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제롬 카르코피노

지하련 2008. 10. 29. 21:04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 10점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 류재화 옮김/우물이있는집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 류재화 옮김, 우물이 있는 집, 2003년(1939년)


현대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는 고대의 삶이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무지하기 뿐만 아니라, 심각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그래서 전등이 사라진 밤 도시의 풍경을 떠올리라고 하든지, 큰 교회나 절, 혹은 궁궐이 고대인들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상상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나는 고대 로마의 규모에 대해서 설명할 때면, 인구 백 만 명의 도시에서 하루에 나오는 쓰레기의 규모나 소비하는 물, 또는 음식의 양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정교하게 이루어진 일련의 체계로 일사 분란하게 가동되어야만 인구 백 만의 도시가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확실히
이 점에서 고대 로마는 종종 나의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와 군대적 문화가 기반이 되어 형성된 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후 서유럽에서 중앙 집권 정치체제가 등장하기까지는 무려 천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1939년에 출판된, 제롬 카르코피노의 이 책은 고대 로마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책들 중의 한 권이다. 우리는 편의상 고대 로마의 몰락을 북방 민족의 남하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북방 민족이라는 표현도 잘못된 표현이다. 이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이민족이거나 이미 로마인들의 풍속에 익숙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국가의 몰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이 국가를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들의 정신적, 문화적 배경과 일상 생활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때 서유럽 대부분과 북 아프리카 일부를 차지했던 세계 제국이 북방 민족이 남하했다고 몰락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왜 로마인들은 이러한 혼란을 막을 힘을 상실했는가, 혹은 막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하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전성기 로마의 일상 생활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서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나 로마인들의 삶에 대해 궁금한 일반 독자에게도 이 책은 매우 즐겁고 유용한 독서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뛰어난 역사가들이 보여주는 통찰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로마 시대의 문헌들과 현재 남아있는 역사적 유물들을 조합하여 제롬 카르코피노는 우리 눈 앞에 생생하게 고대 로마의 하루를 옮겨놓는다. 늘어나는 인구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인술라(공동주택)이 어떤 문제를 가졌으며, 초기에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던 여성들이 어떻게 힘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결혼 제도, 육아,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분석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들은 전성기 로마의 일상을 통해 몰락해가는 제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끄집어 내는데 있다.

아마 현대의 학자라면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을 보면서 현대의 어두운 면을 발견할 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현대와 가장 닮은 시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원후 로마 제국이 아니었을까. 심각할 정도로 교육 시스템이 붕괴되었으며 가족은 해체되고 있었고 강력하던 신분제는 흐물흐물해졌으며 로마인들은 도박,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검투사의 경기나 음란하고 자극적인 연극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모습은 현대의 여러 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책은 두껍고 무거우며, 보는 것만으로도 전문 연구서라는 인상을 주지만, 몇 페이지 읽지 않고도 제롬 카르코피노의 번뜩이는 표현과 통찰력, 그리고 고대 로마의 흥미로운 일상 생활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