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민음사), 45쪽 중에서
‘그도 오마르 카이얌을 읽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술을 좋아한다면, 오마르 카이얌은 반드시 읽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술에 취해 디오니소스를 부르기도 했다. 21세기를 향해가던 어느 겨울날, 인사동에서 ‘주신제’(酒神祭)를 열기도 했다. 남는 건 청춘의 방황, 혼미해져 가는 영혼, 다음 날의 몽롱한 육체뿐이긴 했지만.
최근 들어 새벽에서야 비로소 술에 취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결국 다음 날 취기에 매우 고통스러워하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자 술의 맛이나 향에 자연스럽게 둔감해지게 되고 술을 마셔도 별 기분 좋아지지도 않게 되었다. 흥겹게 술을 마시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베 코보의 저 단어, ‘酒聖 오마르 카이얌’을 보면서 크게 웃었던 것이 기억난다. 슬프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소설이었지만,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The Rubaiyat)’가 다소 위안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벗이여, 푸짐한 술상을 차려 놓고
새 장가 들던 나를 기억하는가
불모의 이성(理性)일랑 침실에서 몰아내고
포도 넝쿨 따님을 아내로 맞이했지
56.
생사의 갈림이야 수학으로 풀어보고
인간의 영고성쇠(榮枯盛衰) 논리로써 따지거니
헤아려 보고자 한 모든 것 중에서도
깊은 이치 터득한 건 술의 묘미뿐이로다
91.
죽어가는 이 내 몸에 포도주를 먹여주오
목숨 다한 이 내 몸을 포도주로 씻겨주오
싱싱한 포도잎 감싼 이 몸을
사람들이 왕래하는 정원에 묻어주오
-피츠제럴드 영역,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 The Rubaiyat of Omar Khayyam>>(민음사) 중에서
오직 포도주만이 인생의 참된 해결사로 등장하는 이 시집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컬트(숭배) 시집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11세기의 페르시아나 19세기의 영국이나 현대의 동아시아나, 술에 빠진 사람들은 별반 다르지 않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듯.
술은 예술가들에게 빠질 수 없는 사랑의 대상임에 분명해 보인다.
테이블 옆에 놓인 포도주 병을 보라. 액상 프로방스의 외골수 화가 폴 세잔에게도 카드 놀이 중 술 한 잔의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접근한 화가도 있었다. 필립 메르시에의 이 작품은 와인 감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여기에 대해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콜레트는 이렇게 표현한다.
- <<와인>>(창해ABC북), 86쪽에서 재인용함
반짝이는 저 젊은이의 눈동자를 보라. 잔 속에서 달아오르는 포도주의 율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와인과 함께 굴 요리는 어떨까? 이름하여 ‘사랑의 굴 요리’.
- 자코모 카사노바, <<사랑의 유희>> 중에서(로타 뮐러의 <<카사노바의 베네치아>>(열린책들), 113쪽에서 인용함)
하지만 포도주가 있고 굴 요리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슬프다, 장미꽃 시들면 이 봄도 사라지고
젊음의 향내 짙은 책장도 덮어야지!
나뭇가지 속에서 고이 울던 나이팅게일
어디서 날아와서 어디로 갔나
-피츠제럴드 영역,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 The Rubaiyat of Omar Khayyam>>(민음사) 중에서
연인들이 모여 앉아 사랑을 속삭이며 술을 마시던 카페 테라스는 텅 비어 가는데. 반 고흐의 쓸쓸함은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모든 이들이 다 떠나가고 유쾌하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드디어 그 바닥을 드러낼 때, 비로소 가슴을 울리며 우리 앞으로 다가온다.
알아가고 있다고 여겨지던 술의 묘미도, 진귀한 향을 풍기며 매혹시키던 한 잔의 와인도, 달콤하던 사랑의 굴 요리도, 늙어가는 인생의 쓸쓸함을 지워낼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