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현대미술, 이자벨 드 메종 루주(지음)

지하련 2009. 1. 11. 13:38
현대미술 - 8점
이자벨 드 메종 루주 지음, 최애리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현대미술
이자벨 드 메종 루주(지음), 최애리(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온갖 논의가 있어왔고 개중에는 상반된 것도 많다. 현대미술은 이렇다, 현대미술은 저렇다 하는 식의 주장은 끝이 없다. 예컨대 현대미술은 이해할 수 없다, 현대미술은 볼 것이 없다, 현대미술은 유파가 하도 많아 정신이 없다, 현대미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현대미술은 엘리트의 전유물이다, 현대미술은 참여적이다, 현대미술은 정치적이다, 현대미술은 의미를 배제한다, 현대미술은 해괴하다, 현대미술은 공격적이다, 현대미술은 추하다, 현대미술은 아름답다, 현대미술은 기쁨을 준다, 현대미술은 거슬린다, 현대미술은 부당한 보조금을 받는다, 현대미술은 쓸데없다, 현대미술은 사색적이다, 현대미술은 영향력 있는 화상(畵商)들과 수집가들의 것이다. 현대미술은 일반 대중과의 접촉점을 상실했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한다. ... .... 이런 나열은 얼마든지 더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주장이 서로 모순되면서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다시 말해 현대미술은 어느 한 가지 스타일, 어느 한 가지 명칭으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
본질상 현대미술, 즉 동시대미술은 시대와 함께 변해가므로, 규정된 상태로 머물 수 없으며 항시 유동적이고 현대진행형이다. (11쪽에서 12쪽)



이 책은 현대미술에 대한 해설서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일반 독자에게 권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차라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해외미술 상설전이나 지금 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특별전' 나아 보인다. 이런 전시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이 책은 무리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제스트판을 선호하지만, 다이제스트판이 좋은 것만도 아니다. 가령 현대미술에 대한 이 책은 요약, 정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탁월한 책이다. 그리고 딱히 리뷰할 필요도 없다. 요약, 정리된 책이니, 그저 목차만 알려줘도 될 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요약된 책들은 일반 독자를 위하는 척 하면서, 은근히 일반 독자를 무시하는 책이다.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을 난생 처음 들을 것이며, 이들의 작품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종의 주문처럼 책은 읽힐 것이고, '역시 현대 미술은 어렵군'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도리어 이 책을 같이 읽으면서 현대미술을 공부하기 위한 텍스트로는 매우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즉 이 책을 기본 텍스트로 하고 이 책에 인용된 예술가의 이름을 알고 작품들만 봐도 현대 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느린 독서가 되겠지만, 현대미술가이드북으로는 손색없다.

챕터 하나하나마다 현대 미술에서 이슈가 되는 주장이 잘 요약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될 듯 싶다. 일반 독자들이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이유는 미술관에 가서 현대 미술 작품을 보면서 좀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인데, 막상 이 책이 딱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현대 미술은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대 미술에 대한 책을 읽는 것보다 미술관에 발 닳도록 다니는 길 밖에 없다. 그리고 동시대 양질의 세계 문학, 현대 음악이 도리어 도움이 될 것이다.

뜻맞는 사람들끼리 이 책을 천천히 같이 읽어 볼까. 하긴 내 바쁜 게으름으로 인해 잘 될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