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연결된 위기, 백승욱

지하련 2023. 12. 3. 14:30

 

 

연결된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반도 위기까지, 얄타체제의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백승욱(지음), 생각의 힘


 


가끔 전국의 대학에 인문학 교수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이 가끔은 너무 신기하다. 왜냐면 내가 읽거나 읽으려고 기록해두는 인문학 책들 중에 국내 대학의 교수가 쓴 책은 정말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수십 년부터 이야기되던 인문학의 위기는 실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 교수의 위기라는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대학의 인문학 교수들은 좀 반성해라)

 

중앙대 사회학과 백승욱 교수의 글은 종종 여러 지면에 읽은 바 있다. 꾸준히 읽는 저널이 없음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일반 대중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있는 인문학자라 할 수 있다(그런가?). 이 책 <<연결된 위기>>는 최근의 여러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변화로 인한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언급과 분석이 국내 학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상당히 시사적이었다. 그간 여러 지정학 책들을 읽었으나, 대부분 서구 학자들에 의해 쓰여지고 분석된 책이었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바로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1. 왜 나는 현대 세계사에 대해서는 까막눈인가.

위 문장에서 ‘나는’을 ‘우리는’으로 썼다가 바꾼 단어다. 나는 세계사를 공부했고 서양철학사, 서양문화사, 서양지성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공부했던 사람이지만, 이 책에서 언급된 중국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전쟁을 둘러싼 여러 지정학적 변화와 냉전의 시작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쑨윈의 삼민주의는 단어로만 기억하고 있었으며,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가게 된 배경(이런 독재자가 없을 것이다)이나 한국전쟁 당시에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서로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루스벨트와 스탈린과는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며, 만일 루스벨트가 죽지 않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정치 지도를 만들어 나갔다면, 지금의 세계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게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저자는 2개의 배경을 제시하는 셈이다. 하나는 현대 중국의 변화이며, 다른 하나는 얄타 체제의 시작과 해체인 셈이다. 그러니 이 책은 대부분은 현대 중국과 얄타 체제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굳이 이렇게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술되고 검토된다. 이 부분은 이 책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다. 단점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너무 상세하게 기술되는 바람에 다소 지루하고 반복적이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자주 급하게 쓴 책이라는 인상을 받게 한다.

 

최근 읽게 되는 근현대사 책들은 반복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알게 되니, 신기한 노릇이다. 그러니 현대사 책에 손이 가게 된다.

 

2.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

현대사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질서가 크게 요동친 시기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 때고, 또 한 번은 2차 대전 종료 후 해당된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결국 전쟁으로 치달은 때였다. 되돌아보면 두 차례 국제적 대변동의 국면에서 한국의 지식인, 정치가와 사회운동은 정세 변화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 돌파구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복잡 미묘한 국제 정세에 직면할 때마다 한국 사회는 이를 분석하고 체계적 대응에 나서기보다는 의지만으로도 현실을 돌파할 수 있다는 과도한 열망에 빠지곤 했고, 이는 곧 좌절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우리 마음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생각해 국제 정세란 무시해도 좋은 것 아니면 우리로서 어찌 해볼 수 없는 숙명으로 간주하곤 했다. 나는 이를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이라고 불렀다. (11쪽)

 




3. 브레튼우즈 체계가 신자유주의로

1979년 미국에서 폴 볼커 연준 의장이 달러 신뢰성 강화를 목표로 미국 국채 이자율을 상승시키면서 긴축 정책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시장개입적 자유주의 제도 운용(이른바 케인즈주의)에 대한 대대적 반전이 일어나고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전면화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동을 제약하고 이를 통해 고도 금융을 통제한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와 달리, 국민 경제의 자율성이 갖는 틀을 허물고 전 지구적 금융 통합을 강화하였다.
신자유주의는 한 세기 전과 같은 세계 경제의 해체를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통합을 추진했는데, 몇 가지 주요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자주의적 자유주의는 세계경제를 블록화하는 경향을 억제하고 금융적 통합력을 높인다. 둘째, 국민국가는 더 이상 경제의 기본단위가 아니며 세계경제는 경쟁력 있는 경제행위자들의 네트워크적 통합으로 전개된다(초국적 기업은 금융 위기 시대에 세계적 네트워크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고리가 되는데 이런 초국적 기업 네트워크라는 특징은 이미 미국 헤게모니 형성 과정에서 마련된 것이다). 셋째, 개별 국민경제는 이런 초국가적 금융 투자에 개방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회계적 투명성, 외국인 투자에 대한 금융 시장의 개방성, 특히 국채 시장의 개방성, 금융 자본에 의한 경제정책 개입-통제력이 상승한다. 넷째, 경제 행위자들은 모두 투자의 책무성에 종속된 기업적 주체로 전환한다.
신자유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수익성이 저하한 결과로 출현하였고, 금융을 우위에 두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66쪽 ~ 67쪽)

 

이제 신자유주의도 저물고 있다. 최근 나오는 많은 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누적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 금융을 통한 자본 축적 공간의 전 지구적 확장과 국가간 체계 질서의 관리 불가능성이 모순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난 하나의 결과이다. (69쪽)

 

이제 신자유주의 다음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시점이지만, 한국 정부와 여당은 여기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고 도리어 신자유주의적 방향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는 IMF 이후 본격화되었다. 나 또한 이 시기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 때 정말 많이 들었던 단어가 ‘글로벌 스탠다드’와 ‘투명성’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다소 낯설었지만 그만큼 한국 경제 시스템은 낙후되어 있기도 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 흐름에 적절하게 대응하여 현재까지 왔다고 할 수 있지만,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 빈부 격차의 심화, 높아진 자살율 등은 신자유주의로 우리가 얻은 상처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들의 일부일 뿐이다. 이 책에서는 얄타체제의 해체 과정으로 여기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다.

