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박진아(Park, Jina)와 회화의 쓸쓸한 여유

지하련 2008. 12. 18. 13:37


박진아_마지막 한 입-everybody's leaving_캔버스에 유채_225×155cm_2008 



술집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그녀도 자리를 떠나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한 입 먹는다. 적당하게 오른 취기와 추운 새벽의 허전함을 텅빈 테이블 위의 남겨진 안주가 조금의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상 되돌아 생각해보면, 꼭 그럴 때마다 드라이크리닝까지 해서 입고 간 외투에 뭔가 떨어뜨리기 일쑤다. 다음 날 오전, 술자리를 후회하게 만드는 '마지막 한 입'인 셈이다.  

작가는 일기를 쓰듯,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회화의 본질은 주술이면서 기록이었다.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두운 동굴 벽에 벽화를 그렸고 근대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초상화를 의뢰하였다. 결국 우리는 자력으로 뭔가를 이루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세월이 흘러 자신의 삶이 어두운 세월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박진아_긴 저녁_the long evening_캔버스에 유채_168×180cm_2007 


하지만 결국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우리 자신의 무력함이다. 자신만만하게 시작되었던 바로크적 근대주의(데카르트)가 현대에 와서 무너지는 것도 이제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약간 흐트러진 듯한 작가의 터치는, 마치 이룰 수 없었던 무수한 열망들로 가득찬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나와 이제 적당한 포기와 방기를 의미하는 듯하다. 적당하게 자신을 놓아두고, 주위 사람들을 놓아두고, 세상을 놓아두고, 이제 쓸쓸한 박제가 되어버린 지난 사랑마저 잊어버려고 노력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회화가 가지는 매력은 캔버스 표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불규칙하고 감정적이며 거친 물감들의, 이제 정지된 채 굳어 있는 어떤 운동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붓이나 나이프에 물감을 묻히고 자신의 손 끝으로 자신의 감정을 실어 보내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언어를.

그리고 작가는 적당하게 그림을 풀어주고 자기 자신을 놓아두려고 한다. 완결성이란 기계적 폭력성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니 디테일보다는 분위기를 잡으려고 하고 그 분위기 속에서 우리 청춘의 무의미한 일상을 쓸쓸하게 담아내려는 것이다.


박진아_김밥먹는 Y_린넨에 아크릴_145×112cm_2004


꼭 사랑을 고백해버리자, 떠나버리는 연인의 뒷모습처럼, 그림은 쓸쓸하고 과거의 어느 때를 회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후회나 절망 보다는 '멋쩍은 웃음'에 가깝다. 기필코 이루려던 어떤 열망이 실패로 결론나자, 도리어 어떤 자유를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박진아의 회화는 일상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지 않고 회화의 깊은 곳까지 탐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화를 자유롭게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여유를 갖게 만든다.


박진아_잠 Sleeping at the Corner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08 


하지만 너무 바쁜 현대인들이 박진아의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여유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하긴 그 여유는 적당한 포기와 실패, 자기 삶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에너지가 있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일 테니.





* 작가 박진아는 1974년 생으로, 서울대 서양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런던 Chelsea College of Art & Design에서 수학하였습니다. 현재는 국내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제가 보았던 여러 작가와 작품들 중에서 좋았던 작가들 중의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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