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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21세기의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 것인가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리고 대부분 나의 입에서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테크놀러지에 의한 색다른 예술양식이 되지 않을까요'하는 대답을 기대하지만,기대에 어긋나게도 테크놀러지는 언제나 예술의 일부를 이루어왔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사진과 인상주의 미술과의 관계에서도 사진때문에 인상주의가 등장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테크놀러지'에 대한 기대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리스 고전 시대에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moria)을 저주하며 스스로 눈을 버릴 때의 그 고통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안티고네'가 공동체와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보여주었을 때의 그 성찰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기원전 만 여년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의 벽화가 아직까지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이 예술사 최초의 '자연주의'양식이며 19세기 인상주의 미술의 진정한 선조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전등을 켜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깊은 동굴에서, 그 어둠과 싸우며 감각에 충실하고 화려한 색채를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다. 이 '싸운다'는 것의 의미. 현대 예술에서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유는 예술의 역사가 운명과 싸우고 현실과 싸우고 세계 속에서 우리 인간의 진실을 가르쳐주고 있기 위한 노력의 역사임을 현대 예술가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기술은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기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표현하고 있는 우리의 삶인 것이다.


앞으로 예술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 것인가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만 정직하게 살펴본다면 그 대답을 구할 수 있다. 경박한 영상들이 범람하고 스타는 제조되며 정치는 언제나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아예 정치에 무관심해져 버리며 자신의 개성이라는 것도 자기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온통 소비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뿐인 시대.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비된 물품들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시대.


최근 '몸학'이나 'body politics' 등의 반데카르트주의는 자기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인간의 소박한 소망이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예술에 있어서도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얼마 전의 베이컨이 '일그러진 신체'를 통해 표현하고자한 바는 '육체'란 삶을 냉정하게 꾸려나가게 하는 차가운 이성에 적대적인 것, 그래서 버려야만 하는 흉칙한 것이다. 이것이 모더니즘 예술에서의 '육체'에 대한 생각이다. 하지만 반-모던적인 뒤샹의 <주어진Etant donn s>는 우리의 '이성'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보여준다. 이브 클라인은 여러 '해프닝'들을 통해 우리 육체를 보다 직접적이고 대담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또한 우리 육체의 움직임을 사각의 캔버스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 속에는 차가운 이성의 계산 대신 뜨거운 육체의 분수같이 쏟아오르는 열정이 있다.


하지만 인상주의자들이 전적으로 감각으로 외부의 사물을 바라볼 때 캔버스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탈가치화', '탈중심화'이듯이 현대 예술이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집착은 서로 공유하고 싶어도 공유할 수 없는, 모나드(monad)처럼 각각 독립된 '육체'로만 존재하는 비극을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공통된 의견이 존재하지 않고 개개의 독립된 의견들이 서로 충돌하는 양식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현대 예술이 예술의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화려한 양식을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규범이자 신념으로서 '고전주의'이 가장 확실하게 무너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물신숭배(fetishism)'에 대한 경고를 아직까지도 듣고 있지만, 누가 여기에 관심을 기울일 것인가? 지금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승리의 깃발 아래 있으며 돈은 우리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쟁취해야만 하는 그 무엇으로 된 지금, 누가 진정으로 한 개체의 진실에 대해 신경을 써주겠는가?


최근의 '몸(육체)'에 대한 관심이 뜬금없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우리 삶의 진실과 허위에 대한 고민이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에게 가장 진실한 '육체'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이 행위의 끝은 허위적인 '사랑' 대신 진실한 '섹스'를, 구역질나는 '공동체적 가치'보다는 진실한 '개인적 가치'를, '절대적 진리'가 아닌 '상대적 진리'로 곧장 달려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음 세기의 예술 양식이 어떤 모습일까는 답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번개와 천둥소리에 겁을 먹던 시대가 있었고, 하루 아침에 고전 시대의 문명을 잃어버린 암흑의 시대가 있었으니, 새로운 야만의 시대가 등장한다고 해서 인류의 역사,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낯선 것은 아닌 셈이다.

- 1999년에 중앙대 대학원 신문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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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98년 예술사 수업 과제물로 제출한 리포트이다. 참고용으로 활용하기 바라며, 인용 시 출처를 밝혀야만 할 것이다.


