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근대의 서사시, 프랑코 모레티

지하련 2020. 9. 29. 23:16



근대의 서사시 Modern Epic

프랑코 모레티(지음), 조형준(옮김), 새물결 




프랑코 모레티의 이 책, 읽기 쉽지 않다. 그의 말대로 너무 유명하지만, 거의 읽히지 않는(읽기 어려운) 서사 작품들을 두고, '서사시'라는 테마를 통해, 근대가 어떻게 이들 작품 - 세계적 텍스트 속에서 드러나는지, 말 그대로 어떤 특징들을 가지며, 어떤 방식으로 근대사회, 혹은 근대성을 담아내고 있는가를 상당히 방대한 인용과 참고 문헌들, 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언급하는 탓에 까다로운 독서를 요구한다.  


<<파우스트>>, <<모비 딕>>, <<니벨룽겐의 반지>>, <<율리시즈>>, <<칸토스>>, <<황무지>>, <<특성없는 남자>>, <<백 년의 고독>>. 이것들은 그저 오래된 책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역사적 기념물이다. 근대 서구가 자신의 비밀을 찾아 오랫동안 자세히 파고들어온 성스러운 텍스트이다. (18쪽) 


하지만 모레티의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너무 많은 인용들과 작품들의 소개로 인해 책의 구성은 매우 병렬적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들은 하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으나, 독자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를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실은 이 책에 인용되는 작품들을 다 읽은 독자를 만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은 모레티가 인용하고 있는 저자들과 작품들, 그리고 비평적 글들에 현혹되어 중심 줄거리를 놓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할까. 그는 특히 <<파우스트>>, <<니벨룽겐의 반지>>, <<율리시즈>>를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 그리고 철학, 사회학, 문학 비평들을 인용하면서 이 작품들이 어떤 맥락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지만, 도리어 일종의 학문적 모자이크, 혹은 비평적 몽타주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재미 있을 것이다. <<근대의 서사시>> 각 챕터들은 다양한 목소리와 주장들을 서로 교차시키면서 모레티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읽는 동안 모레티의 학문적 재능에 대해서 감탄하면서 흥미로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시작은 영웅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사시 자체가 바로 영웅 이야기이기 때문에. 


행동은 개인을, 그의 목표들을 물론 기질까지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사람의 본심이나 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것은 오직 그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만 드러난다. 

- 헤겔, <<미학>> 중에서 (36쪽에서 재인용) 


영웅주의는 드러냄이다. 본질과 현상을 결합시키는 행동의 경이로운 탁월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웅주의는 행동의 빛나는 탁월함이다. 오직 행동만이 영웅적이며, 행동하지 않는 영웅은 없는 것과 같다. … 

- 모리스 블랑쇼 (36쪽에서 재인용) 


그리고 ‘서사시는 일직선적인 것’(85쪽)이다. 


… 목적론: 모든 사건은 원인이기도 한 결말에 의해 인도되고 지도된다. (…) 승리로서의 역사라는 내러티브적 형상은 잘 만들어진 문학 플롯과 친화성을 가진다. 전체를 이와 연결된 시작과 중간 그리고 결말과 함께 제시하는 플롯 말이다. 

- 데이비드 퀸트 (85쪽에서 재인용) 


이러한 서사시적 특성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해서 모레티는 곧장 이들 작품들이 가지는 '다성성'으로 나아간다. 


