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늦은 봄에 올린 포스팅을 새로 올린다.
야니스 크세나키스.
그리스가 자랑하는 현대음악 작곡가다. 얼마 전 나이브에서 야니스 크세나키스 박스 세트를 구입했다. 놀라운 박스 세트였으며, 지금 듣고 있는 동안 흥분과 전율을 감출 수 없다. 그 박스 세트에 대한 리뷰는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몇 년 전 글이긴 하지만,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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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고작 해봐야 에릭 사티나 바르톡 정도. 뽈 발레리는 '회화만한 지적인 예술은 없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지적인 것들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수(수학)로 바로 옮길 수 있는 예술은 회화가 아니라 음악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 중세 시대 내내 조형 예술이 철저하게 무시당한 것에 비해 음악은 신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의 낭만주의자들(후기구조주의자들)은 기하학주의라는 뿌리 깊은 편견에 도전하였지만, 실은 기하학주의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피타고라스-플라톤의 기하학주의는 더욱 강화되었다. 아무렇게 그린 선이나 도형을 무한히 반복하면 일정한 모형이 나온다는 카오스 이론은 우연한 낭만주의에서 규칙적인 고전주의로 가는 어떤 방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언어학에서 시작된 구조주의 또한 이 세계를 하나의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새로운 형태의 기하학주의는 아닐까.
(도리어 기하학주의에서 시작된 양자역학이야 말로 반기하학주의로 나아가는 흐름이 아닐까?)
현대 음악들 대부분은 불협화음을 사용하고 듣기 불편하고 자극적이다. 아마 아무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감상자에게는 지독한 고문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아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도 예외는 아니다. 음반을 구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듣는 것마저도 어느 정도의 인내를 감소해야만 하니까.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문외한인 나에게도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매우 독특하다. 보통의 음악은 물결처럼 흘러간다. 그것이 협화음이든 불협화음이든. 그런데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흘러간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고 일정한 모양의 음들이 규칙적으로, 무리지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학적으로 고도로 계산된 일련의 움직임들이 눈에 보이듯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음악을 듣는 내내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듣는 이의 지성에 호소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를 강요하는 듯 하다. 그는 건축적 음악을 만들었고 그것이 그의 음악적 신념이자 태도였다. 마치 잘 마무리된 대리석 벽돌처럼 생긴 음들이 흘러다닌다고 할까.
유튜브에서 그의 음악을 옮긴다. 즐거운(?) 감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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