1.
지금 당장 밖에 나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린다면 그것도 하나의 풍경화(landscape painting)가 될 수 있을까? 가령 건조한 표정으로 서있는 건물들이나 건물 앞 둔탁하게 생긴 구조물과 초췌한 빛깔의 나무들, 혹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그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해서 풀밭이나 산이나 강을 그린 화가에게 깊은 겨울의 우울함으로 물들어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들이밀면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화인가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먼저 우리가 여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우리가 '풍경화'라고 할 때의 그 '풍경'과 철학이나 미학에서 말하는 '자연'-풍경화의 대상이라고 여겨지는-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할 것이다. 철학에서 '자연nature'은 인간에 의해 변형된 세계 바깥의 그 무언가를 의미한다. 그래서 주로 문명이나 문화의 반대를 뜻하며 특히 루소에게는 시원이자 어머니였으며 개인과 사회의 인습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예술에서의 '풍경'은 우리가 어떻게 자연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한 양식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래서 원근법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대상도 '풍경'이며 추상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대상도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19세기의 보들레르는 지금 우리에게 삭막하게 보이는 도시를 그린 그림도 '풍경화'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니 19세기의 모더니스트라면 모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2.
중세적 의미에서의 '자연'은 신적인 것과 대비되어 나타난다. 장원이나 성채, 혹은 도시 주변에 펼쳐진 자연, 정확히 말해 '숲'은 이교적 정신의 소유자들의 도피처였으며, 은둔자들, 연인들, 방랑 기사들, 산적들, 무법자들이 도피했던 곳이다. 자크 르 고프의 말을 빌면, "동방에서는 나무가 문명을 의미했지만 서양에서는 그것이 야만을 의미했다. (... ...) 서양 중세에 있어서 모든 진보는 가시덤불과 소관목, 또는 만일 불가피하거나 기술과 장비가 허용된다면, 거목과 처녀림, 페르스발의 '황량한 숲', 단체의 작품에 등장하는 '침침한 숲'에 대한 개간과 투쟁과 승리의 결과이다."(『서양중세문명』, 문학과 지성사) 즉 후세 사람들 눈에 중세가 어느 정도의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고 믿어지듯이, 중세인들에게 숲은 신의 찬란한 빛이 닿지 않는 않는 곳이었다(낭만주의시대 부활되는 중세란 이러한 숲의 중세였다).

하지만 이러한 중세인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던 풍경의 묘사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음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왜냐면 중세의 모든 학예활동이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듯이 예술에 있어서의 중세 '풍경'은 중세의 '유비론(doctrine of analogy)'으로 인해 '상징의 풍경(Landscape of Symbols)'이었기 때문이다. 즉 꽃이나 정원, 나무들 모두 종교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신의 권능을 찬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은 고딕을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라짐과 함께 고대 그리스 이후 잃어버렸던 양식 상의 자연주의도 천천히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랭부르 형제(Limbourg Brothers)의 <<베리 공의 시력(時曆) 그림>>을 통해서 중세 말의 풍경화가 어떠한 모습을 띄었는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던 15세기(꽈뜨로첸토)였지만 그 당시 북유럽은 아직 고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정확히 말해 '국제고딕시대'). 이 그림에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전과 달리 매우 자연주의적이며 세련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늘은 본래의 파란빛을 되찾았으며 길과 토지는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 우리는 고딕 말에 이루어진 자연주의의 회복이란 다름아닌 자연에 대한 관심의 회복(또는 증대)임을 알 수 있다. 아마 근대의 자연과학이란 이러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3.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고전적인 자연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카디아(Arcadia)의 이상을 회복하길 원했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염원했다. 하지만 현실의 자연은 아르카디아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자연 속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그러한 이상은 명확하고 항구적이라고 여겨지던 기하학에 기초한 원근법으로 반영되었으며 그리고 당시의 풍경화를 특징지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이 당시에 '풍경화'라는 장르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지금 이 글에서 이야기되는 풍경화란 풍경 그 자체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풍경이라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언제나 고전적 시대에는 풍경은 그리 중요한 주제나 소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보다 고전적이라 여겨지는 피렌체의 화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고전적이며 색채를 중시했던 베네치아에서 풍경화가 많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풍경화들은 한결같이 목가적이며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이상화된 상상의 자연을 묘사하였다(조르조네(Giorgione)나 티치아노(Tiziano)의 작품들).

