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아르네가 남긴 것, 지크프리트 렌츠

지하련 2009. 1. 2. 00:26


아르네가 남긴 것 - 8점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사계절출판사
 

아르네가 남긴 것
지크프리트 렌츠(지음), 박종대(옮김), 사계절



아래 인용이 이 소설과 관련될 수 있을까. 아마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킬 인용이 되지 않을까. '아르네'라는 유약하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소년을 등장시켰을 뿐이지, 이 소설은 '왕따'에 대한 내용이며, '무책임한 아이들'에 대한 초상화이다.


어린이의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은 도덕적 천함을 나타내줄 뿐이다. 보쉬에는 단호하다: "어린이는 짐승의 삶이다." 베륄은 가능한 더 멀리 간다. : "어린이의 상태는 죽음 다음으로 인간 본성의 가장 상스럽고 천한 상태이다." 파스칼로 말하자면, 그는 추론에 의하여 - 섬세한 정신인가 기하학적 정신인가? - 어린이의 상태의 끔찍함을 정당화한다. "신의 정의에서 볼 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고 고통을 견디게 하는 것은 죄인들을 전혀 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린아이들은 매일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그들은 필연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어야만 하며, 그것은 타고난 죄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현세에서 받는 벌은 원죄의 벌이다."
- 미셸 투르니에, '흡혈귀의 비상', 이은주(옮김), 현대문학, 49쪽~50쪽


미셸 투르니에가 인용한 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동의 시기가 아르네, 그리고 아르네 주변 아이들이 포함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계와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어린 시절은 지금의 내가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불가해하면서도 슬픈 시절이었다. 그래서 앙시앙 레짐 이전의 프랑스 지식인들은 어린이 시절을 그렇게 여겼는지도 모른다.(다른 사회학적 요인들이 더 많긴 했지만) 

내가 아르네라면, 도리어 침묵과 고독을 택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 편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자유로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네는 비프케와 어울리고 싶었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사라진 자는 아무런 말이 없고 남겨진 자들의 미래가 궁금할 뿐이다. 하지만 남겨진 아이들은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을 것이고 오직 아르네 탓으로만 여길 것이다. 실은 그 아이들은 아르네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성장의 과정이란 남과 어떻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상은 각자의 몫이고 각자가 헤쳐나가야 할 곳이다. 그 점에서 아르네는 너무 유약했으며 그것을 다른 아이들은 낯설어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예외적인 아르네가 속할 곳은 그 곳이 아니었다.

지크프리트 렌츠의 이 흥미로운 소설은 현대적 성장소설의 유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담담히 인물과 사건들을 보여줄 뿐이고 아르네가 속하지 않았던 곳에 아르네를 위치시킴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조금은 잔인해 보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쩌겠는가. 작가는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할 뿐이다(소설을 다 읽고 난 뒤, 위 인용문이 계속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싶다).


아, 아르네! 나는 네가 사무실에서 나와 바로 집으로 오던 모습을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너는 창문에 서 있던 내 모습을 보았고, 내 손짓을 틀림없이 이해했어. 너는 내게 올 작정이었지. 그때 갑자기 폐선 처리장 가장자리에 라르스와 비프케가 나타났어. 순간 너는 방향을 바꾸어 그 애들에게 갔어. 그 애들과 몇 발짝 사이를 두고 멈춰 섰지만, 그 애들은 너를 본체만체 지나쳤어. 마치 기둥이나 돛대를 피해 가듯 그렇게 무관심하게 양쪽으로 갈라져서 너를 지나쳐갔어. 너는 땅에 뿌리박힌 듯 서서 그 애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어. 도저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애들의 냉정한 태도와 거부하는 못짓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듯했다. (2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