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잡스의 기준 Creative Selection, 켄 코시엔다

지하련 2022. 4. 16. 17:44

 

잡스의 기준 Creative Selection

켄 코시엔다(지음), 박세연(옮김), 청림출판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이 책에 실린 아래 문장을 옮겼고 나는 그걸 보곤 바로 이 책을 구입했다.

 

1. 영감 inspiration: 거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가능성 상상하기
2. 협력 Collaboration: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보완적인 장점 결합하기
3. 기능Craft: 기술을 적용해 최고의 결과물을 얻고, 항상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기
4. 성실Diligence: 힘든 일도 마다 않고, 쉽고 빠른 길에 의존하지 않기 
5. 결단력Decisiveness: 까다로운 결정을 내리고, 미루지 않기
6. 취향Taste: 선택을 위한 세련된 감각을 개발하고, 즐거움을 주는 통합된 전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균형감 유지하기
7. 공감Empathy: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들의 삶에 잘 어울리고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제품 창조하기

 

그러나 어떤 방법론이 명확하게 제시된 책은 아니었다. 또한 <<잡스의 기준>>이라는 한글 제목도 적절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최종 결정을 하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나, 그 과정이 창의적Creative이지 않았다. 켄 코시엔다는 위 ‘일곱가지 핵심 요소는 애플의 일상적인 업무를 요약한 것이며, 동시에 장기적인 발견을 나타낸 것’(9쪽)라고 하지만, 이 책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에 대한 업무기록을 위 7가지 요소로 배분한 것이다. 애플 안에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올라가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어떻게 해결했으며 어떤 점에 집중했는지를 적고 있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이 책은 상당히 유용한 지침서가 될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읽힐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책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가 그간 경험해온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이 책처럼 정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완료 기한을 끝도 없이 넘기면서 마무리하는 과정의 연속과 그 고통스러움. 프로젝트의 손익을 따지며 업무 역량이 되지 않는 이들과 같이 일하는 곤혹스러움, 심지어 프로젝트 중간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적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실은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이런 책이나 이런 경험기가 공유되면 어떨까 하는 희망적인 상상을 해보았지만, 그 역시 적절하지 못했다.

 

애플이나 구글에 다닌 이들은 자신이 다녔던 회사나 업무, 문화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하는데, 한국 기업은 그런 사례가 많지 않다. 문화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 근래의 일이고 업무 방식에 대한 것들도 최근의 일이니, 조금 더 기다리면 나올 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아주 일부의 일이다. 그렇다면 켄 코시엔다의 이 책은 많이 읽혀져야 할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적어도 잘못된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에 대해서 적절한 지적이 될 테니까.

 

첨단 IT 분야에서 흔히 A/B 테스트라고 하는 이런 형태의 실험에서 그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 A/B 테스트는 클릭하기 가장 좋은 파란색을 택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일지 모르나, 최고와 최악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
애플 사람들은 절대 그런 방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그 어떤 아이폰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A/B 테스트를 실시하지 않았다. 색상을 골라야 할 경우, 그냥 하나를 택했다. 그 과정에서 훌륭한 취향을 활용했다. (250쪽)

 

A/B 테스트에 대한 위 의견은 구글과 애플이 어떻게 다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위 두 방식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지만 두 기업은 서로 전혀 다른 접근을 하면서 성공했다. 그것은 그들만의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 위에서 자신들의 의사결정 방식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점이 부럽다.

 

첫째, 데모를 만드는 창조적 선택 과정이다. 교차점에서 일하기 개념에 더해, 제품을 개발하는 동안 우리가 변형을 창조했던 방식을 보다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우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알고리즘과 발견적 학습법을 기반으로 첫 번째 모형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코드, 그래픽, 애니메이션, 사운드, 아이콘 등 지원을 끌어내 데모를 구축했다. 데모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공유한 뒤, 개선이 가능한 부분을 결정했다. 이는 발견적 학습법을 조율하고, 알고리즘과 발견적 학습법을 조합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이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선택한 구체적인 수정은 다음번 데모 창조를 뒷받침하는 실천 항목이 됐다. 이 과정이 반복됐다. 이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쌓아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제품 소프트웨어를 완성한 여정이다. (286쪽)

 

애플을 좋아하고 애플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해 알고 싶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이 책은 상당히 권할 만하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아닌 나에게 이 책은 솔직히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 담겨 있긴 했지만.