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종교, 신천지, 카불, 아프가니스탄

지하련 2020. 3. 10. 13:10

 

1972년 카불, 아프가니스탄

 

 

너무 유명한 사진이라서 굳이 설명을 덧붙여야 할까. 1972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시내를 걷는 젊은 여성들의 사진이다. 그리고 40여년 후 이들의 자녀들, 혹은 그 손녀들은 아래와 같이 입고 길을 걷는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왜 저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이유를 묻는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오랜 내전, 외세 -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 의 갈등과 간섭, 그리고 지원으로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한 나라를 세운다. 알카에다도 탈레반이 지배하던 아프가니스탄에 자리를 잡는다. 불과 수십 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의 공격으로 탈레반이 위축되고 변방으로 쫓겨나갔지만, 아프가니스탄은 과거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걸려야 할 지 알 수 없다. 이미 과거는 사라졌다. 화려했던 영광이 아니라 이젠 불경스러웠던 어제일 뿐이다. 

 

 

 

 

1978년 카불, 아프가니스탄 

 

 

우리가 인생의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찾게 되는 것들 중 하나가 종교다.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그리고 목사님든, 신부님든, 스님이든, 의지하고 조언을 구하며 믿고 싶어진다. 정신적인 곤경에 처했을 때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물 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종교에 의지하여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도 한다. 이는 조직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한무제가 유교를 통치이념을 삼는 것도 이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종교에 의지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문제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회의주의자들은 종교를 부정하며 신은 없으며 신앙이야 말로 거짓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정신의 역사에서 회의론은 종교와 신앙심과 비교한다면 그 역사는 아직 시작된 것도 아니다. 그만큼 짧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회의론이 종교를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며 극복할 수도 없다. 어쩌면 종교란 우리 인류가 자발적으로 불렀으며, 그 위에 우리의 문명 일부가, 삶 일부가, 정신의 일부가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그저 회의론의 입장에서, 종교가 가진 기능을 최대한 알리며 종교에 맹신하지 말라고 호소할 뿐. 하긴 이 정도만으로도 회의론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울까. 신학을 떠나 근대철학의 방향을 설정하였다고 여겨지는 데카르트의 고민과 주장은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원자론으로 흘러간다. '생각하는 나'는 결국은 '모나드'인 셈이다. 생각하는 나로 시작하는 세계에서 나는 늘 혼자다. 원근법적 세계에서 소실점은 언제나 하나이듯이. 그렇다면 늘 혼자인 나와 늘 신앙 안에 있는 너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1940년대 아프가니스탄

 

 

1960년대 카불의 어느 레코드샵

 

 

 

신천지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아닌 종교를 가진 사람들 대상으로 끌어들인다. 왜냐면 종교도 예전의 그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철학 이후의 종교적 논리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 회의하는 나와 싸우며 그런 나를 받아들이며 온전한 신앙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신천치는 생각하는 나, 회의하는 나 따윈 중요하지 않다. 생각과 회의는 잠시 접어두고 그저 믿으면 된다. 애초부터 그들은 목적이 다르다. 그들은 정상적인 의미의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에 기대어, 종교의 형태를 갖춘 이상한 집단이다. IS(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와 비슷하다. 

 

현재의 카톨릭이 과거의 악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한 몫 했다. 위기를 느낀 구교는 변하기 시작했고 그 태도는 현재에까지 이어져, 최근에는 왜 수녀는 사제(신부)가 될 수 없는가로 논쟁을 하고 있다. 근세 초기의 철학자들이 사제이며 수도사였던 것은 신앙 안에서 그 신앙을 이성적으로 믿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종교의 개방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며,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어차피 우리는 신을 알지 못한다. 그저 경험할 뿐이다. 그러나 경험이라는 건 애초부터 논리적으로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론적 회의론에서 신은 존재할 수 없다. 한 쪽에서는 신의 존재나 종교 자체에 대해서 논쟁을 하며, 종교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신천지에 그 많은 사람들이 빠져 들었을까 추측해 보자면, 그건 이성적인 관점에서의 신의 존재나 신앙심의 문제 때문이 아닐 것이다. 결국 나의 문제였던 셈이다. 흔들리는 자신을 바로 세워줄 수 있는 어떤 기둥을 우리는 끝없이 갈구한다. 그것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신앙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어떤 모임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종교의 근본주의는 시작된다. 이단 종교가 생긴다. 소리없이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생각하는 나, 회의하는 나 따윈 버려라. 그저 믿으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When he arrived, it had all been played out.

