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올해 읽은 3권의 책

지하련 2012. 11. 27. 19:56

(이 글은 yes24 블로그에 올린 것이다. 간단하게 소감을 적은 것이며, 조중걸 선생님의 '현대예술'은 읽은지 몇 달이 지나도록 서평을 쓰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긴 서평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해보기로 하자) 




올해의 책을 여기저기서 발표하지만, 우리들은 올해 출판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출판된 책들도 읽는다. 심지어 기원전에 출판되어 수대에 걸쳐 읽혀져 온 책들을 이제서야 읽는 경우도 있다. 

책은 이미 너무 많다. 결국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많은 책을 읽었지만,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꽤 많이 봐았다. 그들은 책을 읽는다는 '반성적 행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이 읽은 책과는 유리되어, 그들의 책 목록이 자신들의 빈약한 사고력과 언행의 변명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책을 어떻게 읽느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최고의 책이라곤 하지만, ...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참으로 많다. 


현대예술
조중걸 


현대 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지음), 지혜정원


서양미술사는 역사학의 분과학문이다. 부분적으로 지성사와 철학사와 겹치며, 과학사나 문학사와도 공유하는 역사다. 특히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예술적 가치(혹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이는 순수과학(물리학)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한국어로 씌여진 거의 유일한, 거의 독보적인 서양미술사이다. 대부분의 서양미술사가 양식사를 중심으로 기술되는 반면, 이 책은 지성사, 특히 형이상학의 틀 속에서 현대 예술을 탐구하고 조명한다. 내용은 어렵지만, 문장은 감미롭고, 예술 작품 면면을 살피면서 우리,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즉 왜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여러 학문들을 넘나들며 설명한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 저/허경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지음), 인간사랑

'민주주의'국가에 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민주주의'에 대해 묻지 않는다. 심지어 '민주주의'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다. 자크 랑시에르의 이 시사적인 책은, 비단 프랑스적 문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나 보수화되는 모든 나라에 해당될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정의/실체에 대해 물으면서, 동시에 그것의 가능성을 따진다. 결국 민주주의란 아직 완전한 형태로 도래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향연
플라톤 저/강철웅 


향연, 플라톤, EJB북스


플라톤의 '향연'이다. 이 책을 올해의 책을 올리는 것만큼 한심한 짓도 없을 텐데. 그만큼 한국의 번역에 대해서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이지만, 한국에서 플라톤 읽기는 참 힘들었다. 특히 '시학'이나 '향연'과 같이 철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은 번역본이 여러 존재하고, 그 대부분이 형편없는 번역서이거나 초심자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점에서 번역이 정확하고 친절하다.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은 여러모로 한국 출판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