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한 잔의 깔바도스

지하련 2019. 12. 29. 21:54



술 기운이 확 올라왔다. 피곤했다. 지쳐있었다. 어쩌다 보니, 다시 프로젝트의 한복판에 있었다. 자주 술을 마신다. 팀원을 다독이기 위해서 마시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마시고 이런저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마신다. 블로그도 뜸하다 보니, 오는 사람도 뜸해진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다보면, 사과로 만든 술 '깔바도스'가 궁금해진다. 사과향이 확 올라오지만, 끝은 무겁고 까칠하다. 거친 사내의 느낌이다. 둔탁하지 않고 날카롭다. 적당한 바디감이지만, 부드럽지 못해 살짝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연거푸 마셔 한 잔을 빠르게 비운다. 비운 만큼, 내 마음의 때도 알코올 향 따라 사라질려나.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올해의 반성이니 결산이니 하는 건 사치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이렇게 술을 마시기도 한다. 나이가 드니, 진한 술이 좋아진다. 몰트 위스키를 마신다. 아드벡, 탈리스크, ... ... 하지만 아주 가끔, 드문 일상이다. 언어는 빈약해지고 마음은 초라해진다. 그렇게 몸은 늙고 지난 날의 영혼은 죽는다. 그 자리 위로 공허함만 남는다. 


하긴 인생이라는 게 원래 공허했던 것이다. 그러니 한 잔의 술이 주는 위안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술이라면.... 


2008/02/17 - [지하련의 우주/Jazz Life] - 남겨진 술 한 잔의 쓸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