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너드 케인스
재커리 D. 카터(지음), 김성아(옮김), 홍춘욱(감수), 로크미디어
우리에게 참 익숙한 이름, 존 메이너드 케인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책 초반에 나오는 블룸즈버리 멤버들 중 몇 명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케인스가 블룸즈버리 멤버들 속에서 특별한 위치였음을 알았다. 대부분의 문학, 예술 관련 책에서는 블룸즈버리를 언급할 때 케인스가 깊이 관여하지 않은 듯 흘려 서술하기 때문이었고, 케인스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를 가지고 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또한 케인스의 부인 리디아과의 에피소드들도 흥미로웠다. 디아길레프도 잠시 언급되었지만, 20세기 초반 영국은 우리와는 참 멀리 있다.
메이너드와 리디아가 어제 이곳에 왔었다. M은 톨스토이 블라우스에 검은 색 아스트라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밖에서 보니 둘 다 근사했다. 메이너드의 구석구석에서 엄청난 선의와 정력이 느껴졌다. 그 위대한 남자의 아내는 그의 활력에 콧노래를 불렀다. 흠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둘은 아주 잘 어울린다. 나이가 들고 가을이 오니 오랜 시간 봐온 그를 향한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진다. - 버지니아 울프 (247쪽)
번역된 문장이긴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애정이 느껴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역시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두꺼운 책은 케인스의 일상 생활, 결혼, 주변인들과의 관계 등도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주된 내용은 1, 2차 세계 대전, 그 속에서 몰락해간 영국을 포함한 유럽,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 대공황, 파시즘, 그러한 변화를 주도한 경제 흐름과 경제 정책, 케인스의 대응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케인스의 책들, 그가 이야기한 경제 분석과 이론들,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각국의 정치 지도자, 관련 관료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거부되었는가에 대한 분석들과 현재 어떻게 남아,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에 할애되어 있고 독자는 20세기 초, 중반에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대응했는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나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어떻게 급격하게 나치즘으로 기울었는가가 궁금했다. 정규 교과과정에서는 여기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최근 읽은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에서 대공황이 서구 사회에 끼친 비극적 상황을 알고 나서야 독일 대중들이 왜 파시즘으로 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케인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감당하기 어려운 제재 조치에 대해 격렬히 반대하며, <<평화의 경제적 결과>>가 씌여졌다고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대공황은 고전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듯 희소성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상품은 넘쳐나지만, 돈에 대한 잘못된 관리로 일어났음을 이야기한다.
실은 하나하나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이를 다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별 소용이 없는데, 주위에 멍청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이 책의 결론은 이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에 더 기울어지니, 어쩌나)
하지만 케인스식 접근법은 덧없고 너무 나약했다. 민주주의는 경제적 존속성이 거부당할 때 폭정으로 빠진다고 케인스는 믿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경제적 존속성을 거부하기로 선택했을까?
필자에게도 이런 질문들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은 없다. 래리 서머스는 시장은 합리적인 개인이 사적 이익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생각을 "주위를 보세요. 멍청이들이 있잖아요"라는 말로 일축한 적이 있었다. 그의 격언은 시장을 통해 사회를 정비라하는 노력 뿐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에도 반한다. 케인스는 좋은 아이디어가 결국 나쁜 아이디어를 몰아낼 것이고, 사람들이 종국에는 좋은 주장을 분별하고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믿음은 존경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케인스가 비극적으로 순진하다는 1970년대 조앤 로빈슨의 평가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774쪽 - 775쪽)
이 책은 상당히 두껍다. 참고문헌까지 합친다면 무려 870쪽에 이른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이 책을 들고 읽었으나, 쉽지 않았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사놓고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20세기에 이토록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좋은 방향을 말이다. 케인스는 새삼스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조차 흥미롭다.
1. 경제학의 시대
20세기 초만 해도 대학에 ‘경제학’이라는 전공은 없었다. 이 때만 해도 대학의 어문계열 졸업자들이 더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경제학이 대학 전공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건 불과 한 세기 남짓된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케인스의 경제학적 접근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고전경제학에서의 ‘희소성의 법칙’을 중요하게 이야기하지만, 케인스는 지금 문제는 물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많은 물건들이 생산되지만,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는 것임을 지적했다. 케인스의 경제학은 기존에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여러 통념들을 깨고 새로 정의내린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고 그것이 당연하고 여겼던 이들에게 케인스의 제안들은 부정당하고 검토되지 않았다. 변화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전쟁과 대공황 등 경제적 불확실성과 위기 앞에서 케인스의 주장들은 설득력을 더해갔으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드디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이르러 경제 문제를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해결하기 이르렀다.