바흐친에게는 결례이지만 간단히 말해 근대 서구의 다성적인 형식은 소설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히 말해 서사시이다. 이 서사시는 특히 세계 체제의 이질적인 공간을 전문으로 다루며 따라서 이 공간의 다양한 많은 목소리들을 위해 무대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배워야 한다. 이미 <<파우스트>>에서 실제로 다성성은 ‘거대한’ 세계의 스타일로, 마르가레타가 살고 있는 ‘작은’ 세계에 이 세계의 타자성을 알린다. (100쪽) 


하지만 ‘다성성은 불쾌한 음조(cacophony)’(103쪽)이다. ‘팽창하는 모더니티의 우주에서는 아직 많은 것이 불명료하기 때문이다. 소음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으면서 이것을 재현하고, 그리고 실로 듣는 법을 배우는 것도.’(104쪽) 


대도시적 유형의 개인의 심리적 토대는 외적 자극과 내적 자극의 신속하고 부단한 변화로부터 오는 강력한 신경 자극에서 찾을 수 있다. (…) 단 한순간도 절대 연속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쇄도해 들어오는 인상들은 전혀 예기치 못한 속성을 갖고 있다. 

- 짐멜 (196쪽) 


서사시에서 시작된 논의는 다성성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다시 의식의 흐름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독백주의로 이어진다. 각각의 문학적 기법이나 표현에 대한 분석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용과 해석이 이어진다. 고전 서사시와 달리 근대의 서사시는 서사시적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근대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다성성을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성성은 갑자기 등장한 근대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의식의 흐름을 만든다. 


의심의 흐름은 이처럼 극단적으로 긴장된 상황에 맞서기 위한 한 방법(아마 가장 성공적인)이었다. 이것은 위기의 징후, 즉 폭격당하고, 분열되고, 어려움에 처한 ‘에고(ego)’의 징후로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서서히 근대 도시의 거리들을 회오리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수많은 자극들에 대항해서 그것들을 포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197쪽) 

 

다성성에서 독백주의로. 19세기에, 즉 괴테에서 플로베르로 이행할 때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다시 20세기에, 조이스에서 마르케스로 이동하면서 똑 같은 일이 일어난다. 기교들의 역사는 파동 곡선, 즉 짧은 시기의 창조적 폭발과 오랫동안의 반대 흐름으로 이루어진 파동 곡선을 따른다. (377쪽)


이렇게 서평을 적고 있기는 하나, 이 책을 이렇게 요약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위다. 절판된 책이라,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읽을 수 밖에 없긴 하지만, 근현대 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그리고 책을 펼치면 여러 흑백 사진들이 나오는데, 이 사진들 밑에 실은 짧은 글을 두 개 정도 옮긴다. 프랑코 모레티가 쓴 것으로 여겨지나(아닐 수도 있다), 책 본문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고 원서를 보지 못한 탓에 확신할 수 없지만, 적절하게 책의 내용 일부를 요약하고 있어 옮긴다. 


근대 서구의 위대한 두 가지 서술 양식 간의 차이. 먼저 소설. 이것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한다. 다른 하나는 서사시. 이것은 과거의 언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생산한다. 전자의 경우 모든 사람이 동일한 언어로 말하고 동일한 시기를 살고 있는 세계의 밀집성이 나타난다. 후자의 경우 먼 옛날의 화석들이 미래 세계의 피조물들과 공존하는 우주의 특수한 역사성이 나타난다. 자체에 전체 운명을 담고 있는 짤막한 기간으로서의 현재. 따라서 서사시에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것은 지리에 대한 은유로서의 역사가 되며, 이것은 다시 ‘결백의 수사학’으로 이어진다. 


20세기 초에 소설은 동일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몇 가지 다른 길을 걸어갔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현현과 내적 독백의 길로, 무질은 질서를 잃어버린 현실을 영혼의 엄밀한 형식으로 포착하려는 에세이즘으로, 그리고 카프카는 단일한 언어를 찾아 나섰다. 조이스는 ‘무심함의 사회학’을 통해 순간의 진실을 포착하는 의식의 흐름을 넘어선다. 그리고 거리의 온갖 소음들이 다성적 합창을 이루는 말들의 무한한 우주가 자유롭게 유동하도록 만든다. 


Franco Moretti(1950~ )



근대의 서사시 - 10점
프랑코 모레티 지음, 조형준 옮김/새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