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201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하련 2014. 1. 2. 14:41



해마다 1월 1일은 옵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습관처럼 1월 1일, 새해 계획을 세웁니다. 저는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세우나마나 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는 의미에서 그랬습니다만). 회사에선 신년 사업 계획을 세우지만, 제 계획대로 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현대 경영학에서는 '불확실성'(Uncertainty)이 강조됩니다. 미국에 사는 아랍 사람,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대놓고 '흄의 문제'를 끄집어내어 '우연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와 마찬가지로 흄(Hume)과 포퍼(Popper)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비관적이며 낭만적인 플라톤(Plato)을 지지하며, 그의 경험되지 못할 이상(Idea)을 향해 도전했던 무수한 예술가와 작가들을 사랑합니다. 이는 경영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대적 기계론은 화폐 경제를 만들었고 포디즘(Fordism)을 도입했습니다.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도 포디즘의 사생아와 같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계량적 가치만 중시하여 구조조정을 인적 쇄신에 중점을 두는 방향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가치와 신뢰에 무게를 두며 교육과 혁신을 통한 지속에 중점을 두기로 합니다. 그리고 시장에는 이 두 가치가 존재하나, 전자는 현실적이고 많은 기업들이 선택하는 반면, 후자는 이상주의적이며 소수의 기업들이 겨우 지지할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두 가지 이상의 갈림길 앞에 서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한쪽에서는 근대 이후를 이야기하지만, 우리 일상은 근대 속에 속해있습니다. 학자들의 형편없는 포스트-이론들은 순수한 우리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렸으며, 그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으며, 유행 같은 학문들을 재생산하게 만듭니다. 


뒤늦게 세상의 세속적 태도를 배운 우리는 플라톤 한 줄 읽지 않고 플라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얼마나 많은 강의실에서 플라톤이 이야기되고 있을까요?). 그렇게 정직하지 못한 이야기가 세상 여기저기를 방황하고 돌아온 뒤엔 어느 것이 정직한 이야기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건 어떤 벽입니다. 그리고 그 벽 사이입니다.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실은 제가 있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스물부터 마흔까지 실패만 거듭해왔습니다. 실패만 거듭해온 것 치고 운이 좋은 편이라 여기고 싶습니다. 개인 블로그를 할 시간이 있으며, 가끔 커피를 마시고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며,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운이 갑자기 저에게 닥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연이 우리 일상에 끼어드는 순간, 불안과 두려움은 일상으로 변합니다. 예측가능성이 데카르트(Descartes)의 명제였다면, 예측불가능성은 흄의 명제입니다. 그리고 흄이 승리하고 있습니다. 


2013년 저에게는 매우 힘든 한 해였습니다. 자주 주말에 나와 일을 했고, 상반기에는 꽤 상당한 매출실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잘못된 프로젝트 결과로 고객사 담당자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렸으며, 그 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욕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불합리한 요구까지 들어주며 끌려 다녔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직원에겐 다른 부서인 탓에, 그리고 제가 나서서 지적하는 순간 제 일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탓에 한 마디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처리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아서, 제가 할 수 있다고 여긴, 다른 이, 다른 부서의 업무까지 가지고 와서 처리하였습니다. 결국엔 '모든 것은 가능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형편없는 자신감과 태도가 불러온 오지랖이었으며, 제가 맡은 일까지 엉망이 되었습니다. 회사가 위기에 처했으나 그 누구도 비전이나 솔루션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013년 하반기는 흘러갔습니다.  


개인 모임을 거의 가지지 못했으며, 세미나 한 번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설 연휴, 추석 연휴에 나와 일을 했고 가족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책은 30권정도 밖에 읽지 못했으며 미술 전시는 거의 가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지 못했으며, 직장을 다니면서 만난 선후배들과 커피 한 잔 못했고 안부를 묻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회사 일에 모든 것을 가져다 부은 셈인데, 제 회사가 아니고 제가 사장이 아닌 다음에야 제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에는 한계가 있음을 12월이 되어서야 알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가족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저에게 작은 희망을 가졌던 직원들에게 미안합니다. 제안을 하고 발표를 한 후 저에게 일을 주었던 고객사에게 감사하고 좀 더 좋은 결과물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이 미안합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새해 계획을 세울까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까닭에, 그러나 다시 꿈을 꾸고 실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는 까닭에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창업을 하기 전에 가족의 지지가 있었습니다. '가족의 지지'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고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존경받는 가장의 모습을 먼저 찾아야겠습니다.


어느 순간 이십대 시절 그토록 경멸하던 사십대 중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십대 시절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배는 나왔으나 마음은 군살 없는 그대로입니다. 이제서야 꿈을 꾸고 꿈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지지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소수의 보잘 것 없는 인정을 받긴 했으나,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은 되지 못했습니다. 


2014년입니다. 이 작은 블로그에 오시는 모든 분께 고맙습니다. 이 블로그도 방문자가 많아서 비밀스러운 공간이라기보다는 공개된 공간이 되었습니다. 2013년을 반성하고 2014년을 맞는 의미에서 제 작은 반성문을 올립니다. 나이가 들수록 반성과 후회는 더 많아집니다. 이렇게 될 것이라곤 이십대의 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 참으로 거추장스럽게 여겨지지만, 베르그송(Bergson)이 약동하는 생명(elan vital)에 매혹되었듯이 살아간다는 건 쉼 없는 도전과 반성, 후회로 이루어지는 마라톤과 같으며, 우리의 뛰는 심장과 핏줄은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며, 생명을 지닌 존재의 의무입니다. 


2014년, 모두 앞으로 전진 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한 해 같이 고생한 사무실 책상과 의자.


 


2013년 12월 김택상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도록. 그의 작품을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연락주시고 도록을 보내주셨다. 암울하기만 했던 12월, 거의 유일하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