사실 대공황을 만든 것은 돈 그 자체였다. 케인스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화경제란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변화하는 관점이 고용 수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제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돈을 다양한 재화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는 촉진제나 윤활유로 여겼다. 가령 염소를 자동차와 맞바꾸는 것은 어색하고 비효율적이지만 돈은 그런 교환을 더 간편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케인스는 돈을 다양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이자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소유한 물질의 가치를 안전하게 판단하게 하는 가치의 저장고로 인식했다. 고전주의 경제학은 돈을 그림 같은 고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반면 케인스는 돈을 경제적 가능성에 대한 서사를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영화나 소설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았다. “돈의 중요성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에서 비롯된다.” (399쪽)
“만약 재무부가 낡은 병에 지폐를 가득채워서 폐광 깊숙이 묻고 쓰레기 더미로 덮은 다음, 이후 성숙한 자유방임주의 원칙에 따라 민간 기업에 그것을 다시 파내라고 하면(물론 지폐가 묻힌 땅에 대한 정당한 임대권을 얻어서), 더 이상 실업은 없어지고 그 파급효과로 공동체의 실질 소득과 재산이 실제보라 훨씬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이는 예시일 뿐 실제로는 주택사업 같은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데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할지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405쪽)
2.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국가가 경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순전히 케인스의 아이디어다. 그가 보기에 통화정책은 매우 중요했다. 예로부터 돈은 통치수단이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정책을 통해 국가는 나라를 문제없이 통치했다. 하지만 고전경제학에서는 시장에게 맡겨두면 된다. 자유방임주의는 문제가 생기면 상처를 입긴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결된 모습이 극심한 빈부격차라면? 지금에서야 안일한 생각이라고 여기겠지만(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겠지만, 예를 들어 환율 방어라든가), 그 때는 도리어 국가가 개입하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다. 그러니 아직도 국가의 개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들이 있음을 알아두자.
3.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흔히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반대 편에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이 있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하이에크의 이 책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이후 그는 신자유주의와 미 보수우파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경제학적 성과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주장들이라는 점에서 다소 의아스럽다. 어떤 이론이나 입장이 채택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수사학적이고 정치적인 배경으로 인한 경우가 더 많다.
정치적 자유를 옹호하는 위대한 사도들에게 그 말은 강압으로부터 자유, 타인의 독단력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개인이 종속된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렇게 약속된 새로운 자유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가 되려면 우리 모두의 선택 범위(물론 일부 사람들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범위가 넓겠지만)를 불가피하게 제한하는 강압적 상황으로부터 해당되어야 한다. 인간이 정말 자유로워지기 전에, “물리적 결핍이라는 억압”이 깨져야만 하고, “경제체제의 구속”이 완화되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당연히 권력이나 부의 또 다른 의미일 뿐이다. … 자유라는 약속의 끝에는 궁극적으로 여러 사람이 가진 일련의 선택권에 존재하는 큰 차이들이 사라지게 된다. 자유의 길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실제로 노예가 되는 지름길일 뿐이다. - 하이에크(510쪽)
책에선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으나, 매카시 열풍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케인스의 경제학 이론이 가지는 정당성과 관계없이, 케인스의 제자들 중 일부가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점, 그리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여러 경제 정책에 대해 반발심을 가진 이들, 그리고 소련이 강력해지는 것에 대한 대응 등이 복잡적으로 작용했던 아닐까. 그래서 하이에크의 경제학보다는 정치적 경향이 더 강한 <<노예의 길>>이 주목받았던 건 아닐까. 그러나 하이에크는 미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했으며 주류 경제학에서도 멀어졌다. 그리고 그 뒤를 밀턴 프리드먼이 이어갔다.