그러나 북 유럽의 풍경화는 이탈리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즉 고딕의 자연주의가 더 앞으로 나가 북 유럽에서는 실제 풍경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알트도르퍼(Albrect Altdorfer)의 풍경화가 보여주는 사실성은 베네치아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가 고전적으로 알고 있는 뒤러마저도 매우 사실적인 몇몇 채색풍경화를 남기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화들은 자연에 대한 동경이나 혹은 거부와 같은, 어떤 특정한 세계관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고딕 시대로부터 이어진 자연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듯 싶다. 그리고 몇몇 풍경화들은 '풍속화'나 '지도'의 역할도 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가장 고전주의적 면모를 보인 푸생(Nocolas Poussin)에게 있어 풍경은 지극히 인본주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연에다 '질서와 영속이라는 풍채'를 부여하고자 시도했다. 가령, <포키온의 장례식>(1648)과 같은 그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으며, 자연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평선적 요소와 수직선적 요소가 잘 조화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푸생은 이런 균형을 얻기 위하여 주로 고대 양식에 따른 건축물과 신전등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이상과 영원함에 대한 감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의 그림은 약간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 풍경의 인상을 최초로 표현한 화가였으며(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듯이) 언제나 대상을 감싸고 빛나게 하는 빛으로 가득차 움직이는 대기를 통해 작품의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로렌과 비교해, 아니 전 바로크의 화가들과 비교해도 푸생은 확실히 고전주의적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고전주의자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관에 기초해있으며 그래서 그에게 있어 아르카디아의 이상이란 한낫 허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이상향 속에서도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아르카디아에도 내가 있다(Et In Arcadia Ego)'라는 작품을 그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양식 상의 유사점을 들어 상이한 시대의 비슷해 보이는 양식을 동일한 심리적 경향의 반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가 어떤 항구적인 것을 염원하였음은 분명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처럼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5.
바로크가 정지해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 존재보다는 운동에 더 비중을 두었듯이 이 양식에서 보여지는 풍경화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띤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크적 풍경화라고 말했을 때 이 단어에 가장 적당한 그림은 아마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스텐 성이 있는 풍경>(1636)이 될 것이다. 뵐플린은 여기에 대해 "루벤스는 그것(풍경)을 너무도 판이하게 그려내어 우리는 실제 대상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닌가 오해할 정도이다. 지면은 온통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고 나무줄기는 열정적으로 휘감아 올려져 있는가 하면 잎부분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다루어져 뤼스데일이나 호베마 같은 화가들은 그에 비하면 극도로 꼼꼼한 묘사가로만 느껴진다"(『미술사의 기초개념』, 시공사)고 말한다.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가장 흥미있는 점들 중의 하나는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비교일 것이다. 이는 풍경화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가령 네덜란드의 몇몇 풍경화가들-야콥 반 루이스달(Jacob van Ruisdal),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작품들과 루벤스의 작품을 놓고 본다면 확연히 구분된다. 네덜란드 풍경화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선, 그리고 바로 인접해있으면서 양식상 매우 상이한 것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아놀드 하우저의 견해가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즉 플랑드르는 구교의 세계였고 네덜란드는 개신교의 세계였으며 시민계급이 주류인 사회였기 때문에 플랑드르와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범속한 시민계급의 취향을 위해 풍경화가들이 많았으며 편안하고 끝이 확 트인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것이다.

