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미국 만들기 - 20세기 미국에서의 좌파 사상, 리처드 로티

지하련 2004. 4. 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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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만들기 - 20세기 미국에서의 좌파 사상
리처드 로티 지음, 임옥희 옮김. 동문선


개인적으로 '너는 보수주의자 나는 진보주의자', 혹은 '너는 우파 나는 좌파'라는 구분 짓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한 사람 속에서는 보수적인 모습과 진보적인 모습이 공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은 미래를 향한 실천'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들은 일정한 규칙에 의해 조정되고 하나의 방향을 향해 움직여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순진하고 이상주의적인 것이다. 왜냐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로티의 이 책은 미국 내에서의 좌파 사상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서술한 책이다. 특히 20세기 후반의 강단 좌파들에 대한 비판은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왜냐면 국내의 젊은 학자들은 현대 프랑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가면서 그들의 연구작업이 현실을 바꾸는 데에 이바지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문화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 후기구조주의 사상에 기반한 연구들은 현실을 바꾸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반형이상학적이고 반데카르트적인 철학자들이 영혼의 파토스를 유사 종교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한, 이들 철학자들은 사적인 삶으로 격하되어야 하며, 정치적인 논의의 지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촉구해왔다. 에마누엘 레비나스가 정식화하고 때때로 데리다가 전개시킨 '끝없는 책임감'이라는 개념 - 데리다 자신이 빈번히 발견한 불가능성, 도달 불가능성과 재현 불가능성 등과 같은 개념과 더불어 - 은 개인적인 완벽을 추구하는 개별적인 탐구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적인 책임감을 가정할 때, 무한한 것과 재현 불가능한 것은 그저 성가신 것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책임감을 고려해 본다는 것은 죄의식의 경우만큼이나 효과적인 정치 조직에 장애가 되는 일이다."(116쪽-117쪽)

리처드 로티는 대학 강단의 문화적인 좌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정치적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어떤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미국을 배경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문화 연구나 현대 프랑스철학에 경도되어 그들의 작업이 '실천적'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충분히 가치 있는 저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