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돈의 정석, 찰스 월런

지하련 2022. 1. 16. 18:23

 

돈의 정석 Naked Money

찰스 월런(지음), 김희정(옮김), 부키, 2020년

 

이 책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자면, 화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경제 현상에 대한 교양 서적이다. 특히 2008년 미국 금융 위기(한국은 큰 영향이 없었으나, 미국은 1929년부터 1939년의 경제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이었으며, 그 당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 의장인 벤 버냉키(Ben S.Bernanke)가 경제대공황을 전공한 경제학자여서 다행이었다는 언급이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할 정도이니, 2008년 당시 미국의 경제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통해 중앙은행과 통화정책의 중요성,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여러 나라의 경제 상황을 이야기하며 돈을 기본으로 한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돈(Money)라는 단어가 제목에서 언급되듯이, 돈의 흐름으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 경제 문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경제대공황이라든가 인플레이션이라든가. 저자는 돈이란, 유통되는 지폐와 동전을 의미하는 통화(Currency)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통화를 비롯해 구매를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이나 신속하게 통화로 전환할 수 있는 자산이 포함된다고 말한다. 

 

주로 미국의 경제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통화 정책이나 환율, 여러 경제 위기 상황 등에 대해 일본, 중국, EU 등의 사례도 이야기하기 때문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경제 상황이나 흐름을 이해하기 좋다. 특히 화폐 자체에 대한 이해, 금융위기에 대한 이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그리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와 같은 중앙 은행의 역할, 통화정책의 중요성에 대해선 좀 더 깊이 있는 언급들이 제시된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현재 세계 경제 시스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이나,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을 에르도안 대통령이 거부함으로 엉망이 되고 있는 터키 경제 상황이나, 회복불능상태로 흘러가고 있는 일본 경제, 그리고 경제 통합체인 EU의 미래나 환율조작국이라는 오명을 심심치 않게 듣는 중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따라서 이런 것들에 대해 궁금하고 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기대 했던 것 이상으로 읽는 재미가 있으며, 20세기 이후 경제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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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책을 읽으며 메모해둔 것을 옮긴다.

 

모든 화폐는 세 가지 목적을 수행해야 한다. 첫째, ‘계산단위’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둘째, 화폐는 ‘가치저장’ 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화폐는 ‘교환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42쪽 ~ 45쪽)

 

우리는 이 지점에서 패러독스에 봉착한다.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중국, 그리고 모든 선진국 혹은 선진 경제 지역에서 사용되는 화폐는 무한대로 발행될 수 있다. ‘명목화폐fiat currency’라 불리는 이 화폐들이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그 나라 정부가 법정화폐라고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48쪽)

 

그래서 일부 국가는 돈을 무한정으로 찍어낸다. 그리고 초인플레이션이 생긴다. 다시 말해 화폐의 가치가 무한정 떨어져, 엄청난 돈을 주고 물건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독일의 경우, 세계 제 1차 대전 이후 바로 이러한 상황이 생겨, 지금도 인플레이션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때의 초인플레이션으로 나치즘과 히틀러가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히틀러를 인플레이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의 문제다”
“인플레이션은 생산량보다 통화량이 눈에 띄게 발리 증가할 때 생긴다. 생산 단위당 통화량 증가율이 높을수록 인플레이션율도 더 커진다. 경제학에서 이보다 더 잘 확립된 명제는 없을 것이다.”
- 밀턴 프리드먼 (66쪽)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선진국들 대부분은 돈을 풀었다. 그러니 지금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교과서적으로 보자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증가할 때는 금리를 올려 화폐를 다시 모은다. 금리 인상은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최근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경제 기사가 많은 이유는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고자 통화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화량의 증가가 어쩌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적정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을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의 경우에는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아예 이 책에선 일본의 장기간 경제 침체 상황은 연구대상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하다. 나는 일본 정치의 문제가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규제당국은 지급 불능 상태인 기업들에 계속 대출을 해주도록 은행들에 압력을 넣었다.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이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기업들의 피할 수 없는 도산을 연기할 뿐이었다.(에버그리닝은 만기연장이나 추가대출을 통해 부실 대출을 계속 끌고  가는 행태는 말한다) (374쪽)

 

최근 일본발 경제 기사들을 통해 일본 내에서도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좀비기업의 문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 도시바의 문제는 한 기업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본 정부와 정치세력의 문제였으니까. 도시바가 좀비 기업이 된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내년 물가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척도는 바로 내년 물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를 소위 ‘기대 인플레이션expected inflation’이라고 한다. (109쪽)

