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눈빛

지하련 2007. 1. 7. 11:57
묘지같은 바람이 흰 눈에 섞여서 자신의 존재를 가릴 때,
그것의 실체를 포착해내는 영혼이고 싶었다.
그러자 바람은 그 열망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어둠을 내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내 곁에 한참을 머무르며 날 주눅들게 했다.
그리고 나는 주눅들었다.

밀면 밀리고 불면 펄럭이고 땡기면 확 무너져버린다.
찬란한 태양이 우리의 젊음을 수놓던 그 여름날 해변의 모래성처럼
시간은 빠르고 청춘은 짧고 사랑은 오간 데 없다.

언제 우리가 젊었고 언제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던가.
추억은 달력이 바뀔 때마다 미련해지고
순수한 열망은 성욕으로, 탐욕으로, 미움으로, 증오로 바뀌어 간다.

내 마음의 성벽은 가시만 남은 시든 장미.
내 사랑의 언어는 오래된 하바나산 시가에 핀 푸른 곰팡이.
어느새 피부가 녹색에서 분홍빛으로 바뀌고
딱딱해지고 거칠어지고 물렁거릴 때,
내 청춘의 어둠이 밝음으로 변할 때,
밝음을 가득 채우는 건, 그 때의 슬픔과 증오뿐.
그렇게 이 밤 어둠 속의 청춘은 물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