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2018년, 책 읽기의 기억

지하련 2019. 4. 8. 22:38

 

 

 

2018년, 스트레스가 심했고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던 한 해였다(그렇지 않았던 해가 있기도 했던가!). 막상 돌이켜보니, 상당히 힘든 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더라. 그렇다 하더라도 한 해 마무리 같은 건 하곤 했는데, 2018년에는 감히 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내년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인위적인 시간, 혹은 날짜 구분에 대해서도 회의감마저도 늘어나는 법. 근대(Modern) 이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내일에 대한 기대로 하루하루를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anti)-모던, 혹은 포스트(post)-모던 이후 그 기대도 살짝 내려앉기 시작했고, 나도 지난 한 해 힘들다는 핑계로 불성실했던 건 아닐까 반성해본다.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은 굵게 표시하였다. 


<인문 교양>    
생각의 한계, 로버트 버튼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 
롱기누스의 숭고미 이론, 롱기누스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리퀴드 러브, 지그문트 바우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라로슈푸코 
언어 공부, 롬브 커토


<리퀴드 러브>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주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일부 과격한 주장도 있었지만, 대체로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는 점에서, 대대한 통찰을 가져다주는 책은 아니었다. 도리어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은 언젠가부터 내 감탄을 자아낸다. 아예 작년 말부터 에드워드 사이드의 초기 저작들부터 사기 시작했다. 뒤늦게 사이드에 빠져드는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 <롱기누스의 숭고미 이론>은 고전이면서도, 하지만 상당히 재미있었다. 읽어볼 만하다. 수사학이나 미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문학>
최초의 모험, 헤르만 헤세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면도,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읽기는 했지만, 신기하게도 기억나질 않는다. 그만큼 하루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책이 되어버린 남자>는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다. 그러나 나머지 책들은 놀라운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특히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의 <카불의 책장수>, 안토니스 사마라키스의 <면도>는 강력하게 추천한다. 


<예술>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회화의 이해, 리오넬로 벤투리 
렘브란트, 게오르그 짐멜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 김승곤선생 회갑기념 논문집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 


앙리 포시용이나 리오넬로 벤투리는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이들이나 들었을 법한 저자들이다. 게오르그 짐멜은 최근에서야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사회학(?), 혹은 문예이론가(?)다. 철학을 전공했으나, 그의 관심사는 형이상학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들 - 문화, 예술, 패션 등 - 이었다. 이 점에서 그의 저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할 전공 분야는 애매하다. 철학에서도 가능하고 사회학에서도 가능하며, 심지어 미학이나 미술사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즉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저자였다. 지금에서라도 소개되고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앙리 포시용은 20세기 초반 프랑스 최고의 미술사학자였으며, 리오넬로 벤투리는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사학자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들의 책을 읽으며 흥분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혹시라도 있다면 같이 차라도 한 잔 했으면!) 이젠 이 책들마저 구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경영>
벌거벗은 CEO, 케빈 켈리 
지적 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어져있다, 론 애드너 
미래의 속도No Ordinary Disruption, 리처드 돕스, 제임스 매니카, 조나단 워첼 
환율의 미래, 홍춘욱 
클라우스 슈밥의 제 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기적을 만든 카를로스 곤의 파워리더십, 이타가키 예켄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은 한 두 권 정도 읽어봐야 하고, 그 중에서 <지적 자본론>은 필수라고 여겨진다(그만큼 중요한 저자이며 비즈니스 실행가이다).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어져 있다>은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나 플랫폼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너무 이론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실제 실행 단계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다. 나머지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다. <명견만리>는 상당히 시사적이긴 했으나, 이젠 다 아는 내용들이 되었다. 시사적인 책들은 그 책이 나왔을 때 읽어야 되는데, 나는 다소 늦게 읽었다. 



책 읽기는 습관이다. 그리고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우리는 책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가를 경험하기 전에 책에 치인다. 교과서나 참고서에. 정해진 진도에 맞춰 읽고 밑줄 긋고 외운다. 책 읽기는 그게 아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행과 행 사이, 문장과 문장, 혹은 문단과 문단 사이를 자신의 비판적 인식으로 채워 넣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저자의 생각을 알고 나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책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을 알기도 전에 책에 지쳐버린다. 그러니 책 읽기를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갑자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보란 듯이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도리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걸 아는 것도 아니다. 그냥 책을 읽는 것일 뿐이다. 다만 꾸준히 읽는다면 조금의 도움을 구할 순 있을 것이다. 딱 그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그 정도 되는 것도 책 밖에 없다. 그나마 책 읽기가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2019년도 벌써 4월이다. 남은 한 해, 최선을 다해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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