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문장들:
* 그렇다고 수용소가 이제 폐쇄되었다고 해서 계급사회가 끝
난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 사서인 안톤이 내게 그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 죽음은 삶의 사건의 아니다. 인간은 죽음을 체험하지 못한
다.(Der Tod ist Kein Ereign des Lebens. Den Tod erlebt man
nicht ......)(-비트겐슈타인)
* 결국, 내게는 죽음 이외의 아무 것도 없다
나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 ...
(- 세자르 발레조. 페루 시인. 1893-1938)
* 글쓰기란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 카프카는 마르크스가 죽은 1883년에 태어나, 레닌이 죽은
1924년에 죽었다.
* *
일요일 오전 내내 블라디밀 아쉬케나지가 연주하는 라흐마니
노프를 들으며, 죠르쥬 쌍프렝의 『글이냐 삶이냐L'e'criture ou
la vie』를 다 읽었다. 그리고,
1979. 12. 30.
엄마가
쇼핑센터레코드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을 들으면서 이 노래는 왜
이렇게 내 귀에 익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때때로 한다. 내가 음
악을 듣는 곳은 유일하게 내 방의, 튜너가 없는 중고 오디오뿐이
기 때문이다. 아마 기억 나지 않는 장소에서 들었던 모양이다.
난 일요일 오전을 좋아한다. 일요일 오전에 앉아 라흐마니노
프를 들으며 한 소설을 다 읽었다. 그리고 그 라흐마니노프 음반
은 헌책방에서 먼지 속에서 잠자고 있던 중고 LP. 그 레코드 자
켓 뒷면 가장자리에 적힌 몇 개의 단어들: 1979. 12. 30. 엄마
가. 쇼핑센터레코드에서.
이것으로 갑자기 찾아온 가을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
던 내 영혼의 그림자를 다시 내 곁에 붙으러 매둘 수 있을까. 소
설이라고 말했지만, 이 소설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적이었
다. 그리고 날 더욱 놀라게 했던 건, 어떻게, 그것도 이십대 초
반의 젊은이가 삼백편의 시를 암송할 수 있단 말인가! 독일어,
스페인어, 불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십대 초반의, 레지스땅
스 대원이며, 코뮤니스트, 에꼴 노르말 준비반 학생. 이러한 이
유로 몇 주간 이 책을 잡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서점에서 구입을 결정하게 된 유일한 이유는,
"추억하고자 하는 사람은 망각을 믿어야 한다. 절대적 망각이
라는 위험을 믿어야 하며, 그때 추억은 아름다운 우연이 된다.
이 아름다운 우연을 믿어야 한다"라는 모리스 블랑쇼의 문장 때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