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YES YOKO ONO, 로댕갤러리

지하련 2003. 9. 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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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YOKO ONO, 로댕갤러리

전시 #1


젊은 예술가에게 결혼은 생의 급변, 또는 파국을 뜻한다. 그러므로 결혼한 예술가에게 남는 건 파탄이거나 사라짐이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집단 무의식에 기반해 있는 듯하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행위를 사회교과서에서는 ‘일탈’로 표현한다.

추석 당일 밤 기차로 서울에 왔고 그 주 토요일 로댕갤러리에 갔다. 오후 4시... 소란스러운 실내.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관람객. 이번이 마지막 전시 관람인 남녀 대학생. 실내에서 버젓이 사진을 찍는 이들까지. 순간 역겨움과 구토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중간까지 가지도 못한 채 몇 분 만에 그냥 휙 한 바퀴 돌고 나왔다. 나올 때쯤 등에서 땀이 났고 손이 약간 떨렸으며 속은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와서야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

갤러리 옆 보도 위로 한 사내가 누워있었다. 부랑자로 보기엔 조금 깨끗한 옷차림. 오늘부터 부랑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나 보다. 어쩌면 이 사람이 현대 예술과 가까이 있는 듯했다. 갤러리에 가득차 있는 역겨움들보다는.

(* 다음 날 오전에 다시 로댕갤러리에 가야만 했다. 같이 갔던 이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역시 일요일 오전은 좋은 시간이다.)

전시 #2

“오노 요코를 봤대요. 늙은 여자가 그렇게 멋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날 여기 올 걸 그랬어요. 후회가 되네요.”

이런 내용이었을 거다. 근사한 정장을 입은,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에서 그녀가 한 말. 그런데 정말로 멋있나? 멋있다면 뭐가 멋있다는 걸까.

그래서 오노 요코는 잠시 에리카 애빌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에리카는 새더 로렌스 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였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애빌의 집은 두 여인의 끝없는 광란의 파티장이었다. 그들은 남자를 매일 먹는 밥처럼 소비하였다.
- 58쪽

우울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늘 자살을 꿈꾸었다. 마침내 가족과 남편은 요코를 정신병원에 넣기로 결정한다.
- 78쪽

하지만 정작 딸이 부모를, 특히 어머니를 필요로 하던 시절에, 요코는 딸을 장애물로 생각하였다. 요코의 활동은 가족의 의무와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 95쪽


* 위 인용된 문장은 (<마녀에서 예술가로 오노 요코 Yoko Ono,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솔)에서 옮김.



문란한 성생활, 정신병원, 가족에 대한 무관심. 과연 멋있는 걸까.

대중의 신화창조에 대한 믿음은 확고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 같이 살아보거나 곁에서 지켜본다면 끔찍하다면서 욕을 해댈 것이면서 말이다.


전시 # 3

YES YOKO ONO 전은 작년 6월 22일부터 9월 8일까지 샌프란시코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였다. 그 전시 그대로 로댕갤러리에서 전시한 듯하다.

이 전시는 요코의 초기작부터 근래의 작품들까지 전시하고 있어, 요코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고 플럭서스부터 실험 영화, 해프닝, 개념미술, 설치 미술에 이르기까지 요코가 거쳐왔던 여러 중요한 현대의 경향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전시였다.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있어 중요한 단어가 해프닝(happening)이다. 이번 오노 요코의 전시, 특히 요코의 초기 작을 이해하는 데에 이 단어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해프닝은 기존의 예술개념을 부정하는 두 개의 새로운 개념, ‘복합매체intermedia’와 ‘비결정성indeterminacy’에 입각한 참여예술이다. 복합매체란 미술과 연극 또는 음악과 연극의 복합적 형태를 취한다는 의미로 해프닝 형식에 관계된 개념이고, 비결정성은 ‘지금 여기 here and now’에서 행해진다는 현장성의 의미로, 해프닝의 내용에 관계된 개념이다. 복합매체와 비결정성은 전통적 예술개념의 산물인 ‘오브제’를 탈물질화시킴으로써 작품과 관객이 상호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만든다. 말하자면 탈물질화한 해프닝 환경 안에서 관객도 해프닝의 한 요소로 상정되므로 수동적 관람자에서 능동적 참여자로 전환되고, 그럼으로써 해프닝은 피에르 레스타니가 주장하듯 ‘소통의 장치’ 또는 ‘집단 참여의 기술’이 되는 것이다."
(* 김홍희, <백남준 Happening Video Art>, p.18 (디자인하우스;서울)에서 재인용)



현대 미술은 극적으로 관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경이>, <천장 회화> 등).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극단화된 표현 양식을 추구하고(* 요코의 가장 중요한 작품 <자르기>, 여러 실험 영화들) 자신들의 행위를 하나의 사회적 이슈, 예술 작업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존 레논과의 여러 반전 행위).

Instructions for Painting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지시문이 담긴 노트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그 작품을 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현대의 개념 미술이다. 하나의 생각만으로도 예술 작품은 구성될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또는 생각 그 자체.

그러면 내 방에서 요코의 회화를 만들어볼까.

악수를 하기 위한 회화 Paintings to shake hand

임의의 위치에 구멍을 뚫고
그 곳으로 손을 내민다
손님이 왔을 때 살가운 웃음을 지으며
그 곳을 통해 악수를 하고
손을 잡고 대화를 한다

drill a hole in a canvas and put your
hand out from behind
receive your guests in that position
shake hands and converse with hands

- 1961/1962




요코의 초기 작품들은 그 당시의 예술가들, 백남준,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의 작품들과 비교해 그 미술사적 중요성은 떨어진다. 또한 그녀의 작품들은 그녀의 독자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존 케이지 등과 같은 여러 예술가들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존 레논과의 만남 이후, 그녀의 작품들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천장회화(예스회화)’* 이후 그녀가 추구하게 되는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은 현대의 격렬함이 어떻게 진정되고 고요해지며 성숙되어지는가에 대한 해답을 던져줄 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선 좀 더 연구를 해보아야할 듯하다.**

* “사다리를 올라가서 돋보기를 들여다보니 깨알 같은 글자로 ‘예YES’라고 씌어 있었다. 그것은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 ... 바로 그 ‘예’가 나를 머물게 하였다. ...” 존 레논, 1966.

** 요코의 후기 작업들에 대한 리뷰는 기회가 있을 때 다른 작가들의 초기/후기를 비교하면서 논해보면 유익한 글이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