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에릭 사티 Erik Satie

지하련 2021. 1. 30. 21:10




에릭 사티(Erik Satie)의 '짐노페디Gymnopédies'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에릭 사티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가드 멜리낭(Agathe Melinand, 툴루즈국립극장 공동극장장)은 2016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에릭 사티(1866~1925)에 대해 묘사하려니 복잡한 심정이 된다. 그의 성품에 대해 말하려니 조심스럽다. 그는 반항적이었고 농담을 즐겼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등을 돌렸고, 거처인 아르쾨유의 오두막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를 되살리는 것은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다. 벨벳 정장차림의 젊은 혁명가와, 공증인 차림을 한 사티 중 누구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언제나 걸어서 교외 생제르맹의 노아유 마을을 가끔 방문하던 사티? 아니면 아르쾨유에서 “구덩이에서 잠을 자고 주정을 부리던” 사티?

<르 샤 누아(Le chat noir)>(‘검은 고양이'라는 뜻으로, 예술가들이 모이던 몽마르트의 카바레 이름-편집자 주)의 피아니스트? 아르쾨유-카샹에서 비종교선도회를 이끌던 남자? 사티는 많은 데생과 글을 남겼고, 심지어 무려 840번 반복하는 곡 <짜증(les Vexations)>도 남겼다. 그는 말했다.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아주 조용한 곳에 꼼짝 말고 앉아서, 미리 단단히 연습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맞다. 1963년 존 케이지와 9명의 피아니스트들이 최초로 15시간이나 연주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우스꽝스러운 강연, 음악에 대한 비평, 아포리즘, 분노에 찬 외침, 그의 시들과, 그의 주장에 대해 말해야 할까? 그가 가담했던, 아르쾨유 공산당 제1지부에 대해 이야기할까? 사티 음악의 다채로운 측면을 간과하게 만드는, 그 유명한 ‘그노시엔’과 ‘짐노페디’ 이야기로 만족해야 할까? 장 콕토, 모리스 라벨, 르네 클레르 아니면 피카소의 친구였던 사티, 화가이자 모델인 쉬잔 발라동과 짧은 연인이었던 사티, 그리고 클로드 드뷔시의 절친한 친구였던 사티에 대해 이야기할까? 비참했다 할 것인가, 신비스럽다 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그 자신이 유일한 성직자이자 신도였던 <지휘자 예수의 메트로폴리탄 예술 교회>의 설립자를 찬양할 것인가, 아니면 수도도 전기도 없이, 28년이나 모기에 뜯기던, 아르쾨유에 있는 그의 방으로 초대할까?

- 아가드 메리낭, <침묵의 작곡가, 에릭 사티 탄생 150주년>중에서(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9월호)



'짐노페디'나 '그노시엔느' 정도 듣고 난 다음 에릭 사티의 다른 음악을 들으면 놀랄 것이다. 그는 인상주의 음악에서 현대 음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수놓았던 현대 작곡가였으며, 그의 명성 대부분은 사후에 이루어진 것이니까. 어쩌면 그의 말대로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래는 내가 어디에서 옮겨 적은 지도 기억나지 않는, 에릭 사티의 <<건망 회고록>>에 실린 글의 일부다. 



나는 아침 7시 18분에 일어나서 10시 23분부터 11시 47분까지 영감을 받고, 12시 11분까지 점심을 먹은 뒤에 12시 14분에 책상을 떠난다. 건강을 위해 오후 1시 19분부터 2시 53분까지 내 영토를 말 타고 돌아본다. 또 다른 영감의 한판 승부가 오후 3시 12분부터 4시 7분까지에 있고, 5시부터 6시 47분까지 다양한 작업들(펜싱, 회고, 부동 자세, 방문, 명상, 수영 등). 

저녁식사는 오후 7시 16분에 시작해 20분만 에 끝낸다. 밤 8시 9분부터 9시 59분까지 독서(큰 소리로 책읽기). 나는 규칙으로 밤 10시 37분에 취침하러 간다. 일주일에 한 번씩(화요일에) 새벽 3시 14분에 깬다.

내 영양분은 하얀 색 음식에 한한다. 달걀, 설탕, 여러 조각의 뼈, 죽은 동물이 지방, 송아지 고기, 소금, 코코넛, 흰 물로 요리된 닭, 곰팡내 나는 과일, 쌀, 순무, 장뇌가 들어간 소시지, 가루 반죽과자, 치즈(흰 색으로 변색된), 면, 샐러드, 생선(비늘 없는).

나는 포도주를 끓여 퓌크샤(수령초) 즙과 섞어서 차게 해 마신다. 나는 후식을 들지만 나 자신의 목이 졸리까 두려워 먹을 때에는 결코 얘기하지 않는다. 

나는 주의 깊게 숨쉬며(한 번에 조금씩) 매우 드물게 춤춘다. 걸을 때면 나는 내 늑골을 잡고 끊임없이 내 뒤를 돌아본다.

나의 표현은 매우 심각하다. 내가 웃을 때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며 나는 항상 매우 공손하게 내가 웃은 것에 대해 사과한다. 

나는 한 쪽 눈만 감은 채 깊은 잠에 빠진다. 내 침대는 나의 머리가 들어갈 만한 구멍을 가진 둥근 것이다. 매 시간마다 시종이 나의 체온을 재고, 또다른 체온계를 주고 간다. 

- 에릭 사티, <<건망 회고록>> 중에서 



하지만 위 회고록 내용은 그의 상상에 가까워 보인다. 전혀 사교적이지 않은 이 은둔주의자의 삶은 기괴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반골 기질이 넘쳤으며 많은 이들과의 불화를 겪었고 술을 많이 마셔 간경변으로 59세였던 1925년 7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현대 미니멀리즘을 선취하고 있다고 할까. 어쩌면 아직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작곡가일 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미사(Messe des Pauvres)



Je te veux 그대를 원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릭 사티의 <<짜증les Vexations>>을 들어보자. 이 음악의 사용법은 아래와 같다. 

In order to listen to the piece 840 times, listen to this 48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