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성당에서의 일요일, 그리고

지하련 2020. 10. 4. 17:36




바람이 차다. 가을이다. 이번 여름은 계속 비만 내리다가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힘을 자랑하고 있는 코로나도 쓸쓸한 가을이 오는 걸 막지 못했다. 실은 이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더 쓸쓸한 가을을 보내게 될 것이 뻔하다. 이번 추석 땐 저 먼 남쪽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내려가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내려가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서의 연휴가 그렇게 알찬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은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을 갔고 한 번은 여의도까지 자전거를 탄 것이 전부일 뿐, 나머지는 집 안에서 요리를 하며 책을 읽으며 지냈다(몇 권의 책을 읽긴 했으니, 괜찮은 건가)


그리고 오늘 일요일,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렸다. 코로나로 인해 미사에 오는 신자들도 적고 미사 시간도 무척 짧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며 마스크를 낀 채 작은 소리로 기도를 올릴 뿐이다. 내일이 출근이다(상당히 스트레를 받게 하는)


지난 봄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결국은 사람 문제인데, 사람이 변하지 않는 이상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에 속한다(그리고 이미 사람들이 일을 난처하게 만들어 놓은 상태이다). 어렵다라고 했으나,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성과 시간, 그리고 노련한 경험과 전략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정성을 드려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조직 전체를 다시 바꾸여야 한다. 


하지만 '내가 왜 정성을 드려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 또는 내가 조직을 바꿀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요즘 내 스트레스는 여기에 있다. 리더로 올려놓았으나,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때. 그리고 자신이 제대로 된 역량을 가지지 못했음을 알지 못한 채, 이를 개선하거나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일을 미루어 버릴 때. 결국 나는 폭발했고 회사를 옮길 고민을 시작했다(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는 일이라). 


경영학 책들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사람이 중요하다. 비즈니스 전략이나 목적에 맞추어 조직을 꾸려야 한다. 매출 규모나 인원 수에 따라 조직 구성 전략이 달라져야 된다 등등(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기본적이고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들을 자주 잊어버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사에서의 내 역할은 여기에 있지 않다. 회사 전반적인 것들을 아우르는 것들까지 고민하면서 내가 맡은 부서나 역할에 충실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원래 내 일이 아니었던 것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것도 내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이니, 내가 해결해야 되는 상황인가(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긴 하다).


다행히 이번 주 금요일은 휴일임을 성당 주보를 통해 알았다. 현재 진행 중은 컨설팅 프로젝트의 진척이 좋지 않아, 일요일 오후 출근해서 일을 하거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멤버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내일 걱정을 하기 시작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 참여한 멤버들의 성실성이 나를 위로하고 있다. 내가 나름 열심히 도와준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예전엔 사사로운 신변 잡기적인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잘 올렸는데, 요즘은 거의 올리지 않는다. 올릴 만한 내용인가 먼저 살피게 되고 나이 든 이의 주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다지 공감도 받지 못할 것같은 걱정이 앞서는 탓에 쓰지 않는다. 그다지 우아하지도 못하고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감성을 자극할 만한 소재나 주제도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부분 일에 관련된 내용이거나 쓸모없는 일상의 넋두리다. 다 부질없는.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로 한강이라는 점은 참 좋다.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 한강 공원에 와서 맥주 캔 하나를 마셨다. 가을 모기가 많아 오래 앉아 있진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