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 없는 남자 1
로베르트 무질(지음), 안병률(옮김), 북인더갭
나는 무질(Musil)의 팬인가? 그렇게 보긴 어려울 듯 싶다. 로베르트 무질의 단편집 <<세 여인>>을 읽고 나는 그의 세계에 빠져들었지만,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을 읽고 다소 실망했으며, 역자가 힘들게 번역했을 이 <<특성 없는 남자>>는, 예상했으나 역시였다. 20세기 초 소설의 일부 경향이 사건 중심이 아니라 사유 중심이었듯이,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처럼 이 책도 지극히 사변적인 방향으로 소설이 전개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그 사변적인 특성으로는 20세기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던 소설이었다. 그러한 특성으로 20세기 최고의 소설 반열에 올라갔으며, 영미권에는 제임스 조이스, 프랑스에선 마르셀 프루스트, 그리고 독일어권에서는 이 작가, 로베르트 무질이!
소설의 역사에서 사유가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작품은 없었다. 무질은 소설가인 동시에 위대한 사상가였다. <<특성 없는 남자>>에서 그의 사유는 당대의 인물,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의 사유는 여러 학문을 답사해 나온 그런 답답한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실존적 측면에 집중한 결과였다. 한 마디로 독특한 소설적 사유였던 것이다.
- 밀란 쿤데라 (<나의 20세기 책>, <<차이트>> 1999년 1월 21일자), 336쪽에서 재인용
하지만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으면서도 상당히 힘들었는데, 무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21세기 초반 이제 이런 유형의 소설은 거의 없다. 읽히지도 않는다. 소설다움은 인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인물들 간의 관계, 그리고 사건이 위치하는 시/공간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소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배경이 있기는 하나, 그것이 필연적이지 않다. 그래서 혹평 하는 것이다.
도리어 밀란 쿤데라의 저 찬사가 낯설게 느껴진다. 저 찬사는 지극적 유럽적인 것이 아닐까. 20세기 초 유럽을 휩쓴 전쟁과 광기 앞에서 인물과 사건은 무력해지고 살아남기 위한 사유만을 향해 매진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그러한 사유를 소설로 담아낸 무질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한글로는 2권의 책으로 1부, 2부 일부까지만 번역되어 있다. 이제 한 권의 책을 읽었으니, 나머지 한 권도 읽을 생각인데 ... 살짝 부담스럽긴 하다. 어려운 단어들이 빈번하게 나온다거나 문장이 엉망이라서가 아니라, 굳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유를 쫓아가야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건 확실히 취향의 문제이므로, 내가 재미없게 읽었다고 해서 무질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로베르트 무질, 그는 국내에 너무 뒤늦게 번역되었으며,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읽히지 않았던 작가였던 탓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충분히 있다.
특성 없는 남자 1 - 로베르트 무질 지음, 안병률 옮김/북인더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