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하련 2004. 5. 1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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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 진중권 지음, 웅진닷컴



그림도 하나의 세계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의 인생, 각자가 처한 세계에 대해 각기 다른 느낌과 이해를 가지고 있듯이 그림의 세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림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틀리고 개인마다 틀린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특정 그림에 대한 개인의 감상에 대해 ‘너의 견해는 틀렸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경우 우리는 ‘그림에 대한 정해진 해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미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현대 미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끊임없이 사회적 차별이나 금기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바로 ‘(이 세상에는 원래)정해져 있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하나의 의미는 여러 의미로 나누어지고 다양성이 진정한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을 매우 어렵게 여기며 불편하게 생각하고 나와는 동떨어진 교양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예술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 기존의 모든 예술 전통에 대해 도전했던 것은 실패하고 만 셈이다.

이 책도 그러한 시도들 중의 하나다. 사람들의 그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편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좀더 쉽게 다가오라고 손짓하는 책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한 일반적 이해에서부터 ‘도상학적 관점’, ‘정신분석학적 관점’, ‘사회학적 관점’, ‘여성주의적 관점’, ‘기호학적 관점’에 대해서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고 나서 현대 미술에 대한 설명으로 그 끝을 낸다. 그리고 모든 도판이 원색으로 인쇄되어 있으며 책 끝부분에 도판 목록을 정리하고 있어, 인터넷이나 다른 책들을 통해 찾아보려는 이들에게 친절한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판 목록 정리는 미술 관련 책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하지 않는 책이 너무 많다.) 하지만 현대 미술에 대한 설명은 책의 다른 부분과 비교해 내용이 떨어지는 것은 흠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