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래디컬 이노베이션 Radical Innovation

지하련 2008. 11. 24. 10:52
래디컬 이노베이션 - 8점
렌셀러 경영대학원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 팀 지음, 정규재 옮김/아침이슬



래디컬 이노베이션 Radical Innovation
렌셀러 경영대학원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팀(지음), 정규재(옮김), 아침이슬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의 소감을 한 마디 한다면, "이 책을 공대 학생들에게 반드시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머리말에 버젓이 ‘이 책은 혁신을 생각하고 혁신을 상용화하려고 노력하는 대기업 사원들을 위한 책’이라고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곳에서 'R&D'나 기술 투자의 중요성을 듣는다. 작년 한 해 각 나라별 특허 등록 건 수에 대해 듣기도 하고, 해외 과학 저널에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이 얼마나 실렸는지, 어느 분야의 과학 기술이 유망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정부에서도 유망 기술 리스트 같은 걸 만들어 발표하기도 하고, 어떤 기업들이 수익에서 몇 퍼센트를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가를 다룬 관련 기사를 읽기도 한다.

그리고 이 기술 개발의 핵심 인력은 '공대 학생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연구소에 기술 개발만 할 뿐이다. 그 기술이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실은 기술 보다는 기술을 둘러싼 제반 환경에 대한 이해가 먼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오랜 시간과 많은 자원이 투자되는 신기술개발 프로젝트 관리와 성공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 책은 렌셀러 경영대학원의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팀의 보고서를 번역한 것으로, 대기업이 장기간(10년 이상) 투자하게 되는 신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개발 프로젝트를 '근본적 혁신(radical innovation)이라고 명명한다.

경쟁구도를 뒤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근본적 혁신뿐이다. 근본적 혁신은 고객과 공급자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시장구도를 재편하고, 유행하는 제품을 뒤바꾸며, 완전히 새로운 제품군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근본적 혁신은 기업 리더들이 절실히 원하는 장기적 성장 기반을 제공한다.



점진적 혁신은 대체로 비용절감이나 제품과 서비스의 개선을 강조하며, 확장 능력에 좌우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근본적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신기술 또는 상당한 비용절감에 기초하여 경제성을 향상시킨다. 따라서 탐색 능력이 요구되는 신사업이나 새로운 제품군을 개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른 연구자들도 우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근본적 혁신과 점진적 혁신을 구분한다.


대기업은 장기간, 막대한 자금을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에 투자할 여력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벤처나 중소기업들과 대결하기 위해 대기업이 선택하게 되는 전략은 점진적 혁신이 아니라, 아예 시장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근본적 혁신이 요구된다고 이 책의 저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이 아니라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어떻게 관리하고 성장시켜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관리(management)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젝트 관리는 기술 개발, 기술 연구와는 전혀 무관한 일종의 정치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내가 서두에서 공대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혀야 한다고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수한 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 그리고 연구실 바깥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자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도움을 구해야 되는 사람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자금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프로젝트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 기술을 개발하고 난 뒤 상용화는 어떠한 과정을 거칠 것인가 하는 따위의 문제들이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기술만 개발하면 성공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새롭게 개발한 기술/상품에 '시장성' 있느냐는 전혀 다른 관점의 문제다. 종종 기술 기반의 회사나 조직이 실패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에는 무수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근본적 혁신 프로젝트 관리는 다른 프로젝트 관리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프로젝트 팀원들의 기대 수준을 제대로 설정해야 하며, 기간에 따라 다르게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파악, 추적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프로젝트 중간중간 알게 되는 지식들에 대해 학습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많은 시간, 많은 자원이 투입됨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정당성 확보가 중요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책에서는 프로젝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전략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신기술이 시장 속에서 놓여 있는 가치사슬(Value Chain)에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기술 상품이 시장 속에서 어떤 가치 단계를 밝아 사용되는지에 알아야 시장성 여부/규모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금 조달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팀 내에 자원 확득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이상 있어야 하며, 아예 이를 책임질 사람 한 명을 선정해야 된다고 말한다. 또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곳을 다양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프로젝트 단계별로 자금 조달 전략을 수립해야 됨을 지적한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기술에 기반을 둔 기업인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성공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공대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는 기사는 썩 반갑지 못하다. 그러나 인기가 시들해지는 이유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공대를 졸업해봐자, 직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막상 연구소에 부딪히는 문제는 기술 개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이 책에서 지적하듯 정치적인 역할(management)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다. 확실히 기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기술이 가지고 있는 제반 여건이나 환경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현대 기업에서의 과학자는 연구실에서 개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경영 감각을 가진 과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