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가을 하늘, 때 늦은 단상.

지하련 2020. 10. 12. 03:11




외출도 예전만 못하다. 풍경은 마음을 비켜나가고 바람은 내 곁으로 오지 않는다. 언어는 애초 예정된 방향과 다르게 나아가고 결국 지면에 닿지 못한 채 흩어진다. 과거와 현재, 오늘과 미래는 서로 단절되어 부서진 채 오해만 쌓아가고, 결국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을려나. 에밀 시오랑이 태어남 그 자체를 저주했듯이. (그게 내 뜻대로 되었다면 ... ) 


자기 전 몇 권의 책을 뒤적거리며(그 중에는 교황 요한 23세의 일기 <<Journal of A Soul>>도 있었구나), 프린트해 놓은 영어 아티클들을 정리하였다. 이것도 읽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고. 하지만 나는 두렵다. 내가 상처 입는 것이, 내가 못할 것이, 결국 실패로 끝나지나 않을까 하고. 그래서 정해지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며, 이미 정해진 오늘이 가는 것을 자지 않음으로 막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랜 만에 일기를 썼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때를 놓친다. 나 또한 그랬던 것이다. 사랑도, 일도, 공부도. 


집 안으로 모기가 한 마리 들어온 것을 보았는데, 잡지 못했다.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실은 나도 숨어버리고 싶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나. 거참, 이것도 때를 놓친 것이다. 



때를 놓쳤으니, 어쩔 수 없는 걸까. 아니면 그마저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늦었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때를 놓쳤다고 해서 내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예정된 방향으로 그저 갈 수 밖에 없다. 속도를 좀 더 올려서 달려야 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