이 교리에 따르면 전체주의 정권은 정부가 자유방임주의와 신념을 깼을 때 권력을 얻게 된다. 이는 나치와 볼셰비키는 시장의 기능 장애로 초래된 불황을 이용해 집권할 수 있었다는 케인즈의 주장을 명백히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그런 관련성을 프리드먼만 믿었던 것은 아니다. 케인스에게도 그런 신념이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이 자유를 정의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케인스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에는 물질적 안정과 블룸즈버리가 추구한 좋은 삶의 요소들이 포함돼 있었다. 반면 프리드먼에게는 경제적 자유는 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만을 의미했다. (677쪽)
역사학자인 대니얼 스테드먼 존스가 밝혔듯이, <<자본주의와 자유>>는 “사상들 간의 냉전”에 뒤늦게 합류했다. 이 책은 “뉴딜 자유주의를 사회주의, 심지어 공산주의와 지속적으로 동일시”한다. 프리드먼이 책에서 “미온적으로” 질책했던, “매카시즘”을 상징하는 바로 그 “관련성에 대한 유죄” 진술이다. 프리드먼에게 뉴딜 자유주의와 소련 전체주의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는 미제스처럼 두 체제 사이에는 그 어떤 철학적 중도 노선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고 소득세, 사회보장, 공교육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678쪽)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수상 시절,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기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경제학적 처방과 정책이 대거 수용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본격화된 것이다.
4.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는 내가 대학 시절때부터 참 많이 들었던 단어이지만, 여기에 대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책을 구하긴 어려웠다. (지금은 나무위키만 봐도…) 따라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닐 것이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려운 경제학 이론이나 이에 기반한 여러 통상, 경제 정책들로 신자유주의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만, 미리 좀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케인스 학파 대척점에 서 있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배경이나 학자, 흐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용하다.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가 이룬 폐해가 너무 심각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돌풍을 일으킬 땐,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5. 영국의 몰락, 미국의 부상
유럽의 몰락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1차 세계 대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버텨냈을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유럽은 몰락했고 그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미국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영국의 경제적 권위는 물론 미국의 원조 기관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도 확실히 힘을 잃고 있었다. 케인스는 전후 국제사회가 재편될 것으로 예견했고, 프랑스와 영국은 신대륙의 고객 국가로서 역사의 뒤안길로 쇠락해가는 가운데 미국과 월가의 금융 세력이 향후 서구를 지배할 것으로 전망했다. (94쪽)
윌슨이 설명한 조항의 절반은 영토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여러 민족 집단이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독립해 자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국경선을 그리고자 했는데, 이는 사실상 그가 자국에서 전개하던 생물학적 인종차별주의를 좀 자비롭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105쪽)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를 싫어했고 식민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패권 국가가 된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여러 문제가 일어났을 테지만, 그건 지금의 관점일 뿐이다.
그리고 공화당이 박살이 났다. 그래서 브리커는 선거를 겨우 며칠 남겨놓고 뭔가 다른 시도를 했다. 그는 디트로이트 올림픽 경기장에 모인 1만 5,000명의 만원 관중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던 중, 루스벨트 대통령의 국내 정책을 “외세에 의한” 부패의 결과라고 맹비난하며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뉴딜 정책이 급진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좌우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571쪽)
한국 사회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도 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상당할 것이다. 대놓고 멍청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이제 대놓고 멍청이들을 양산하는 미디어들로 둘러쌓여 있으니, 더 큰 문제다.
예전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들이 대학 경제학 교수진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땐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였는데, 케인스를 읽고 나니 굳이 그런 생각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다양성의 관점에서는 타당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현 시점에서 얼마나 큰 실천적 영향력을 가지는가에 대해선 정말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실은 케인스주의도 신자유주의 열풍 앞에서 찬밥 신세였는데 말이다.
이 책은 케인스를 중심을 20세기 초 중반을 경제적 관점에서 개괄하기에도 좋다. 다만 초반은 유럽, 후반은 미국 중심으로 서술된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케인스에 대해 궁금한 이들에게도 이 책은 입문서로 적당해 보인다. 책이 너무 두껍긴 하지만.
“사람들이 부의 축적을 즉각적인 소비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개인의 자발적인 금욕을 통해 힘들게 쌓아 올리는 절약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욕만으로는 도시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시해야 한다. 세계의 재산들을 지어 올리고 개선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이 움직이면, 절약행위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든 부는 축적된다.”
- 케인스, <<화폐론>> 중에서(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