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6

현대적 쓸쓸함,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와 홀로

토요일 아침,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쓰레기를 버리고 ... 아, 겨울인가, 그러기엔 춥지 않아, 이 불길함이란.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마을에 백 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 한 명이 살해당한다. 사람들은 서로 웅성웅성거리며 누가 범인인지 추측해 대다가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 오해를 사고 있던 한 명을 지목하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하였음에도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그리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변호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심하게 때리곤 마을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사람 한 명이 또 살해당하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살인하지 않았음을 막연하게 추측하곤 외부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죄가 없는가? 내가 이런 마을에서 살고 있다면,..

토요일 출근

지하 1층의 공기는 무겁고 차갑고 쓸쓸하다. 텅빈 주말의 프로젝트룸은 예전과 같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던 이들도 이젠 주말에 출근하지 않는다. 한 두 명씩 주말 출근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주말 출근하는 이들만 호구처럼 보이던 과도기를 거쳐 지금은 관리자나 성실한 정규직 직원만 가끔 주말 출근을 한다. 어쩌다 보니, 몇 년째 여의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속 여의도 쪽 프로젝트만 하게 되었다. 원래 업무가 프로젝트 관리가 아닌데, 누군가 잘못하면 내가 가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나라고 해서 모든 걸 잘 할 수 없기에,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로 둘러쌓인 환경에 놓여져 있다. 꿈은 멀리 사라지고, 그 멀어진 거리만큼 내 피부는 건조해지고 푸석푸석해졌..

요즘, 자주, 스타벅스엘

요즘, 자주, 스타벅스엘 간다. 오늘의 커피를 시킨다. 기다린다. 5분. 3분. 2분. 1분. 커피를 받아들고 걷거나 앉는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낯설다. 익숙한 풍경 속의 낯선 나. 시간이 갈수록 내가 낯설어진다. 익숙한 나는 저 멀리 있고 낯선 내가 나를 드리운 지도 몇 년이 흐른 걸까. 나는 익숙한 나를 숨기고 낯선 나로 포장한 지도, 무심히 보내는 오월 봄날처럼 둔해진 건가. 요즘, 자주, 읽지 못할 책을 펼친다. 롤랑 바르트. 그의 문장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언제였을까. 오직 바르트만이 줄 수 있는 위안. 그건 언제였던가. 누군가를 만나 바르트 이야기를 하고 바르트 이야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고 바르트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신 적은 언제였던가. 바르트가 이야기한 사랑과 문학과 사진과 그 자신을..

카페, 프로젝트 사무실, 쓸쓸한 일요일

1.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

2월 26일: 구로디지털단지, 어느 스타벅스 안에서.

쓸쓸하고 우울한 따뜻함으로 채워진 대기가 건조한 빛깔의 벽과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둔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반사하는 유리로 지어진 빌딩 사이로 내려앉고 있었다.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 날씨지만, 이름 없는 행인들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딱딱한 염려가 섭씨 10도를 넘나드는 대기의 온도로 녹아 사라질 거라 믿는 듯 보였다. 신도림에서 미팅을 끝내고 구로디지털단지로 왔다. 노트와 펜을 샀다. 이동 중에, 아무렇게나 들른 가게에서 노트와 펜을 살 때면, 어김없이 여행을 떠나기 전의 기형도가 떠오른다.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세월’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법한 과거의 인물이 되어버렸고, 기형도가 파고다 극장에서 그의 조용한 생을 마감할 때보다 더 나이가 든 나에게, 세상..

광화문 스타벅스 - 8월 17일 오후 네 시,

8월 17일 오후 네 시, 광화문 스타벅스. 소리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곳이다. 천정에 매달린 스피커의 쓰임새가 자못 궁금해지는 이 곳은 소리와 타인에게 무신경한 서울 사람들의 비정함으로 빼곡히 매워진 공간이기도 하다. 이 지독한 소음 속에서 어떤 생각이나 상상, 외부를 향한 사소한 관심마저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곳은 차가운 원두커피를 마시기 위해, 8월 서울의 타는 듯한 열기를 피하기 위한 사소한 희망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단 1초라도 쉬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숨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다는 대단한 자신감과 용기로 충만한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심지어 이 곳에 앉아있는 내가 놀랍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워 보이는 이 공간은, 시대의 몰락을 향해 가는, 우울한 대도시의 풍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