost는 무엇이 기회였는지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재앙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분열되고 공격적이거나 사기성이 농후한 정보(콘텐츠)가 소셜미디어 상의 유통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유통을 플랫폼이 알아차리고 대중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그 피드백 순환을 멈추기엔 너무 늦다. (Polarizing, offensive, or just plain fraudulent information was optimized for distribution. By the time the platforms realized and the public revolted, it was too late to turn off these feedback loops.)

 

집착과 강박이라…(Obsession fueled the flames. Compulsion had always plagued computer-facilitated social networking ? it was the original sin). 

 

뒤이어 이런 문장이 이어진다. 

 

활용가능성을 고려해 온라인 프로필 연락처로 연결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Rounding up friends or business contacts into a pen in your online profile for possible future use was never a healthy way to understand social relationship.)

 

더 나아가 소시오패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이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From being asked to review every product you buy to believing that every tweet or Instagram image warrants likes or comments of follows, social media produced a positively unhinged, sociopathic rendition of human sociality. That’s no surprise, I guess, given that the model was forged in the fires of Big Tech companies such as Facebook, where sociopathy is a design philosophy.) 

 

너무 과격한 주장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주장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재능이다. 글을 쓰는 재능과 그 속에 진실을 담는 재능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진 동일한 소재를 다룬 글들(혹은 주장이나 의견)을 번갈아가며 읽어야 한다. 또한 이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서 제반 정보를 확인할 필요도 있다. Ian Bogost가 언급하듯 소셜미디어가 좋아하는 콘텐츠는 공격적이고 거짓 정보를 담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콘텐츠를 대놓고 기사화하는 언론사들이 한국엔 너무 많다는 건 정말 비극적인 일이며, 그것에 대해 사람들도 둔감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는 정치적 의견에 있어서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나는 최근의 정치적 양극화(이건 전세계적인 경향이다)가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여겼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상당히 의외의 결과여서 여기저기 기사화가 되었다(한국 언론에선 별 관심이 없었던 것같지만).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does-social-media-polarize-voters-unprecedented-experiments-facebook-users-rev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