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돈 컴 노킹

지하련 2006. 3. 23. 16:34


샘 셰퍼드, 그가 그렇게 늙었는지 몰랐다. 영화 속에서, 내 기억 속에서 그는 계속 중년인 채로 머물러 있었다. 무뚝뚝한 인상이지만, 그가 내미는 손을 잡으면 끝없이 따뜻한 애정이 묻어나올 것만 같은.

그가 나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막스 프리쉬의 원작 <호모 파베르>를 영화화한 <사랑과 슬픔의 여로 Voyage>(감독: 폴커 쉘렌도르프, 주연: 샘 셰퍼드, 줄리 델피)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샘 셰퍼드와 줄리 델피의 팬이 되어 버렸으며 막스 프리쉬의 원작을 찾아 헌책방을 찾아헤매었다. 아주 오래 전 외국문학전집에 들어있었던 호모 파베르. 그리고 영화 OST도 LP로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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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는 <파리, 텍사스>를 보고 반해버렸다. 이 영화를 보곤 나스타샤 킨스키에 빠졌다. 참 슬픈 로드 무비. 그리고 라이 쿠더의 음악이 매력적인 영화. 이 영화의 OST도 LP로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돈 컴 노킹>는 최고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봄 날, 3년, 혹은 4년 만에 극장에서 보는 영화치고는.

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빔 벤더스와 샘 셰퍼드는 20년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론도 없었다. 젊은 날의 방황를 접고 가족의 사랑을 찾아나선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뛰어난 스토리 텔링과 화면으로 잡아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겠지만.

차라리 왜 우리는 젊은 날 방황을 거듭하는가, 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회상하고 따뜻한 사랑을 찾아나서는가에 대해 묻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삶은 영화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영화처럼 살 수도 없고 영화처럼 살아지지도 않는다. 도리어 우리들의 진짜 삶은 영화보다 거칠고 힘들거나, 더 무료하다.

내가 영화를 결정적으로 멀리하게 된 건 그런 포장의 기술 때문이 아닐까. 일 년에 보는 영화는 10편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서가 구석에 꽂혀있는 <필름 아트>에 손을 대지 않는지도 5년은 족히 된 것같다.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그 해 산 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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