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지하련 2024. 3. 24. 13:21

 

 

 

나의 한국현대사 1959 - 2020 

유시민(지음), 돌베개

 

이 정도의 수준에서 글을 써야 일반 독자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최근 읽고 있는 에릭 홈스봄의 <<극단의 시대>>는 일반 독자를 읽을 수 없다고 여겼다. 고루한 번역부터 너무 많은 사람 이름들과 지명, 사건들은 아무 주석도 없이 그냥 이어진다. 나도 천천히 읽어야 할 수준이니, 일반 독자는 그냥 읽지 말라는 이야기다. 하긴 전문 역사서이니, 그럴 수 있겠지만. 

 

반대로 유시민의 이 책은 너무 조심했다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쉽게 읽히나, 재미는 없다. 바진의 <<매의 노래>>에서 언급된 아우슈비츠가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던 독일 청년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이젠 한국도 그런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객관적인 사실 전달과 함께 평가도 함께 이루어져야만 오해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부분이 약하다. 방송에 나온 유시민 작가의 목소리를 이 책을 통해 듣기 원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러나 책을 멀리 하고 한국 현대사에 대해 아예 까막눈인 사람들에게 이 책은 권할 만하다. 그만큼 쉽게 읽히기도 하고 한국현대사의 여러 풍경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논쟁을 불러일으키거나 유시민 작가를 공격하려는 이들에게 빌미를 줄만한 평가나 의견은 거의 내비치지 않음으로써 역사에 대한 가치판단을 유보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다(그러나 이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역사 책을 자주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만큼 내가 근현대사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었음을 알아차렸고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 묻기 위해서도 과거는 무척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386 운동권의 끝물이었던 시절 대학 생활을 했던 나로선 NL이나 PD에 대한 구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 종속이론 따위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80년대 대학생들로 하여금 무분별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경도를 불러일으키고 아직도 잘못된 이론적, 철학적 지향을 버리지 못하게 한 원인에는 전두환 군사 정권이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명확히 알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런 학생들이 서로 모여 마르크스의 책이 아니라 레닌과 스탈린의 소련에서 제작되었던 이론서들을 읽으면서 혁명을 꿈꾸었다니. 심지어 겉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하는 북한을 따라간 학생들을 공격하기 전에 그 당시 어른들과 군사 정권을 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도 그 때 대학생이었으니. 그 때 어른들 대부분은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어떤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 그것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져야 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건. 그러니 나이가 65세나 70세 이상 되면 투표권을 반납해야 된다. 적어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미래 세대의 발목을 잡는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러니 그냥 미래 세대에게 모든 것들을 넘겨야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보다 책임감 있는 자세로 동시대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주장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걸 위해 나이 든 이들은 그들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국현대사에 대해선 이 책만으로 부족해 보인다. 다른 책들도 몇 권 구입해두었으니, 이 책들을 읽고 글을 올릴 수 있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