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위스키를 마셨다. 그것도 피트향 가득한 싱글몰트, 아드벡, 라프로익, 라가불린 ...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위스키는 마시면 마실수록 마음은 딱딱해지고 몸은 건조해졌다. 반강제적으로 위스키는 나에게 과도한 집중력을 요구하였으며, 지친 내 육체는 경직되고 무거워졌다.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휩싸이고 살짝 불편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휴식이 아니라 어떤 전투의 현장에 강제적으로 소환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도 잠시 위스키를 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와인을 마시는 횟수도 따라 늘어났다.
먼저 와인을 마시면, 사소한 호기심 하나가 생긴다. 매번 다른 와인을 마시는 탓도 있지만, 포도 품종이나 년도, 지역이 가지는 예상치가 있고, 마시는 와인이 내 예상과 얼마나 맞는지, 비교하면서 마시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부드러워지고 몸은 나른해진다. 적절한 느슨함으로, 살짝 말랑해지는 기분까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언제 취했는지도 모른 채 잠자리에 든다. 요즘 자주 와인을 마신다. 혼자, 집에 들어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신다. 쓸쓸하다는 기분을 느낄 사이도 없이, 전쟁같은 하루하루 지나며, 붉은 빛깔을 와인을 연거푸 마신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늙어간다. 이번 주말에도 와인을 마실 수 있을까. 글쎄다. 잦은 음주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니까. 또 매번 혼자만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젠 와인을 같이 마실 사람들도 하나 둘 주위에서 사라진다. 즐거운 술자리가 언제였는지, ...
그러다가 아르보 페르트의 'The Deer's Cry'를 들으며 운다. 결국 신 앞에서 부끄럽고 부끄러워, 운다. 부끄러운 인생이었다. 당신도 그러한가. 그랬던가. 그대도, 내가 사랑했던 그대도, 그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