The turmoil had abated. The crowd was slowly breaking up.

 

To one side stood a few religious dignitaries with somber beards,

their turbans and black robes enveloping them in an aura even more funereal than usual 

 

The Voyager reached the center of the square.

Half buried beneath a mound of stones lay a young woman and a young man, covered in mud and blood. 

 

- Sayd Bahodine Majrouh, 'Lovers' Laughter' 

 

 

근본주의적 종교가 우리 영혼과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마치 카불처럼 외부 세계는 암흑으로 변하고 내부 세계는 광휘로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영혼이 굳건하지 못하고 허약한 탓이다. 세상 전체를 고민하지 않고 나만을 고민한다. 데카르트의 자아는 신을 버리고 나를 찾아 나서지만, 나를 찾지 못한 채 다시 신의 옆으로 와서, 그 전보다 더 강렬하고 폐쇄적이며 공격적인 신앙심으로 무장한다. 윌리엄 오캄이 유명론을 주장하면서 근본주의적 신앙을 고수했던 것도 이 탓이리라. 

 

막상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며 행동하면서 살아봤더니 답이 없더라, 그런데 누군가가 손을 내며 답을 제시하면 그냥 끌어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다. 

 

마지로흐는 '연인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가 돌에 맞아 죽은 모습을 담담히 보여준다. 이제 사랑도 금기가 되었다. 종교적 자유를 이야기하다가도 이슬람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이슬람 신앙이 아니라 이슬람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 때문이며, 이를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현재의 곤궁함만 남았다.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그들은 근본주의적 종교의 세계로 들어갔다. 한 번 믿기 시작하면 그것을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이제 대를 이어갈 것이다. 후대로 계승될 것이고 전통을 포장되며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세계는 종교에서 강요하는 원칙과 기준으로만 움직이며, 그 외 모든 것들은 무시되고 폐기된다. 

A woman's love is taboo, banned by the prohibition of the honor code of Pashtun life and by religious sentiment. Young people do not have the right to see each other, love each other, or choose each other. Love is a grave mistake, punishable by death. The unruly are killed, in cold blood. The massacre of lovers, or of one of them (always and without exception the woman), initiates the never-ending process of vendetta between clans. 

- Sayd Bahodine Majrouh, <<Song of Love and War>> 

 

 

이제 카불에서 여자의 사랑은 금기다. 실은 이슬람 세계에서 여자의 사랑은 내세울 것이 못된다. 돌로 맞아 죽는 이야기는 간간히 외신 기사로 나온다. 파스키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면 안 된다. 종교가 삶을 지배할 때 고귀한 남녀의 사랑은 버려진다. 


*    * 

아마존에서 구입한 Songs of Love and War를 읽기 시작했다. 

Sayd Bahodine Majrouh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노래를 모아 불어로 옮겼다. 그는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88년 파키스탄에서 암살당했다. 아래 책은 그가 불어로 옮긴 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 * 21년 8월 24일에 덧붙임.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던 아프간 정부는 무너지고(너무나도 허약하게), 다시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다. 탈레반이라는 단어는 학생이라는 뜻이다. 외세의 침입에 맞서 학생으로서 이슬람을 지키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자는 뜻일 게다. 여기서 외세라 함은 소련과 미국이 될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고 해서 오늘을 잘 살아가는 건 아니다. 서유럽 중세를 한 때 암흑시대라고 불렀듯이 그 어떤 종교이든 근본주의적 종교관이 득세할 땐 그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일부 한국의 기독교 교회도 암흑시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온통 모든 것이 어두컴컴할 때, 하나의 빛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그것을 향해 가기 위해 일부러 주위의 빛들을 차단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된, 과장된, 거짓된 연극일 뿐이다. 정치적 프로퍼간다이며, 누군가를 어둠의 절망 속으로 밀어넣는 행위임을 잊어선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땅에 평화가 내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