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한국 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강수미

지하련 2009. 7. 25. 12:04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 8점
강수미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 탐미와 위반, 29인의 성좌
강수미(지음), 현실문화


미술비평가란 존재는 낯설다. 기묘하다.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해 설명하지만, 그 설명은 활자 언어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글로 설명된 미술 작품을 전부라고 믿는 순간, 작품은 은하계 너머 미지의 세계로 달아난다. 활자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어떤 이야기(narrative)를 미술은 시각적 언어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활자언어로 된 비평은 작품의 보조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것이 비평 본연의 업무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작가들마저 아이러니하게도 글(활자언어)로 설명된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싶어 한다. 도저히 현대의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걸까.

나는 가끔 뛰어난 작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나의 설명을 기다리지만, 나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그 상황에 못 이겨, 풍부한 비유와 아름다운 단어들로 표현하는 순간, 나는 그것이 그 작품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설명을 듣길 원한다. 미술비평의 시작은 그런 설명이 활자언어로 옮겨지고 책으로 나오고 신문에 실리던 때부터일 것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여인 디오티마에 대해 이야기하던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지도 모르겠다.

미술 비평집이란 그 탄생부터 이러한 한계를 가진다. 활자언어로 담을 수 없는 이미지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또한 대부분의 비평집들이 형편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뛰어난 비평집은 자신의 언어와 작가나 작품의 언어가 평행선을 달리며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예술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그러나 이 순간 그것은 비평을 넘어서 하나의 이론이 되고 하나의 창조물이 된다. 그리고 그 창조물은 글쓴이의 소산이 되며, 활자언어를 위해 시각적 언어로 된 미술 작품은 보조적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을 가지게 된다. 즉 비평 본연의 업무를 저버린 꼴이 된다.

이 점에서
강수미의 이 책은 매우 적절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군데군데 생경한 단어와 표현이 들어서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흩어뜨리지 않는다. 확실히 그녀는 작가와 작품의 편이다. 그녀는 자신이 보았고 느꼈던 것만을 이야기한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으며, 동시에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적당한 글쓰기이다. 유혹, 관찰, 경계, 확장, 정치. 책 내용의 구분도 적절하며, 작가의 배치도 적절했다. 다만 도판의 크기가 작은 점은 안타까웠다. 몇 명의 작가와 작품이미지, 그리고 강수미의 설명을 옮긴다. 다른 작가들에 대해서도 이 블로그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최지영, chandelier, 캔버스에 유채, 145×112cm, 2008

마치 손이 벨벳의 도도한 결을 쓰다듬을 때와 같이, 도자기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표면 위를 미끄러질 때 그런 것처럼, 조명등의 따사롭고 깊은 빛 아래서 그러듯이, 우리 눈이 그림을 감촉하는 것이다. 이 감촉성, 그 감각적 매혹과 욕망의 충족이 최지영 그림이 무대 위에 올려 상연하는 사물의 실재다.(54쪽)

박홍순, Paradise in Seoul, #006, 2007

그가 한강을 대상으로 작업한 최근 사진들은 작가와 카메라가 '즉자적으로(literal)' 깊고 낮은 시점을 취함으로써, 우리가 실제 한강 주변에서 바라보는 '생활세계로서의 한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140쪽)

정연두, 로케이션 #19, 사진 인화, 122×145cm, 2006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사진이미지에 대해서도 전적인 믿음을 갖지 않는 시대에 오히려 아무런 의도나 개념도 없이 '진짜'를 제시하는 것. 이것이 정연두의 <Location>이 가진 깊은 의도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진짜 풍경'을 '모조 풍경'으로 오인하도록 덫을 놓고, '사실'과 '시뮬레이션'의 요소들이 모두 한 지면에 드러난 사진에서 숨겨진 의도(사실은 없는 의도)와 은폐된(사실은 은폐되지 않은) 사실/시뮬레이션의 경계를 어딘가에서 찾아보는 헛수고를 부추긴다.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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