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지난 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 회고록

지하련 2024. 11. 2. 08:03

 

지난 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지음), 이미애(옮김), 민음사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는다. 그녀의 <<세월>>을, ... 고등학교 때 읽은 후, 산문집 몇 편을 읽었을 뿐이다. 그녀의 소설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에 다시 시도하고 있지만, 겨우 읽은 게 이 짧은 회고록이다. 회고록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 왜 다 죽는 걸까.  

 

인생이 우리가 계속 채워 가는 그릇이라면, 그렇다면 내 그릇은 의심할 바 없이 이 기억 위에 서 있다. 그것은 잠이 들락 말락 한 상태에서 세인트아이브스의 아이 방 침대에 누워 파도가 하나둘 하나둘 부서지며 해변에 밀려오고 노란 블라인드 뒤에서 하나둘 하나둘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다. 바람이 블라인드를 휘날리며 바닥의 작은 도토리를 끌어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다. 가만히 누워 찰싹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빛을 보며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며 더없이 순수한 황홀함을 느낀 기억이다. (8쪽) 

 

집에서 나와 국민학교로 걸어가던 중간에 큰 나무 하나가 있었다. 그 나무에서 많이 놀았다. 아직 그 나무가 있지만, 고향에 내려갔을 때 가보지 않았다. 이번엔 가봐야겠다. 울프의 저 문장을 읽으며, 정말 저렇게 하나하나 섬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거짓말장이라고 혼자 소곤거렸다.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인 거짓말장이라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면서 한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녀가 얼마나 주변을 섬세하게 바라보며 사랑했는지. 그래서 이 책은 담담하지만 슬프고, 연약하지만 굳다. 그녀의 문장이 가지는 힘이다. 번역되었지만, 그 번역을 뛰어넘는다.   

 

이것이 내게 가장 큰 기쁨일 터다. 그것은 글을 쓰면서 내가 무언가의 속성을 발견하고 어떤 장면을 제대로 살려 내고 어떤 인물을 결합할 때 느끼는 환희다. 여기서 이른바 나의 철학이랄까, 어떻든 한결 같은 생각에 이른다. 즉 목화솜 뒤에 어떤 패턴이 숨어 있고, 우리 즉 모든 인간의 그 패턴에 연결되어 있으며, 온 세계는 한 편의 예술 작품이고,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햄릿>>이나 베토벤 사중주는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이 방대한 덩어리에 관한 진실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도, 베토벤도 없다. 분명, 확실히, 신은 없다. 우리는 단어이고, 음악이고, 물(物)자체다. 충격을 받을 때 나는 이것을 본다. (19쪽) 

 

버지니아 울프의 형제, 자매 대부분 젊었을 때 죽는다. 그건 그 당시로선 너무 흔한 일이었을까. 어쩌면서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보기 직전의 모습같았다. 실은 출생률이 문제가 아니라, 태어난 아이들 대부분 어른이 되기 전에 죽었던 것이다. 죽음이 흔했다. 그리고 그것을 딛고 살아가야 했다. 도리어 현대는 너무 충격에 약해진 건 아닌가 하는 .. 

 

이번 가을은 한강과 버지니아 울프를 오갈 듯 싶다. 나는 언제쯤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주말 아침이다. 

 

1933년에서 1935년경의 버지니아 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