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현기증의 하루.들.

지하련 2011. 4. 30. 09:54



매일 팀원들과 하루 일과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름하여 일일보고서. 그런데 그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쓴 게 2주 전이었다. 그 사이 나는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일을 했다. 상당량의 스트레스가 육체를 자극했고 적당한 고립감과 쓸쓸함이 내 사무실 책상 위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2주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형 IT 프로젝트의 제안서를 거의 혼자서 썼고, 어제서야 비로소 제안 발표를 했다. 아직도 400명 앞에서 벌벌 떨며 했던 발표가 기억에 선한데, 지금은 제안 발표 때 긴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긴장하지 않는다는 건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초부터 침대에 누우면 현기증이 심하게 일었다. 마치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위에 몸을 실은 듯이. 노년의 의사에게 들은 바로는, 귀 안 쪽, 내 지친 육체의 수평 감각을 조정하는 기관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 이후 종일 멍한 시선으로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세계의 가장자리는 약간 곡선으로 휘어져 안쪽으로 굽이쳐 말려들었다. 몸을 심하게 움직이거나 시선을 급하게 돌릴 때마다 나는 비잉 - 돌아갔다. 그러면서 몸도, 흔들, 흔들, 흔들, …



늦은 아침, 병원 가는 길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봄바람이라고 하기엔 찬 바람이, 벚나무 가지에 부딪혀 내 거친 마음에 와 닿았다, 스러졌다. 바람은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건조한 대륙에서 날아와, 반도 끝을 향해 달려가던 중에, 4월 벚꽃과 한 남자의 마음을 만난 것이다.

벚꽃 이파리들이 날렸다. 하늘보다 낮게, 낮게, 낮게… 분홍 이파리들은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소녀의 발간 볼 색깔과 닮았다. 늙어가는 육체,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감성. 참 슬픈 풍경이지만,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터무니없게도 스물이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내 십대의 막다른 골목길 같았던 사랑이 그립고 안타까웠다.


간밤에 비가 내렸다. 공기는 한결 깨끗해지고 투명해졌다. 4월 말의 어색한 햇빛이 거리에 내렸다. 그리고 현기증이 내 몸 안에서 일어나 내 몸 밖으로 퍼져 사라졌다. 가끔, 아주 자주.

갈색 보도 블록 위로 곱게 깔린 벚꽃 이파리들. 아마 며칠 지나면 사라지겠지. 마치 우리들의 지나간 청춘처럼. 그렇게.



병원을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서자, 지난 여름의 푸른 빛깔이 시야를 가렸다. 푸른 빛, 그건 21세기의 청춘과 어울리지 않는다. 21세기의 중년과도 어울리지 않겠지. 푸른 색, 그건 17세기나 18세기, 바로크를 지나 로코코, 그리고 초기 낭만주의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색이다. 아니면 정조의 문체에 반발했던, 조선의 낭만적 선비들과 어울리는 색이다. 노발리스나 이옥.

하루는 길거나 짧다. 인생도, 사랑도 길거나 짧다. 마치 박제가 되어버린 연필같다. 병원의 책상, 노년의 의사는 전보다 조금 나아졌다고 말했다. 나는 나아졌다기 보다는 다소 덜 어색해진 현기증이라고 했다. 익숙해진다는 것만큼 쓸쓸한 것도 없다. 그리고 완벽하게 익숙해지는 순간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죽음이 찾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