 

결핵이 만연하면 항생제를 파는 사람들에게 유리해지듯이, 어떤 사람에게는 인플레이션이, 어떤 사람에게는 디플레이션이 유리하다. (111쪽)

 

“은행가들은 이윤을 주머니에 넣을 때는 자본주의를 믿고, 손해를 막아야 할 때는 사회주의를 믿는다는 옛말이 있다. 웃고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나 진실에 가까운 말이다.” - <<이코노미스트>>지 (130쪽)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금융위기를 만든 그 장본인들(금융회사와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공적기관들)을 왜 공적 기금을 들여서 보호하는가에 대한 지적이다. 실제 미국에서도 그랬으니.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들의 세금의 들여서 그렇게 보호하고 나면, 다시 국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약탈적 자본주의의 투사가 되니까. 이는 금융회사 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라 여긴다. 

 

유동성liquidity - 자산을 현금화하는 과정이 얼마나 쉽고 예측가능한지를 나타내는 개념
지급능력solvency - 개인이나 기업의 보유 자산이 부채보다 많으면 지급 능력이 있는 것이고, 반대로 보유 자산보다 부채가 많으면 지급불능(파산)이 되는 것이다. (144쪽)

 

중앙은행의 역할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뉜다. 통화공급을 조절하고, 최종 대출자 역할을 하고, 금융 산업을 규제하는 것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이에 더해 통화정책을 통해 완전 고용을 추구하는 임무도 가지고 있다. (107쪽)

 

중앙은행의 경제 정책 도구들
첫째,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율을 정한다. 이는 예금주들이 상황을 요구한 것에 대비해서 상업은행이 자기 은행의 금고나 연방준비은행에 보관해야 하는 금액의 비율을 말한다. (169쪽)

중앙은행은 또 ‘할인 창구discount window’라는 제도를 통해 직접 시중은행에 자금을 대출해 줄 수 있다. 연방준비은행은 ‘최종 대출자’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중 은행들은 ‘최종적으로’ 연방준비은행에 찾아가기 전에 다른 곳에 먼저 자금을 찾아보도록 장려된다. 연방준비은행이 시중 은행에 직접 대출을 해 줄 때의 할인율discount rate은 은행 간 대출 금리보다 약간 더 높게 설정된다. (171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앙은행은 경제 시스템 전반에 걸쳐 단기금리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172쪽)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만, 특히 EU 사례에서는 중앙 은행의 부재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각국의 통화가 사라지고 유로화로 통합되었으나, 유럽 각국의 경제 상황이나 시스템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각 국가별로 다른 통화 정책을 적용해야 되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브렉시트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의 과도한 이상주의가 유럽의 현재를 위태롭게 한 건 아닐까. 하지만 나 또한 유로화 출범 당시 그 이상주의를 읽고는 상당히 공감대를 표시했으니까. (* 엘렌 호지슨 브라운의 <<달러>>(이른아침, 2009년) 초반부에 유로화 출범이 가진 이상주의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변동환율의 가장 큰 이점은 경제상황에 따라 통화의 가치가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변동환율의 단점은 말 그대로 환율이 변한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환율이 큰 폭으로 많은 경우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225쪽) 



천연자원의 수출로 인해 환율이 높아져서 제조업 수출의 숨통을 조이는 현상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천연가스를 수출했던 네덜란드가 이 현상을 겪은 것을 필두로 원유수출국들이 똑 같은 경험을 되풀이해왔다. (225쪽)

 

환율은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과 같은 경제 구조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환율로 발생하는 위험(환 리스크)를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해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환율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은 동시에 보이는 희한한 경제현상이다. (306쪽)

 

이 무분별한 대출을 부추긴 악당들은 굉장히 많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 본인이 결과를 책임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 중개업자들은 상환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이 소개한 대출 상품의 양과 액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았다. (336쪽)

 

이 책의 대부분 내용은 금융 위기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경제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테니...

 

“누군가 은행에서 1000달러를 빌리면, 그의 운명이 은행 속에 달려 있지만, 100만 달러를 빌리면 은행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게 된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424쪽)

 

미국이 새로운 대출에 대해 중국에 의존하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중국의 경우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갚는 문제에 있어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24쪽)

 

중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의 국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다. 즉 중국은 미국에게 가장 많은 돈을 빌려주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다.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는 현상. 이 이상한 공생 관계로 인해 중국의 위기는 바로 미국의 위기로 넘어갈 수 있다(그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