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5

봄의 정원, 시바사키 도모카

봄의 정원 시바사키 도모카(지음), 권영주(옮김), 은행나무 베란다와 창문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형태가 똑같은 창으로 햇빛이 비쳐 들었다. 2층 집은 벽에, 1층 집은 바닥에도, 볕이 드는 곳과 그늘의 경계가 보였다.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를 내는 것도 없었다. 해시계처럼 양달과 응달의 경계가 이동할 뿐이다. 도서관에서 그냥 집어들고 읽었다. '아쿠타카와 수상작'이라고 하나, 그냥 작은 소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대 일본을 알 수 있을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할까. 관음증적이면서도 쓸쓸한 봄날의 풍경화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도 독자도 심지어 소설 속 인물들 마저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고나 할까. 결코 속마음을 들킬 필요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그 때 그 모습만을 묘사할 ..

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나의 삶이라는 책 The Book of My Life 알렉산다르 헤몬Aleksandar Hemon(지음), 이동교(옮김), 은행나무 나는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 151쪽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서 아는 건 거의 없다. 학살과 인종 청소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끔찍한 전쟁이었다는 정도. 우리와는 너무 멀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라예보라고 하면 탁구선수 이에리사와 제 1차 세계대전을 떠올릴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고 하나, 그 끔찍함으로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실은 한국전쟁이 더 끔찍한데, 이것에 대해서도 우리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알렉산드르 헤몬Aleksandar Hemon은 내가 처음 읽는 보스니아 작가다. 티토가 극적으로 통합한 사회주의국가 유고슬..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지음), 유예진(옮김), 은행나무 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독서'에 대한 수필집은 아니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의 책들을 불어로 번역하면서 쓴 에세이들(역자 서문이나 해설)로 짧게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뿐, 나머지는 모두 화가들에 대해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글들로 인해 이 책을 구입했다. 때때로 우리는 미술평론가나 철학자(미학자)가 쓴 예술론에 실망하고 그 대신 소설가나 시인이 쓴 어떤 글들로 놀라고 감동받는다. 이 책도 그렇다. 그렇지 않더라도 프루스트가 나를 실망시키는 법은 없을 테니.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설가가 되기 전 젊은 시절의 마르셀 프루스트는 존 러스킨에 심취해 있었다. ..

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자화상에두아르 르베 Edouard Leve 지음, 정영문 옮김, 은행나무 소설일까? 그냥 일기일까? 자서전일까? 에세이일까? 예술 형식에 대한 구분이 호소력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에, 장르를 적는 건 무의미하다. 책 표지에 적힌 '장편소설'이라는 단어가 부적절해보인다. 이 책의 서술, 그것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에두아르 르베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에두아르 르베는 이 짤막한 글 속에서 자신이 여든 다섯 살에 죽을 것임을 예감하지만, 마흔 둘의 나이로 자살하니, 이 책 자체로 일종의 부조리일지도 모른다. 실은 내 일상이, 내 인생이,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하지만,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그걸 부정하고 있지. 이미 죽은 자의 자화상. 서로 연관성 없는 문장들은 병렬적으로..

꿈에 ...

걱정은 태산같고 시간은 쏜살같다. 몇 달 사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쓸쓸하기만 초겨울, 눈발이 날리는 강변 도로를 택시 안에서 잠시 졸았다. 나는 아주 잠깐, 졸면서 기적과도 같이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다. 며칠 전 가로수를 찍었다. 무심하게 계절을 보내는 은행나무의 노란 빛깔은 어두워지는 하늘과 차가워진 대기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 가로수 밑에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얇은 몸매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녀가 연신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