대체로 바로크 양식의 후기 경향이라고 여겨지는 로코코 시대에 풍경화가 활발하게 그려진 곳은 베네치아였다. 특히 이 도시의 궁전이나 운하, 베네치아인들의 생생한 삶을 묘사한 풍경화를 베두테(vedute)라고 불려졌고 이 그림들은 전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달리 실제의 공간과 상상의 공간이 혼합된 풍경화를 카프리치오(capriccio)라고 불렀는데, 이 양식은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경을 선호하였고, 환상적인 구성과 장식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베두테와 카프리치오만 놓고 비교해본다면 후자가 더 로코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프랑스의 로코코 화가들이 보여준 페트 갈랑트(fe^te galante)류의 그림들 속에서 우리는 로코코의 화가들이 자연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크에서의 보여주던 자연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다분히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자연은 그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화려하고 다분히 향락적인 색채로 치장되어 있으며 도피적이면서 이국적이다. 우리는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아르카디아'가 로코코에 와서 어떻게 변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할 것이다. 즉 현실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꼭 꿈에서 보았던 것처럼 한없이 몽환적인 색채를 보이고 있는 로코코의 풍경은 고전적 신념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자연 대신 그들은 꿈 속의 자연을 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6.
풍경화가 현대적인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낭만주의시대부터이다. 특히 영국의 풍경화가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전해주었다. 특히 터너의 경우 인상주의 작품들처럼 대상과 풍경은 구분되지 않는데, 그가 끌로드 로렌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터너는 로렌의 그림이 지니고 있었던 명료함과 구체성, 그리고 고요함을 버리고 동적이며 화려하고 현란한, 그야말로 자연이 모든 것을 삼킬 듯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존 콘스터블은 언제나 야외로 나가 스케치를 했으며 자신의 눈으로 정직하게 자연을 파악하기를 원했고 그런 그림을 그렸다.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picturesque'라는 단어는 이 당시 영국 풍경화가들의 그림들에게 붙여졌다. 로렌이 상상 속으로 헤매이고 있었다면 콘스터블은 인상주의자들이 했던 방식으로 했던 자신이 바라보는 바의 풍경으로 다가간 것이다. 아마 인상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주석튜브가 만들어졌다면 그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자연을 소재나 주제로 삼았다고 해서 자연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는 중은 아니었다. 도리어 자연은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크롬웰 서문>에서 '인간은 지상을 향하여 몸을 구부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향인 하늘을 몸을 내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주의를 거부했으며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자연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기보다는 이해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을 의미하였다. 특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일련의 작품들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거나 고작 뒷모습만을 드러낼 뿐이며 언제나 자연풍경은 광대하며 끝없이 이어져 있다.

칸트의 '숭고'는 낭만주의의 풍경화가 무엇을 의도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단어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숭고의 느낌은 무형이나 기형(광대함 혹은 강력함)에 직면할 때 체험된다. 미가 오성과 관계한다면 숭고는 이성과 관계하며 생명력의 일시적 정지에 따른 감동이며 외경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나 낭만주의의 풍경화 속에서 인간은 고전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중심의 자리를 상실하고 풍경 속에 묻히거나 그 일부가 된다.

7.
낭만주의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말한 최초의 거대한 흐름이었다면 인상주의는 그것을 극단까지 밀고간 양식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영국 풍경화가들가 인상주의를 잇는 19세기 초의 프랑스의 화가들, 으젠느 들라크르와, 장 바띠스트 까미유 꼬로, 사를르 프랑스와 도비니, 나르시스 디아즈, 귀스타브 꾸르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한다면 이 글은 매우 길어질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들이 바라보았던 풍경들은 바로 인상주의의 풍경화로 귀결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이제 '자연 그 자체'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화가들의 풍경은 인간의 눈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풍경이었지만 인상주의에서의 풍경은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풍경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내가 보는 풍경과 네가 보는 풍경은 다르며, 그래서 진정한 자연주의란 한 개인의 감각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며 이제 풍경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변화에 충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시대, 19세기 후반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이상성이라든지 숭고함, 또는 루소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를 실현하는 인상주의는 자연의 광경을 계속 새롭게 하기 위해서 순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버린다.

발레리가 문학에서 있어서 묘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묘사란 일반적으로, 위치를 바꿔 놓아도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방을 그 순서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련의 문장으로 묘사할 수 있다. 시선은 원하는 대로 방황한다. 이런 방황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진실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진실은 우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방식과 똑같이 우리는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의 종속물로서, 풍경은 멋있는 것이 있는 장소, 몽상의 거주지, 방심한 눈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는 인상이 승리한다. 질료와 빛이 지배한다.'(폴 발레리, 『드가, 춤, 데생』, 열화당)

