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그 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하련 2023. 10. 2. 15:14

 

 

 

 

그 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지음), 이재룡(옮김), 열린책들 

 

 


세상에 참 많은 작가들이 있다. 무수한 작품들이 있고 그 작품 하나하나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어떤 세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놀랍고 안타깝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글로 번역된 걸 읽다가 영어 원문으로 읽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란 신비롭고 예술의 끝은 없다.

 

일년에 읽고 볼 수 있는 작품의 개수는 한정적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어느 글에선가 1년에 백사십여권을 읽었다고 했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권씩 읽은 것인데, 대단하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 정도의 책을 읽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소설가나 시인은 책을 잘 읽지 않거나 문학 작품에만 편중된 독서를 하기 일쑤다. 실은 작품 활동을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긴 대학 교수들 대부분도 책 읽는 것과 담 쌓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먼저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 무수한 작품들 중에 나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작품이 있을 텐데, 참 찾기 힘들다. 일년에 문학작품이라고 해봤자 10권도 채 읽지 못하는 데도..

 

에르크 뷔야르는 역자인 이재룡 교수의 소개에 의하면, 주로 서구 근현대사의 전환기에 초점을 맞춰 <역사 다시 쓰기>에 천착하는 작가라 한다. 나는 현대적 작법으로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립에 병합되는 순간의 모습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한국의 작가들은 일제 식민지나 한국 전쟁을 밀도 있게, 현대적 소설 쓰기로 그려내지 않는다. 어쩌면 한국 전쟁 이후의 한국 현대사가 그만큼 파란만장했을 지도.

 

반대로 유럽은 아직도 과거를 이야기하는 탓에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오따르나 데리다의 후기 구조주의는 과거(이성중심주의)를 반성하여 미래를 준비하자는 태도(탈이성, 반이성)를 견지하는데, 도리어 과거에 대한 분석, 반성, 해체에 집중하다가 미래의 아젠다를 찾지 못한 건 아닐까. 푸코도 그렇고 들뢰즈는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너무 미학적이라고 느꼈다.

 

뷔야르의 <<그 날의 비밀>>은 짧고 단정하지만, 한국의 독자가 읽기에는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고 공감하기에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다. 지극히 서유럽적인 작품이랄까.

 

태양은 차가운 별이다. 그 심장은 얼음가시다. 그 빛은 비정하다. 2월, 나무들은 죽고 강은 메말랐으며 샘은 더 이상 물을 토하지 않고 바다는 그 물을 삼키지 않는 듯 싶다. (9쪽)

 

역사적 사건을 소재하는 작품치곤 상당히 문체에 공을 들였다. 이건 프랑스 작가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들은 종종 무리할 정도로 문장과 표현과 공을 들인다.

 

헤르더의 광기, 피히테의 연설 이후에, 다시 헤겔이 찬양한 국민 정신, 감정의 공동체라는 셸링의 꿈이 있었으니, <생활권>이란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34쪽)

 

독일이 파시즘화된 이유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들이 패전국인 독일에게 너무 많은 전후 보상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은 경제적인 해결을 갖추지 못했고 독일 사람들을 파시즘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아랍 세계의 이슬람 극단주의도 서구 열강의 잘못된 정치적 의사결정이 배경이다. 왜 이스라엘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냈는가. 왜 사우디아라비아를 만들었는가.... 현대 유럽의 모습은 그들 스스로 만든 모습에 불과하다. 겉으론 고상한 척 하지만, 속은 지극히 이기적인.

 

그러나 병합 직전 단 일주일 동안 1천 7백 건이 넘는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곧바로 신문에 자살을 보도하는 것이 저항 행위가 될 것이다.(…) 알마, 카를, 레오폴드, 그리고 헬레네는 아마도 창문을 통해 거리에서 끌려가는 유대인들을 보았을 것이다. 삭발당한 사람들을 창문 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사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131쪽)

 

유대인의 문제는 그들이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방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그들 공동체가 가진 특유의 이기주의는 다른 이들과의 공동체나 유대감을 만들지 못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유대인 공동체에 대해 알아가면 갈수록 유대인에 정나미가 떨어지는데, 서구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져 왔으며, 유대인 특유의 선민 의식은 현실 정치에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유대교에서 찾으려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 그 누구도 그런 결정을 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아직 인간은 어리석기만 하다. 끔찍한 역사는 종종 반복된다. 안타깝게도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그들도 똑같이 파시즘화되어 가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리더십은 너무 형편 없어서 마치 지금 전쟁을 준비하는 듯 싶다. 한술 더 떠 현 한국의 정권은 전투 무기 자랑에 열을 올리는 것같다. 하지만 전쟁은 놀이나 게임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우생학에 기반한 파시즘이 아직도 있어서 보스니아 전쟁 때에도 인종 청소가 있었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전쟁에서도 인종 청소 이야기가 흘러 나올 정도다.

 

하긴 동아시아를 잔인한 전쟁 속으로 몰아넣은 일본인들이 생체 실험을 하고 많은 여성들을 종군 위반부로 끌고 갔지만, 사과나 반성은 커녕, 그들 스스로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걸 보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탈역사주의적 포스트모던 국가임을 알게 된다. 일본 내에 있는 무수한 비판적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결코 일본의 정치인이나 일반 국민들에겐 전달되지 않고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한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직업적 신분사회이기 때문이다. 몇 세대를 걸쳐 식당을 하듯 정치인 가문이 있고 학자 가문이 있는 셈이다(이런 일본과 화해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한국 정부 수반은 더 황당하기만 하다. 화해란 피해를 끼친 사람이 미안하다고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이지, 피해 당한 사람이 그래 이제 지난 일을 잊고 잘 지내자라고 하는 게 아니다. 더 나아가 이런 정부를 선택한 어리석은 국민들은 어쩌고). 전범 기업의 문제도 이와 비슷한다. 이 소설은 독일 기업인들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 기업들 대부분은 지금도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하지만 그 기업들이 나서서 반성의 목소리를 내는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일본의 전범 기업들은? 나는 알지 못한다(한국의 보수 정권은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정말 무능하다가 아니다 정말 유능하다. 그들은 일제 식민지 때부터 누려운 부귀영화를 아직도 누리고 있으며, 그 부의 원천이 일본에서 나왔음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일본에 대해서 우호적이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그런데 현 정권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정권을 지지하는 이가 10명 중에 3명, 4명이다. 솔직히 너무 끔찍해서 견딜 수 없다).

 

에리크 뷔야르 소설을 읽고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다른 이야기만 적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알겠지만,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그다지 추천할 만한 소설이 아니다. 차라리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디아노나 에르노가 더 낫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유럽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도 덤으로 알고 있으면 더 좋고), 프랑스 문학에 대해 기본적인 선호가 있어야만 이 소설을 그마나 즐겁게 읽을 수 있다. 

 

 

* 독일 전범 기업들의 사회 환원 프로젝트. https://www.stiftung-evz.de/en/  

 

Foundation Remembrance, Responsibility and Future

For 20 years, the EVZ Foundation and its project partners have stood for a culture of remembrance that creates curiosity as well as references and encourages as many people in our society as possible to actively and critically examine historical knowledge.

www.stiftung-evz.de

 

*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전쟁(2020년 9월 27일에 발발하며 2020년 11월 10에 끝남) : 우크라이나 근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