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발터 벤야민

지하련 2007. 8. 13. 01:34

발터 벤야민, 그는 무척 흥미로운 작가이다. 그의 이론에는 문학적 수사와 철학적 직관이 번득이며, 자기 스스로 끊임없이 '비주류'로 내모는 듯한 인상마저 독자에게 풍긴다. 오랫만에 발터 벤야민에 대한 책을 꺼낸다.

수잔 벅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 책에 인용된 발터 벤야민의 글 일부를 옮긴다.

모든 친밀한 개인적 관계 역시 날카로운 명료성의 광선으로 조명된다. 이러한 명료성은 거의 비인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유지될 수 있는 인간 관계는 거의 없다. 돈은 한편으로는 모든 중대한 관심사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때문에 돈으로 인해 거의 모든 인간 관계가 차단되고 파괴된다(자연적 관계와 윤리적 관계 모두 마찬가지다). 따라서 비반성적 신뢰, 평안, 건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 <제국의 파노라마: 독일 인플레이션 유감> 중에서


부유한 부르조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나이가 들어서까지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지 못했다. 그 스스로 부르조아적 가치를 거부하였으나, 그렇다고 곧바로 마르크스주의로 기운 것도 아니었다. 유물론적이었으나, 그의 유물론은 다른 이들과는 다른 유물론이었다. 그는 역사의 파편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치를, 진리를 발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의 생각대로 역사는 현실을 기만적으로 변형하는 개념 구조지만, 역사의 문화적 내용물은 현재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비판적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그의 책은 잡다하고 방대하지만, 치밀한 논증과 근거에 의거하는 철학적 체계와는 다른, 파편-흔적을 바탕으로 한 놀라운 직관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매혹적이고 신비적이다. '사후의 명성'이라는 단어가 발터 벤야민에게 만큼 어울릴 수 있을까. 벤야민의 사랑을 받았던, 그러나 정작 그녀는 벤야민의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라시스는 21세기에까지 그녀의 이름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것도 벤야민의 연인으로 말이다. 죄렌 키아케고르의 레네기 올젠처럼. 발터 벤야민의 사랑 이야기는 그의 인생처럼 참 슬프다.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수잔 벅 모스 지음, 김정아 옮김/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