 

4. 신냉전이라는 오독

나는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세계가 다극화되고 있다는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이 새로운 냉전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솔직히 ‘신냉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말 아무 고민 없이 쓸 수 있는 말인데, 학자들의 세계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좀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싶다(역시 인문학 교수의 위기). 이 책의 직접적인 계기가 이 단어였다는 점에서도 좀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극화된 세계에서는 미국과 같은 패권 국가가 사라지고 각 지역 패권 국가가 등장한다. 이 점에서 각 국가들의 대응은 확실히 이런 측면을 확실히 보여준다. 미국과의 갈등을 노골화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나라들 -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터키 등 - 은 흥미로운 사례다. 나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지정학적 혼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누리엘 루비니의 <<초거대위협>>에서 언급되었던 위협 요소들 중 한 두개가 동시에 일어나더라도 인류는 상당 기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 때문이다. 특히 기후 위기는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다.

 

저자가 말하는 ‘얄타체제의 해체’ 또한 쉬운 분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아마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얄타체제의 해체’라는 점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접근이면서 주제다. 적어도 한반도의 역사는 중국, 일본과의 갈등 관계 속에서 현대에 들어서 소련, 미국이 끼어든 판국이니까. 또한 한국 전쟁이 다들 알다시피 ‘스탈린의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냉전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얄타체제’에 대한 분석은 한국의 미래를 구상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아예 의식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막무가내) 의지만을 표현하는 정권을 향한 지지율이 30%나 된다는 점에서 나는 절망하고 있다. 적어도 내 시각으로 한국이 진심으로 망하길 바라는 사람이 열 명 중 세 명이나 된다는 것으로 이해되니까. 하긴 그렇다고 야당이 이렇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나마 현 정권보다는 살짝 나아 보이긴 하지만.

 

5. 자유주의의 위기

미국 공화당의 비자유주의 세력, 프랑스를 시작으로 독일로도 확장된 인종주의적 극우 정당의 세력화 등은 근본적으로 자유주의 헤게모니 자체의 위기가 ‘내파’에 따른 과정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64쪽)

 

지금의 세계적 동요에서 관찰되는 특징은 여러가지 점에서 100년 전 1차 세계 대전 시기와 유사하다. 이는 세계가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길한 조짐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여섯 가지 정도 중요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강대국들의 전쟁, 팬데믹, 자유주의 위기, 파시즘, 전시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유사점이다. (15쪽)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비판적 사고를 하고 사회는 좀더 나아질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유주의의 위기라고 적긴 했으나, 실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의 등장이나 이와 대비되는 서방 민주주의 국가의 허약한 리더십은 한국의 미래를 상당히 불투명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라도 정치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과 학습이 중요한데, 그건 쉽지 않을 것이다.

 

6. 한국의 미래

중국은 대만을 침공하거나 아니면 중국 내부로부터 위기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어느 것이든 한국에겐 위기다. 일본은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다. 미국은 자국 중심주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 가자 서안지구에서 일어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을 아예 대놓고 ‘바이든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쓴 서구 저널도 있었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한국의 미래 따위엔 관심 없고 한국을 어떻게 하면 중국, 소련, 북한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이익 창출에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도 현 한국 정권의 태도, 정책, 행동들을 보면 한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책에서의 제시하는 방안은 하나같이 절망적이거나 어려운 것들이었다. 저자인 백승욱 교수가 한국 사회를 규정짓는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이라는 문구는 귓가에서 떠나지 않고 맴돈다. 나는 이러한 논의를 조선 시대까지로 확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선비라고 불렸던 양반 사회의 기득권이 조선을 몰락으로 이끌었으며, 현재에도 그것이 이어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7. 연결된 위기

하나의 사건에는 반드시 배경과 원인이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다수의 초국적 기업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이 되었다. 특히 문화적으로는 세계적인 국가가 되어버려, 이젠 전 세계의 다양한 사건사고에 기민하게 대응해 가면서 북핵 문제나 미국, 중국, 대만, 일본, 소련과의 관계 정립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이런 것에는 별 관심 없고 ‘국뽕’에만 빠져 있거나, 소수의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한국의 몰락을 지지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들은 조선 시스템(견고한 양반(고매한 선비)/상놈(노비) 체계)의 회귀를 염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읽었던 조경달의 <<근대 조선과 일본>>에서 19세기 조선에서 그토록 많이 일어났던 민란들 와중에서 살해당한 조선의 관리가 고작 몇 명 밖에 되지 않는 사실에 놀랐으며, 심지어 포박한 지방 관리들을 다시 풀어주며 임금에게 민중의 고통을 잘 설명해주기를 바랬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정도전이 세웠던 조선 시스템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당시 조선과 일본을 제대로 비교한다면, 어떨까. 19세기 일본 동경과 조선 한성을 비교한다면, …

 

한국은 다시 무너질 수 있다.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무너질 수 있는 시나리오는 너무 많다. 이 책의 저자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것이 아닐까. 솔직히 상당히 걱정스러운데, 이 나라는 너무 태평하기만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욕 밖에 나오지 않지만).

 

지금은 세계가 다시 재편되는 시기이다. 위기가 거듭되면서 많은 피해가 일어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으로도 한국 경제가 타격을 입는 시기인데, 중국이나 대만, 혹은 북한으로 인해 한국에 직접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며, 이는 10년 이내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현재 한국의 정부나 언론, 정치인들은 태평하기만 하고, 일반 대중들은 아예 관심도 없으니 …  

 

 

백승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