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발견의 시대, 이언 골딘, 크리스 쿠타나

지하련 2019. 3. 31. 23:33

 

발견의 시대 Age of Discovery 

이언 골딘, 크리스 쿠타나(지음), 김지연(옮김), 21세기북스 

 

 

 

"현 시대는 신르네상스다.
폭발하는 천재성과 번성하는 위험성이 대립하는 시대다."

 

 

나는 자주 현대를, 로마가 흔들리기 시작하던 헬레니즘 시대와 비교했다. 헬레니즘은 로마 시대의 정점이면서 동시에 그림자가 깃드는 시기다. 팍스 로마나의 시대이지만, 그 평화 사이로 새로운 이민족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문화와 종교가 뒤섞이고 더 이상 확장하기엔 한계에 이르는 어떤 제국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다음은 (다들 알고 있듯이) 로마 말기, 혹은 중세 초기가 시작된다. 문명의 노을이 깃드는 시기다. 

 

르네상스와 비교한 적은 거의 없다. 살짝 현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순 있으나, 엄밀히 말해 순수한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반도에 국한된 것이며, 북유럽은 중세 말기에서 근대로 바로 옮겨 온다. 중세 후기와 근대, 그리고 근대와 현대는 어쩌면 하나의 시대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다시 말해 1200년대 고딕 르네상스부터 현재까지를 하나의 큰, 끊임없는 시대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있지 않을까. 움베르토 에코가 '포스트모던인가, 아니면 새로운 중세인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현대를 헬레니즘에 빗댄 것이며, 실제 로마 후기의 분위기는 현대와 매우 유사했다(이 점에서 제롬 카르코피노의 <<고대 로마의 일상 생활>>은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다소 도발적인 관점이다. 르네상스를 현재와 비교하며, 르네상스 다음에 만나게 될 근대처럼, 지금을 지나 만나게 될 더 나은 어떤 새 시대를 준비해야 된다고 역설하는 책이다. 

 

읽을 땐 상당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다 읽은 지금, 다소 일반론적으로 흐른 책의 결론은 불만족스럽다. 의도적으로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어조를 갖추려고 애쓰지만, 책 중간중간에 언급되는 현재의 문제들은 과거의 것과 비교해서 더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말미에 저자들은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더 나은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상당히 실천하기 어렵거나 전 지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실현 가능하다고나 할까. 

 

"내가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안다면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 미켈란젤로 

 

책 속에 인용된 미켈란젤로의 저 말처럼, 더 나은 세계가 실제로 온다면, 그것은 대단해보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인류가 기울인 노력이 상당할 테니 말이다. 

 

"이민자는 무엇보다 사회에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는 존재다. 이민자는 고국의 문화와 언어와 아이디어를 함께 가지고 들어오며 고국에 있는 유용한 네트워크에 이민국을 연결해준다. 게다가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로 이민을 결시하고 단행하는 과정에서 증명한 용기와 능력을 직장에서도 그대로 보여준다. 구글(알파벳), 인텔, 페이팔, 테슬라 창업자는 전부 이민자다. 2005년 기준, 실리콘밸리에 있는 전체 스타트업의 52퍼센트와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창립된 '모든' 기술 및 공학 분야 기업의 25퍼센트는 이민자가 이끌고 있다.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수,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수, 오스카상 수상 감독 수에서 미국 출생자보다 3배 더 많다."

 

이런 사실이 있다고 해서 선진국의 이민정책이 우호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서 우리의 이민정책은 더 보수적으로 변했다. 

 

"영국 사례를 다룬 한 주요 연구 결과를 보면 21세기 들어서 첫 10년 간 이민자는 국가에서 받는 복지혜택보다 세금으로 1,500억 달러 가량을 더 납부했다. 반면 영국 국민은 국가에 1조 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심지어 영국은 브랙시트를 선언했다.

 

어쩌면 우리 시대는 몰락할 지도 모른다. 로마 제국이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자, 서유럽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중세가 시작된다.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의 로마 제국은 그 이후로도 천 년을 버티지만,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문명의 붕괴는 '증가하는 복잡성'과 '문제해결력의 한계'가 만났을 때 시작된다(여기에 대해선 조지프 테인터의 <<문명의 붕괴>>를 읽기를). 어쩌면 우리 시대는 더 나은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중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한 것은 저자들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포용해야 하며, 정직honesty, 담대함audacity, 존엄성dignity를 강조한다. 

 

"높고 불확실한 위험을 마주했을 때, 인류에게는 항상 2가지 대처전략이 있었다. 바로 내구성과 회복탄력성이다. 내구성이란 각 부분을 강화해서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이란 위험을 다각화해서 어느 한 부분이 실패하더라도 전체는 여전히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과연 쉬운 일일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사라지진 않는다. 적어도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세하게 르네상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인쇄술이 끼친 영향이라든가 언어의 문제라든가, 르네상스와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리고 저자들이 강조하는 실천 방안이나 주목하는 가치들은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한다. 다만 저자들이 희망하는 바 더 나은 세계가 그렇게 쉽게 오진 않을 것라 여겨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