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극단의 시대, 상권, 에릭 홉스봄

지하련 2024. 4. 28. 08:37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 (상권) 

에릭 홉스봄(지음), 이용우(옮김), 까치

 

 

20세기가 지난 지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20세기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20세기 초반에도 19세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여겼을까.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평화란 일시적이고 지구 어딘가에선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새삼 알았다. 한국(South Korea)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임을. 20세기 전반기는 총력전의 시대였고 20세기 후반은 냉전과 종교의 시대였음을. 

 

그러나 책을 읽는 속도는 느리고 번역은 매우 불친절했다. 내가 이 책을 사두고 수십년이 지난 뒤에야 읽게 된 것은 에릭 홉스봄의 스타일도 있을 수 있으나, 번역의 문제도 한 몫 했을 듯 싶다. 그러나 20세기 전체를 개괄하려는 이들에게 이 책만큼 좋은 책도 없다. 에릭 홉스봄은 좌파적 시각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기술하지만, 한국에서 바라보는 바 그런 좌파는 아니다. 실은 한국에서 좌파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모르겠다. 레닌과 스탈린을 다시 떠올리면서, 대학 시절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떠올렸다. 형편없는 기억이었지만, 그 짧은 지식으로 마치 세상의 비리를 다 알아버린 듯 거리로 나서던 이들을 생각 나 안타까웠다. 얼마전 읽은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유시민은 학생 운동권이 마르크스주의로 경도하게 된 계기를 전두환 정권 때문이라고 적고 있었다. '종속이론'을 들먹이던 이들도 있었는데, 결국 남미의 경제는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80년대 학생운동권이었던 이들이 왜 보수 정당으로 가게 되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고 할까.

 

이 책은 역사책이다. 거의 한 세기를 개괄하고 있기 때문에 인명, 지명, 전문 용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각주는 없다.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읽는 속도가 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각오를 하고 읽어야 한다. 나 또한, 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하였기에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어렵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한 책이니, 포기하지 말자. 아래는 독서모임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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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자에 대하여

역자에 대한 성토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에릭 홈스봄의 원문 자체도 만연체라고 하지만, 그래도 번역에 성의가 없다. 역자 이용우님은 어디 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신데, 이 역서를 다시 번역할 생각은 없으신지 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2. 대공황에 대해서

대공황이 끼친 영향이 이토록 지대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대공황이 있었으며, 전 세계는 급격하게 파시즘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근대 서구 사회가 지탱해온 자유주의적 가치나 태도, 신념들이 무너졌으며 그만큼 취약한 것이겠지요. 어쩌면 현대 한국이, 이 한국의 시민들이 추가하고 지탱해오고 있는 민주주의도 너무 취약한 기반에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3. 파시즘

유럽에선 극우주의적 흐름이 있습니다. 나치 신봉자들이 대놓고 길거리를 돌아다니지는 못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진 않습니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도 기독교 근본주의(혹은 이단)가 정치 세력과 결탁되어 있는 보기 드문 나라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파시즘은 현대 사회가 싸워야 하는 새로운 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4. 미국

미국은 20세기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으며 아직도 강력한 나라입니다. 이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을 빨아들이는 것도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19세기까지 서유럽이었다면 20세기는 확실히 미국입니다. 학문 뿐만 아니라 예술, 대중 문화도 미국 중심으로 흘러갔습니다. 전세계적 유행으로서 '미국화'가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유럽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만, 미국은 이 때 이미 전 세계 1위 국가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한 것은 정말 큰 오판이었던 거죠.

 

5. 제국주의의 몰락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이 무너지고,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전통적인 강자들이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 때 치고 올라오는 것은 스탈린의 소련이며(루스벨트와는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유럽 제국주의는 이후 신대륙의 식민지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또한 영국의 식민지이기도 했던 미국은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지원해서 독립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나왔다는 건 최근에서야 알았습니다.)

 

6. 존 메이너드 케인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터라 잘 기억나지 않네요. 케인스는 에릭 홈스봄의 <<극단의 시대>>에도 자주 언급되는 경제학자입니다. 가령 경기가 위축될 때, 정부 재정을 투자해서 경기를 회복시켜야 된다고 말한다면, 이는 케인스의 경제학에 기반한 것입니다. 케인스 이전에는 그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 경제학의 양대 축은 시카고 학파(밀턴 프리드먼 등)와 케인즈 학파로 나누어질 수 있으며, 시카고 학파는 시장의 자유에 포커스한다면 케인즈 학파는 국가/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지지합니다. 현대 경제 흐름이나 정책의 방향에 대한 이해를 가지기 위해선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케인스 이야기도 잠시 언급되었네요.
(그래서 다음 책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 평전을 할까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극단의 시대>>보다는 훨씬 읽기 쉽습니다. 특히 평전이기 때문에 소설같은 느낌까지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해선 따로 공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7. 아래 사진

에릭 홈스봄을 이야기하면서 좌파 지식인이나 학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시 하였습니다. 마르크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며, 마르크스의 유산과 더불어 현대에까지 이어지는 마르스크주의 학문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 현대 세계를 해석하는 용도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어떤 가치나 신념으로서의 마르스크주의가 된 지 오래 되었으나, 아직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같아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유물론적인 접근을 하다고 해서 다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칠판을 여러 번 썼지만, 사진 찍은 건 이것 밖에 없어서 이것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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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처음의 서론을 읽지 않는 편이 좋다. 번역 탓인지 몰라도 정말 읽기 힘든 글이다.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조망하면서 어떤 관점에서 기술하였는지(일종의 방법론) 적고 있는데, 두 번 정도 읽다가 그냥 넘어갔다. 다시 읽어 볼까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 있어서 읽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사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1차, 2차 세계대전이나 대공황 등은 많은 책들이 있어 익숙했지만, 냉전이라든가 이란 혁명은 새삼스러웠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으니까. 그리고 상권보단 하권이 더 재미있었다. 추천한다. 인내심을 갖고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