인상주의의 풍경화-모네, 피사로, 드가, 르느와르의 작품들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자연'적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즉 자연법칙이란 항구적이지도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 그 자체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자연이란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이 구성해내는 각기 다른 자연들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들이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대신, 그 반대 급부로 자리잡은 자연에 대해 한없는 경외감을 품었다면 인상주의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자연마저 무시하고 아예 '자연은 상상력이 없다'라고 말하는 보들레르나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말한 오스카 와일드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이 집중하는 것은 외부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내부 세계로서의 자연이며 그 속에서 풍경화는 구체성 대신 추상성을 띄기 시작한다. 세잔느의 기하학주의는 이러한 경향의 최초의 움직임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세잔느는 '사람의 얼굴도 하나의 대상으로서 그려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예술가는 이 완벽한 예술작품을 쫓아야만 한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부터 나온다. 즉 우리는 자연을 통해 존재하며,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오직 자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파악한 자연은 외부 세계에 있는 자연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 있는 자연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이후의 풍경화를 '내면의 풍경화'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 보론 - 자연주의에 대하여

자연주의란 사실주의라는 단어에서 가치나 도덕, 혹은 신념 따위를 뺀 용어이며 이 용어 또한 사실주의와 비슷하여 그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예술사에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보다 그 사용이 더욱 빈번하고 위의 글에서는 나는 '자연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이 글 내에서 자연주의가 어떤 용례로 쓰였는가를 말해야 옳을 듯 싶다.

자연주의란 이성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기 보다는 다분히 심리적인 그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용어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보다 인상주의의 그림을 더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딕의 조각들이 로마네스크의 조각보다 더 자연주의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할 때 그 기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의 기초는 우리의 지각에 있다. 우리가 보는 바 우리의 감각에 더 충실한다면(매우 모호한 표현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에게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것이 더 자연주의적인 양식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반자연적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감각으로 받아들였던 자연을,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 도리어 자연을 부정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의 '자연'과 '자연주의'를 혼동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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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10점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웅진출판, 1995
(*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시리즈의 열번째 권).





1.
이 소설에 대한 감상문으로 적당한 문장은 이러하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라는 일본의 변태적 허구를 즐기는 작가가 쓴 소설을 읽었는데 말이야,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녀석 소설 하나를 잘 쓰더군. 뭐,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소설을 읽고 잘 쓴다라는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다카하시 겐이치로라는 녀석이 ‘변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런 문장은 이 소설을 소개하는 글의 문장으론 적당하지 않다.

2.
소설 뒤에 붙은 박유하 교수의 해설은 이 소설의 이해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는, 고진의 책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번역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해설의 여기저기에 고진의 단어들을 아무런 꺼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단어들이 겐이치로의 소설을 말하는데 적당한가에 대해선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은 듯 보인다.

3.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미친 놈이 이상한 소설 하나를 썼군’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웃었다면 이 소설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일반적으로 소설에게서 기대되어지는 것들-탁월한 문장력과 감동이나 교훈-은 이 소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스스로 쓰레기가 되기를 자처한 소설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발적으로 키취화하려는 태도’로써 정반대의 효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과연 오늘날의 야구가 과연 ‘우아하고 감상적’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까지 가지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의 소설들에 대해서까지도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가’따위의 의문을 품게 만든다.

굳이 이 소설을 분류하자면 ‘메타픽션’쯤에 갖다 놓을 수 있는데, 왜냐면 이 소설은 소설쓰기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을 의도적으로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말도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를 야구와 연관시키며, 그리고 소설 속의 모든 인물과 소재들은 야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하지만 그 향해한 장소엔 야구는 존재하지 않는데, 소설 속 시점(時點)에서도 야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며 또한 소설 속 인물들이 추구하는 야구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와는 다른 야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의도가 드러난다. 그걸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적극적으로 말이 되지 않게 하기’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이다. 또한 소설은 어떤 유기적인 구조나 통일성을 결하고 있다. 이것은 구체적 형태의 야구의 부재와도 연관된다.

4.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서 묻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야구에 대한 가지고 있는 태도들이 모여 분명 존재하지 않는 야구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야구(에 대한 태도)를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한 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 대해서도, 이 세상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태도에서 어떤 태도로의 변화를 의미하는지는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이것이 이 소설의 약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글쓰기가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할 수도 있다라는 것을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분명하게 증명해내고 있다. 그러나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난 다음 가지게 되는 허무나 자질구레한 감정 따위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무언가를 우리에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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